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각 후 가치 상승에 CJ·두산 아쉬움…실무진들 적정 가치 산정 어려움 호소
전문가들은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대유행)이 이러한 분위기를 키웠다고 설명한다. 과거에 매력적이지 않았던 사업이 비대면 및 친환경 특수를 타고 몸값이 치솟는가 하면 코로나19 탓에 알짜 사업이 비인기 매물이 되는 경우도 있다. 이 과정에서 기업을 너무 헐값에 팔았다는 문책이 나왔고, 이에 따라 추가적인 투자 판단도 어려워진 것이다. 투자은행(IB)업계 한 관계자는 “M&A를 아주 많이 해본 기업은 내성이 있어 그럭저럭 넘기지만 익숙하지 않은 기업 문화를 갖고 있는 그룹은 후유증이 오래가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커피 프랜차이즈 투썸플레이스는 CJ그룹의 ‘아픈 손가락’으로 꼽힌다. CJ푸드빌은 2018년 외식사업 부진으로 400억 원대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후 투썸플레이스를 분할해 상장 전 투자유치(프리 IPO)를 받았다. 당시 싱가포르투자청,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와 손잡은 앵커에쿼티가 2대주주로 참여했다. 앵커에쿼티는 투썸플레이스의 기업가치를 약 4500억 원으로 측정해 투자했고, 이후 순차적으로 지분을 늘리다가 2020년 7월 콜옵션을 행사해 투썸플레이스 지분 100%를 확보했다.
2020년 투썸플레이스를 완전 매각할 당시 CJ그룹 내부에서는 잘 팔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코로나19로 인한 정부의 영업규제 등으로 투썸플레이스가 제 기업가치를 드러내지 못할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투썸플레이스는 비대면 시장을 훌륭하게 개척했다. 자체 딜리버리 서비스를 비롯한 비대면 판매 루트를 확보하면서 2020년 매출이 2019년 대비 11% 늘어났다. 같은 기간 스타벅스코리아 매출은 3% 늘어나는 데 그쳤다. 앵커에쿼티는 지난해 11월 칼라일그룹과 투썸플레이스 지분 100%를 약 1조 원에 매각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불과 1년 4개월 만에 몸값이 2배 이상으로 치솟은 것이다.
CJ그룹이 2018년 1조 3000억 원에 매각한 CJ헬스케어 또한 아쉬움이 남는 거래로 꼽힌다. 당시 한국콜마는 CJ헬스케어를 인수한 후 사명을 HK이노엔으로 바꿨다. 한국콜마는 HK이노엔을 상장시켰고, 현재 시가총액은 1조 원대 중반 수준이다. 현재 시가총액과 매각가는 엇비슷하지만 전문가들은 한국콜마가 HK이노엔을 재매각한다면 경영권 프리미엄이 붙어 매각 가격이 훨씬 상승할 것으로 평가한다. HK이노엔은 지난해 10월 한때 2조 3000억 원이 넘는 시가총액을 기록하기도 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대놓고 문책이 이뤄진 것은 아니지만 CJ 내부에서도 너무 헐값에 매각한 것 아니냐는 후회의 목소리가 분명히 있다”며 “한때 매각 대상이었던 뚜레쥬르 매각이 다시 거론되지 않는 것 또한 이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CJ푸드빌은 투썸플레이스 사례와 뚜레쥬르 매각 철회는 관계가 없다는 입장이다. CJ푸드빌 관계자는 “뚜레쥬르 매각 계획은 없다”며 “시장에서 보는 것보다 브랜드가 탄탄하고, 코로나19 속에서 실적도 좋고 오히려 더 성장했다”고 전했다.
두산그룹도 비슷한 상황이다. 두산그룹은 2020년 4월 주채권은행인 KDB산업은행 주도의 구조조정을 실시하는 과정에서 두산솔루스(현 솔루스첨단소재)를 7000억 원에 매각했다. 오너 일가 지분을 포함해 53%의 지분을 매도한 것이다. 매각설이 알려지기 전 두산솔루스의 주가는 1만 원대에 그쳤지만 현재는 6만 원대를 기록하고 있다.
과거에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두산그룹은 2016년 4월 두산공작기계를 MBK파트너스에 약 1조 1000억 원에 매각했다. 그런데 MBK파트너스가 지난해 8월 두산공작기계를 2조 원대 중반에 되팔면서 두산그룹 내부는 충격에 휩싸였다. 두산 한 관계자는 “헐값 매각 논란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며 “주채권은행 명령으로 기업을 파는 이상 (매수자가 얼마를 제안하든 반드시 팔아야 하기 때문에)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매각할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두산그룹은 밥캣 등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비싸게 샀다는 논란에 휩싸였고 많은 비판을 받았었다”며 “이런 경험들이 새로운 투자 판단을 내릴 때 방해 요인이 되곤 한다”고 덧붙였다.
중견기업 중에서는 헐값 매각을 했다는 이유로 경질성 인사를 하거나 사업 전환 로드맵이 중단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현장에서 M&A를 담당하는 임원이나 실사를 담당하는 회계법인, IB업계에서는 정확한 기업가치 측정이 불가능하다고 하소연한다. 특히 최근에는 경영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원유 가격이 치솟고, 중국의 수출 통제로 요소수나 일부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는 등 사업 환경이 급변해 투자 판단이 어렵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M&A 경험을 많이 쌓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일례로 SK그룹은 수많은 M&A를 진행하면서 헐값 매각을 진행했다는 지적도 심심치 않게 나왔지만 반대로 적절한 투자였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이 때문인지 외부 지적에 흔들리지 않고 사업 포트폴리오 조정에 힘쓰는 모습을 보인다. SK그룹은 지난해 12조 원을 들여 20건의 M&A를 진행했고, 올해 들어서도 SK에코플랜트, SK이노베이션 등을 중심으로 다수의 M&A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SK E&S는 최근 미국 전기차 충전기 업체 에버차지를 인수했다. 정확한 인수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SK E&S는 인수대금 지원을 위해 미국법인에 4억 달러(약 4850억 원)를 출자했다고 공시했다. 매각 작업도 꾸준히 진행 중이다. SKC 인더스트리소재(필름사업) 등이 매각 후보군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SKC 관계자는 “현재 인더스트리소재 매각 관련해서 정해진 것은 없다”고 전했다.
민영훈 언론인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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