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자가진단키트를 통해 검진을 했다. 다행히 음성이었다. 감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감기약을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3월 29일 화요일, 컨디션이 나쁘지 않았다. 이틀간의 감기 기운이 다 나았다고 생각해서 평소와 같이 출근을 하고 일정을 소화했다. 귀가 후 저녁을 먹고 밤새 심한 감기·몸살 같은 증상이 계속 되었다. 식은땀을 흘리고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새벽에 잠이 깨 집에 마련해 놓은 자가진단키트를 사용해보니 선명한 두 줄. 양성판정이 나왔다. 가슴이 철렁했다.
아침이 되자마자 인근 병원으로 가서 신속항원검사를 하니 우려한 대로 역시 양성이었다. 코로나19 백신을 1차와 2차는 물론 3차 부스터샷 접종까지 마친 상태였다. 3차 접종까지 다 마친 내가 코로나19 확진자가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니 3차 접종까지 마쳤는데 왜 코로나19에….
인정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감정과 그래 이참에 좀 쉬자 하는 양가적인 감정이 교차했다. 주변에 확진된 동료들이 그간 밀린 독서와 영화, 드라마 시청을 하며 나름 휴가 같은 시간을 보냈다는 이야기를 상기하면서 어쩌면 코로나19 확진이 나에게 천금 같은 휴식시간을 준 것이라고 생각하자며 나름 스스로를 위로했다.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서도 또 많은 확진자들이 생각보다 심하게 앓았다는 소리도 들어서 걱정과 긍정이 하루에도 수백 번 교차했다. 다행히 나는 3차까지 접종해서인지 증상이 아주 미미했다. 이틀간 식은땀을 흘리고 자다 깨다를 반복한 것 이외에는 인후통도 다른 고통도 느끼지 않는 거의 무증상에 가까운 격리시간을 보냈다.
직업이 직업이니만큼 그간 보지 못했던 영화와 드라마를 몰아볼 것이라는 처음의 계획과는 달리 격리기간 동안 영화, 드라마는 거의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안 그래도 직업상 매일 봐야 하는 영화, 드라마를 하늘이 준 7일간의 황금 같은 시간에 또 본다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그래서 평소에 보고 싶었던 걸 마음껏 보기로 했다.
그것은 바로 유럽 로드트립이었다. 난 586세대다. 우리 때에는 해외여행이 자유스럽지 못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을 한 1990년에야 대한민국은 여행자유화국가가 되었다. 우리 세대의 동료들은 유럽배낭여행을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유럽배낭여행에 대한 로망이 존재했다.
언젠가 배낭을 메고 유럽을 여행했으면 하는 생각을 했지만 이제 50대가 됐으니 배낭여행보다는 자동차를 렌트해서 평생 꿈꿔왔던 유럽여행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언제나 나를 지배했다.
그래서 격리 중인 이 시간, 평생 떠나지 못한 유럽여행을 준비해 보고 싶었다. 유튜브에 유럽 로드트립이라는 검색어를 입력했다. 수백·수천 개의 프로그램이 검색됐다. 난 랜선으로 유럽여행을 하기 시작했다.
다양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유럽여행을 하는 프로그램이 나에게 제시되었다. 수십 시간을 유럽 로드트립을 보면서 그간 꿈꿔온 내 꿈에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는 계기를 만들게 됐다. 노트북을 켜고 언젠가 나에게 주어질 유럽여행에 대한 계획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프랑스에서 시작해서 스페인, 포르투갈, 남프랑스, 이탈리아, 그리스, 오스트리아, 체코, 독일, 네덜란드, 벨기에를 거쳐 다시 프랑스로 돌아오는 일정을 기록했다. 가슴이 벅차오르고 무한한 희열을 느끼며 마치 30년 전 대학생으로 돌아간 듯한 기분 좋은 상상에 어떠한 고통도 지루함도 무료함도 느끼지 않고 나에게만 집중한 7일간의 격리생활을 할 수 있었다.
3차 접종을 마치고도 코로나19에 확진된 것이 처음에는 너무나 억울하고 화가 났지만 그로 인해 그간 가슴 한편에 간직해두었던 어릴 적 갈망을 다시 끄집어내는 시간을 가졌다. 어쩌면 유럽에 못 갈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까지 오롯이 나에게만 집중했고 나의 꿈, 나의 로망에 열중했던 7일간의 시간은 너무나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외부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원동연 영화제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