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코 클리셰 속에서도 빛난 ‘코리안 엠마 스톤’…“노래도 연기도 다 행복, 게을러선 안되겠다 다짐”
“처음 작품에 임할 때 많은 분들이 세정이에게도 소녀가 있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했어요. ‘사람 김세정’을 보여드리려 많이 노력하다 보니 털털한 모습이 많았기에 ‘이런 세정이에게도 소녀 같은 모습이 있을까’ 하셨을 것 같아, 이번 작품에서 그것만 보여드려도 성공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그게 이뤄졌겠죠? 그럼 다행이고요(웃음). 그 외의 목표라면 K-로코가 해외 분들에게도 이해됐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목표가 있었는데 그 또한 이룬 것 같아요. 달성률 100%네요(웃음)!”
동명의 웹툰·웹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사내맞선’에서 김세정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맞선녀’ 신하리 역을 맡았다. 재벌 친구를 대신해 나간 맞선 자리에서 얼굴 천재 능력남이자 자신의 회사 대표 강태무(안효섭 분)와 만난 뒤 스릴 가득한 ‘퇴사 방지’ 예측불가 로맨스를 김세정만의 색으로 그려냈다는 호평을 받았다. 특히 망가짐까지 불사하며 물불을 가리지 않는 그의 연기를 두고 대중들은 ‘코리안 엠마 스톤’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줬다. 마찬가지로 다채로운 연기를 선보이는 것으로 유명한 할리우드 배우 엠마 스톤의 모습이 김세정에게서 보인다는 이유였다.
“제가 연습생 시절부터, ‘프로듀스101’ 1분 자기소개 때도 했던 말이 ‘천의 얼굴’이란 말이었는데 이렇게 해외 배우로까지 진출할 줄은 몰랐어요(웃음). 사실 저는 제가 엠마 스톤이랑 닮은 걸 알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대중 분들도 그렇게 생각해주셔서 정말 너무 감사해요. 더 넓은 시장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신 것 같아서(웃음). 이제는 앞으로 또 어떤 새로운 얼굴을 어떻게 보여드릴까 하는 고민이 생겨요.”
‘천의 얼굴’이 되고 싶다는 그의 포부처럼 김세정은 작품에 임할 때마다 캐릭터를 깊게 파고들어 마침내 그 인물이 되고야 만다. 이번 ‘사내맞선’에서도 김세정은 완벽한 신하리가 되기 위해 신중하게 접근했다고 말했다. 특히 여성 시청자들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로맨틱 코미디의 특성상 그들에게 그대로 읽힐 수 있는 ‘뻔한 수’는 보이지 않아야 한다는 게 그의 첫 캐릭터 분석 결과였다.
“하리는 ‘내심 다 알고 있는데, 모른 척 연기하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연기했어요. 7년 지기 짝사랑 민우를 대할 때나 태무가 저한테 사랑을 내비칠 때도 사실은 눈치 챘는데 모른 척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일단 그래 버리면 같은 성별을 가진 여자로서 보는 순간 읽혀요. ‘쟤 눈치 챘는데? 알았는데?’ 하고 읽힐 거라서(웃음), 제가 그걸 미리 안 상태에서 연기로 표현되면 안 되기 때문에 최대한 지양하려 애썼죠.”
철저한 분석에서 또 하나 놓치지 않은 것은 ‘로코 여주’로서의 존재감이었다. 한없이 사랑스럽고, 또 사랑 받아 마땅한 신하리 캐릭터로 임하기 위해 김세정 본인의 모습도 살짝 담아냈다는 게 그의 이야기다. “자신이 봐도 귀여웠던 장면을 꼽아달라”는 말에 “아유, 이 얘기를 또 해야 하네”라며 웃음을 터뜨리면서도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는 모습이, 그 역시도 자신의 귀여움에 한없이 빠져있던 게 분명해 보였다.
