
취조실에서 다리를 꼬는 장면 하나로 전세계인의 시선을 사로잡았는데 당시 한국 개봉 버전에선 그 장면이 편집돼 있었다. ‘나인 하프 위크’ 등으로 이미 섹스 심벌로 유명하던 킴 베이싱어에게 먼저 캐스팅이 제안됐지만 그가 거절하자 폴 버호벤 감독은 ‘토탈 리콜’을 함께 작업한 샤론 스톤에게 엄청난 기회를 제안했다.

소셜미디어(SNS)로 팬들과 직접 소통하는 샤론 스톤은 최근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벌어진 윌 스미스 폭행 논란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냈다. 샤론 스톤은 관련 게시물에 “나는 크리스 록도 제이다에게 사과하는 것을 듣고 싶다”는 댓글을 달았다. ‘제이다’는 윌 스미스의 부인 제이다 핀켓 스미스로 2018년 탈모증을 앓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샤론 스톤은 크리스 록의 지나친 농담이 윌 스미스 폭행 논란의 시발점이라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샤론 스톤과 ‘원초적 본능’에서 호흡을 맞춘 마이클 더글러스에게도 1992년은 전성기였다. ‘원초적 본능’ 개봉 한 달 전에는 멜라니 그리피스와 호흡을 맞춘 영화 ‘사랑의 용기’에 출연했다. ‘사랑의 용기’에는 요즘 잘나가는 리암 니슨이 조연으로 출연한다. 당시만 해도 리암 니슨은 무명 배우였다. 줄리아 로버츠의 연인으로 더 유명했는데 2년 뒤 ‘쉰들러 리스트’를 통해 명배우의 반열에 올라선다.

이 발언으로 인해 곤욕을 치르며 부인 캐서린 제타존스와 파경설이 나돌기도 했다. 구강성교 발언으로 별거에 돌입했다는 소문이었는데 8월에는 별거설을 공식 인정했다. 이후 수백만 달러에 이르는 이혼 법정 다툼이 임박했다는 보도까지 쏟아졌지만 위기를 극복하고 지금까지 잘 살고 있다. 참고로 마이클 더글러스와 캐서린 제타존스는 2000년 25세의 나이 차를 극복하고 결혼했다. 암 투병으로 1~2년가량 쉬었을 뿐 배우 활동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행크 핌 박사 역할로 ‘앤트맨’ 시리즈와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통해 마블의 일원이 되기도 했다.
앞서 언급한 윌 스미스 폭행 논란에서 크리스 록이 제이다 핀켓 스미스 관련 농담에서 활용한 영화가 ‘지. 아이. 제인’인데 주인공은 데미 무어다. 당시 데미 무어의 남편은 1992년을 얘기하면 절대 빠질 수 없는 브루스 윌리스였다. 본명보다 ‘존 맥클레인’이라는 극 중 이름이 더 알려졌을 만큼 엄청난 흥행에 성공한 ‘다이하드’ 시리즈로 세계적인 스타가 됐는데 특히 국내에서 인기가 높았다.
1991년 ‘마지막 보이스카웃’과 1992년 ‘허드슨 호크’가 북미 시장에서는 기대 이하의 흥행 성적을 거뒀지만 국내에서는 흥행에 성공했다. 1992년 브루스 윌리스는 연기 인생에 큰 계기가 된 영화를 개봉했는데 바로 ‘죽어야 사는 여자’다. ‘다이하드’로 시작해 ‘허드슨 호크’까지 이어진 액션 스타의 이미지에서 벗어난 코미디 영화였는데 이 영화는 전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했다.
1992년 국내 개봉 할리우드 영화 속 스타들이 대부분 여전히 왕성한 배우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데 반해 브루스 윌리스는 최근 은퇴를 선언했다. 3월 30일 브루스 윌리스 가족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은퇴를 선언했는데 이 은퇴 성명에는 아내 에마 헤밍 윌리스, 전 부인 데미 무어, 그리고 다섯 자녀가 서명했다. 은퇴 이유는 실어증 진단이다. 가족들은 브루스 윌리스가 건강상의 문제를 겪었는데 이것이 인지 능력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밝혔다.
브루스 윌리스는 올해 공개된 새 영화가 세 편이나 될 정도로 최근까지 왕성한 활동을 이어왔다. 그렇지만 이미 수년 전부터 인지 능력 저하로 대사조차 외우지 못해 이어폰을 끼고 누군가 알려주는 대로 연기를 했다고 한다. 당연히 과거의 연기력을 보여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까닭에 올해 골든 라즈베리 시상식에서 최악 연기 부문 특별상을 받았는데 은퇴 선언 이후 인지 능력 저하가 연기력에 미친 영향을 감안해 골든 라즈베리는 최악 연기 부문 특별상을 철회했다.

