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보고서에 따르면 네이처리퍼블릭은 2021년 쿠지인터내셔널로부터 운영자금 50억 원을 차입했다. 네이처리퍼블릭은 같은 해 12월 해당 차입급을 신주 25만 주로 출자전환했다. 이로써 쿠지인터내셔널은 네이처리퍼블릭 지분 3.02%를 가진 주주가 됐다.
네이처리퍼블릭이 쿠지인터내셔널로부터 50억 원을 차입한 목적은 운영자금 확보 차원이다. 하지만 쿠지인터내셔널은 자금을 대여할 정도의 여유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쿠지인터내셔널은 2000년대 초중반 수백억 원의 매출을 거두는 등 시장에서 나름대로 활약했지만 2010년 이후로는 재무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말 기준 쿠지인터내셔널의 자본총액은 마이너스(-) 6억 원으로 자본잠식 상태였다. 당시 보유 중이었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4183만 원에 불과했다.
쿠지인터내셔널은 2010년 이후 증자를 한 기록이 없으므로 최근 10년간 자본 확충도 이뤄진 것이 없다. 2016년 당시 쿠지인터내셔널 감사를 맡았던 선명회계법인은 감사보고서에서 “(쿠지인터내셔널은) 유동부채가 유동자산보다 더 많다”며 “존속능력에 유의적 의문을 제기할 만한 중요한 불확실성이 존재한다”고 언급할 정도였다.
쿠지인터내셔널은 2017년부터 외부감사 대상에서 제외됐다. 현행법상 자산 120억 원 이상, 부채 70억 원 이상, 매출액 100억 원 이상, 종업원 수 100명 이상 등 4가지 기준 중 2개 이상에 해당하는 회사는 외부감사 대상이다. 쿠지인터내셔널이 외부감사 대상에서 제외됐다는 것은 자산 규모나 매출액이 크지 않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뿐만 아니라 쿠지인터내셔널의 경영 활동도 사실상 멈춰있다. 쿠지인터내셔널의 2016년 매출은 2억 2165만 원이다. 모두 임대료 수익이었고, 제품 판매 등 사업을 통해 벌어들인 수익은 없다. 현재도 쿠지인터내셔널의 제품은 찾아볼 수가 없다.
심지어 사무실조차 제대로 존재하지 않는다. 쿠지인터내셔널은 2003년부터 서울시 강서구 자사 사옥에 본사 사무실을 뒀다. 부동산등기부에 따르면 해당 사옥은 2012년부터 수차례 가압류를 당했고, 2020년 노 아무개 씨와 박 아무개 씨에게 사옥 건물과 부지를 125억 원에 매각했다. 이후 노 씨 등은 해당 사옥을 철거했고, 현재 건물 신축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법인등기부에 따르면 쿠지인터내셔널 본사 사무실 위치는 여전히 강서구 사옥이다. 액면 그대로 해석하면 쿠지인터내셔널은 이미 철거된 건물에 본사를 두고 있는 셈이다. 상법에 따르면 법인등기부 변경사항을 2주일 안에 기재하지 않을 경우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쿠지인터내셔널의 부채총액은 2016년 말 기준 75억 2927만 원이었다. 이후 부채가 크게 늘어난 것이 아니라면 사옥 매각가 125억 원으로 부채를 상환한 후 네이처리퍼블릭에 자금 대여가 가능하다. 실제 쿠지인터내셔널의 사옥 매각은 네이처리퍼블릭에 50억 원을 대여한 것과 비슷한 시점에 이뤄졌다.
네이처리퍼블릭은 사실상 경영 활동이 중단된 쿠지인터내셔널로부터 돈을 빌리고, 현금 대신 지분으로 상환한 것이다. 신주 발행 전 정운호 대표가 보유한 네이처리퍼블릭 지분은 75.37%였다. 신주 발행 후 정 대표와 쿠지인터내셔널의 지분은 각각 72.85%, 3.02%로 둘을 합치면 75.87%다. 쿠지인터내셔널은 정운호 대표의 특수관계자로 분류된다. 즉, 네이처리퍼블릭은 차입한 50억 원을 상환하지 않았으면서 정 대표의 경영권까지 강화한 셈이다.
현행법상 ‘본인이 직접 또는 친족 관계나 경제적 연관 관계에 있는 자를 통해 법인의 경영에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경우’는 특수관계자로 구분된다. 따라서 쿠지인터내셔널의 현 최대주주는 정운호 대표 본인 혹은 친족 관계다. 2016년 말 기준 쿠지인터내셔널의 최대주주는 지분율 34%의 정다운 씨였다. 쿠지인터내셔널이 이후 정보를 공개하지 않아 현재 주주 명단은 확인되지 않는다.
일요신문은 쿠지인터내셔널의 현황과 차입금 배경 등에 대해 질의했지만 네이처리퍼블릭은 이와 관련해 특별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네이처리퍼블릭 IPO 재추진? “실적 정상화 먼저”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가 2020년 초 경영에 복귀한 후 일각에서는 네이처리퍼블릭이 기업공개(IPO·상장)를 재추진할 것으로 내다봤다. 네이처리퍼블릭은 2014년 IPO를 추진했지만 정 대표가 해외 원정 도박 혐의로 구속되면서 중단된 바 있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대유행) 등의 영향으로 네이처리퍼블릭 실적이 급락해 당분간 IPO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네이처리퍼블릭은 IPO를 추진했던 2014년에 매출 2552억 원, 영업이익 238억 원을 기록했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매출 1255억 원, 영업손실 38억 원을 거두는 등 예전만 못한 실적을 보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추가 배치를 거론하는 것도 악재로 꼽힌다. 중국인은 네이처리퍼블릭 매장의 주요 고객이므로 대중관계가 악화되면 실적에도 악영향이 갈 수밖에 없다. 안 그래도 네이처리퍼블릭 중국 법인 ‘베이징 네이처 인터내셔널 트레이드’는 지난해 23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정운호 대표는 지난해 4월 일본 법인을 설립하는 등 나름대로 돌파구를 찾고 있다. 네이처리퍼블릭 일본 법인은 지난해 7억 9500만 원의 순이익을 거뒀다. 이익 규모가 큰 것은 아니지만 사업 초기 단계인 것을 감안하면 지켜볼 만한 단계라는 평가다. 이와 관련, 네이처리퍼블릭 관계자는 “현재 IPO 재추진 계획은 없다”며 “최근 실적이 좋지 않아 실적 정상화와 수익 창출에 집중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