“사실 하리가 하리였다가도 중간에 세정이인 순간들이 있었거든요. 애교 부리거나 할 땐 자꾸만 제가 튀어나오는 거예요(웃음). 하리가 애교 부리는 수많은 신들이 다 제 애드리브였기 때문에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네요(웃음). 아무래도 ‘쪽! 잉? 웅?’ 신이 가장 대표적인 애드리브 장면이지 않을까 싶어요. 다 같이 현장에서 즐기고 있는 가운데 서로 간 배려 속에서 튀어나온 애드리브였기 때문에 그 장면이 정말 사랑스럽게 느껴지더라고요.”
연기한 본인부터 시청자들까지 사랑해 마지않았던 하리의 상대역 태무이자 그의 본체 안효섭 역시 그에게 깊이 빠져들 수밖에 없어 보였다. 조금씩 애정을 쌓아가는 간질간질한 러브라인부터 강렬한 베드신까지. 로맨틱 코미디의 A부터 Z까지를 한 작품에서 모두 해낸 이 커플의 촬영장 비하인드는 어땠을까.
“실제 호칭은 ‘오빠’였고요(웃음), 둘이 늦게 친해진 건 서로에 대한 배려 때문이었어요. 오빠가 내성적이기도 하고 저도 외향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낯을 안 가리지 않거든요. 억지로 낯을 없앴을 때 가져오는 불필요한 감정과 힘듦을 알고 있기에 자연스럽게 어색함이 깨질 때까지 기다렸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문을 두드리는 것 정도고 문이 열리게끔 더 행동하는 건 실례라고 생각했거든요. 다행히도 오빠도 시간 안에 마음을 열어줬고요(웃음).”
김세정이 강조한 것처럼 배려가 중요했던 현장의 분위기는 이후 베드신에서도 이어졌다. 자칫하면 누군가의 욕망이 그대로 배어 나오기 쉬운 신이었기에 배우들은 물론 연출진까지 한없이 조심스럽게 접근했다는 게 그의 이야기다.
“최대한 저희의 감정 흐름에 맞게 찍을 수 있도록 연출진 분들이 많이 도와주셨어요. 또 저와 (안)효섭 씨가 중요시 여겼던 건 지금 당장 타오르는 우리의 열정과 욕망이 아니었거든요(웃음). 그저 그 순간 왜 우리가 사랑할 수밖에 없는지, 그 예쁨에 집중하려 했어요. 이 둘의 사랑이 예뻐 보이고, 또 이 과정이 예뻐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서로를 예쁘게 보려고 노력했고 실제 신을 찍을 때도 그렇게 몰입했던 기억이 나요.”
연기력으로 인정받으며 어엿한 배우로 입지를 다져가고 있는 김세정이지만 그의 출발 지점은 가수였다. 2016년 ‘프로듀스101’을 통해 첫 프로젝트 걸그룹 아이오아이(I.O.I)로 기념비적인 데뷔를 했던 그는 이후 새 걸그룹 구구단으로 2020년 12월까지 활동한 뒤 현재는 잠시 가수의 길을 멈춰섰다. 그럼에도 가수로서 김세정을 그리워하는 팬들이 여전히 그의 무대를 기다리고 있는 이유는, 김세정이 결코 어느 한 쪽도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앞으로도 게을러선 안 되겠다’라는 게 부담인 것 같아요. 그 외에는 다 기쁨으로 돌아와요. 노래도, 연기도 다 제게 있어 행복이거든요. 앞으로의 행보도 저는 딱히 정하지 않으려 해요. 한정된 시간이기에 안정을 이유로 앞으로의 행보를 정해서 이렇게 해야지, 이런 건 안 하고 그저 이것저것 도전하고 있을 것 같아요. 가수로서의 모습도 빠른 시일 내에 보여드리지 않을까 싶어요. 써놓은 곡들도 꽤 있고, 제가 성격이 좀 급하거든요. 체력이 된다면 할 수 있는 한 빨리 보여드리고 싶어요(웃음).”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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