결국 ‘포스트맨’이 케빈 코스트너가 몰락하는 시발점이 됐는데 이 영화를 위해 주연으로 캐스팅돼 있던 다른 영화를 포기했다. 그 영화가 바로 ‘에어포스 원’이다. ‘에어포스 원’에 대신 출연한 해리슨 포드는 당연히 큰 성공을 거둔다. 1978년 ‘스타워즈4 새로운 희망’에 한솔로 역할로 출연하며 월드스타의 반열에 오른 해리슨 포드는 1982년 ‘레이더스’ 이후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로도 큰 사랑을 받았다.

앞서 언급된 스타들에 비해 이름은 그리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1992년 할리우드 영화를 언급하면 절대 빠트릴 수 없는 이름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신부의 아버지’ ‘결혼 만들기’의 스티브 마틴이다. 1960년대 후반부터 극작가로 활동해온 그는 이후 배우와 코미디언으로 활동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가 가장 큰 사랑을 받았던 시점이 바로 1992년 즈음이다. 이후 꾸준히 배우와 작가 등으로 활동을 이어온 스티브 마틴은 최근에도 디즈니 플러스(+) 드라마 ‘아파트 이웃들이 수상해’를 통해 많은 사랑을 받았다.
해리슨 포드와 호흡을 맞춘 아네트 베닝에게 ‘헨리의 이야기’는 첫 주연작이다. 국내에서는 1992년 2월 처음 그의 이름이 영화팬들에게 알려졌다. 그리고 한 달 뒤 또 한 편의 아네트 베닝 주연작이 개봉되는데 바로 그 유명한 ‘벅시’다. 49회 골든 글로브 작품상에 빛나는 이 영화에서 아네트 베닝은 상대 배우이자 제작자 워런 비티를 만나게 된다. 그렇게 인연을 맺어 아네트 베닝은 스물한 살 연상의 워런 비티와 결혼한다. 사실 당시 워런 비티는 바람둥이로 유명해 이들의 결혼 생활도 금방 끝날 거라는 예상이 많았다. 그런데 우려와 달리 이들은 지금까지 잘 살고 있다. 워런 비티의 바람기가 아네트 베닝을 만난 뒤 깔끔하게 사라졌다는 후문이다.
이후 ‘러브 어페어’ ‘대통령의 연인’ ‘비상계엄’ 등의 영화에 출연하며 1990년대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여배우로 활동했던 그는 최근에도 ‘캡틴 마블’ ‘나일강의 죽음’ 등의 영화에 출연했다.

1960년대부터 할리우드에서 활동한 골디 혼에게도 1992년이 전성기였다. ‘크리스크로스’, ‘죽어야 사는 여자’, ‘결혼 만들기’, ‘행복했던 여자’ 등 그가 출연한 영화 4편이 1992년에 개봉했는데 특히 ‘죽어야 사는 여자’는 골디 혼의 대표작이다.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와 함께 대표적인 유대계 여성 배우 가운데 한 명인 골디 혼은 코미디 배우로 분류되는데 동안으로 유명해 40대 후반까지도 로맨틱 코미디 영화에 자주 등장했다. 1945년생으로 1992년에 이미 40대 후반의 나이였지만 당시에는 그를 30대 초반 정도로 알고 있던 한국 영화팬들도 많았을 정도다.

할리우드 배우는 아니지만 ‘퐁네프의 연인들’의 쥘리에트 비노슈와 ‘마농의 샘’과 ‘1492 콜럼버스’의 제라르 드파르디외와 같은 프랑스 배우들도 1992년 큰 사랑을 받았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김은 프리랜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