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과 색실로 펼치는 아름다운 손의 예술
만해 한용운의 시 ‘수의 비밀’의 한 부분이다. 임을 기다리는 사랑의 마음을 우리 전통 조형예술인 ‘자수’에 비유해 표현한 것이다. 굳이 시인의 시선을 빌리지 않아도, 한 땀 한 땀 정성을 기울여 수놓는 장인의 모습은 오롯이 마음을 기울여 누군가를 기다리는 이의 모습과 어쩌면 닮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바늘과 색실로 그리는 아름다운 그림’, 전통 자수의 세계로 한번 들어가보자.
자수는 여러 색깔의 실을 바늘에 꿰어 바탕천에 무늬 등을 수놓아 표현하는 조형 활동이자 공예 예술이다. 우리 전통 자수 기법으로 수를 놓는 전문적인 수공예 기술 또는 그 기술을 지닌 장인을 ‘자수장’(刺繡匠)이라 부른다. 우리나라에서 자수는 궁중과 민간을 중심으로 생활환경, 풍습, 신앙 등에 영향을 받아 독자적인 양식을 이루며 발전해 왔다.
전통 자수는 크게 ‘바탕천 틀에 고정하기’ ‘밑그림 그리기’ ‘수놓기’ ‘뒷면에 풀칠해 말리기’ 등의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자수의 재료로는 바늘과 바탕천, 한 가닥에서 여러 가닥까지 엮인 다양한 종류의 색실과 틀 등이 있다. 실은 굴 껍데기, 치자, 홍화 등 자연의 재료를 이용해 염색한다. 얼핏 간단해 보여도 전통 자수의 기법은 60여 가지가 넘는다. 주요 기법으로는 돗자리의 표면처럼 촘촘하게 엮는 ‘자릿수’, 땀새가 장단으로 교차되게 수놓는 ‘자련수’, 수면을 수평·수직·경사 방향으로 메워 가는 ‘평수’, 선을 조성하는 ‘이음수’, 수가 놓인 윗부분에 군데군데 길게 고정시켜 수면이 흩어지지 않게 하는 ‘징검수’, 각종 꽃의 술이나 석류 등 작은 씨앗을 표현할 때 쓰이는 ‘매듭수’ 등이 있다.
문헌상으로 자수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삼국지’에 나온다. 부여 사람들이 흰옷을 즐겨 입었고, 사신이 외국에 나갈 때에는 문양과 색채를 그려 넣거나 수놓은 화려한 옷을 입었다고 기록돼 있다. 또한 ‘삼국사기’에는 고구려에서 관인들이 회의하러 모일 때 수놓은 비단옷을 입었다고 적혀 있다. ‘삼국유사’ 등에는 신라 진덕여왕이 직접 비단을 짜서 여기에 시를 수놓아 당나라 고종에게 보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고대 일본의 기록을 통해서 일찍이 우리나라에서 일본에 자수를 전하여 큰 영향을 끼친 것을 알 수 있다. ‘일본서기’에는 340년경 백제 왕이 옷을 짓는 여공 진모진을 일본으로 보냈는데, 이 여공이 일본 자수의 시조가 되었다는 기록도 보인다.
고려시대에는 불교문화의 영향을 받아 자수로 종교 작품이 많이 만들어졌으며, 일반 백성의 의복까지 자수 장식이 성행했다. 특히 생활 자수의 기능을 넘어 자수의 아름다움 자체를 즐기고 구경하기 위한 ‘감상용 자수’까지 등장했다. 장막을 칠 때 사이사이에 드리우거나 가정의 내실에 걸던 일종의 실내 장식품인 ‘수도’를 그 예로 들 수 있다. 수도에는 산에 피는 꽃이나 새, 과실 등을 그림처럼 수놓았다.
조선시대의 자수는 궁수(궁중 자수)와 민수(민간 자수)로 대별되는데, 저마다 뚜렷한 특징을 보이며 발전했다. 궁중에서는 공조에 소속된 자수장과 수방나인 등이 정교하고 격조 높은 자수를 제작했으며, 의장(의복장식)이나 의전용품 등에 자수로 문양과 색채를 표현했다.
특히 문무관의 신분과 계급을 구별하기 위해 관복의 앞뒤에 각기 다른 문양의 흉배를 착용하는 제도가 제정됨으로써 자수의 수요는 더욱 커졌다. 국립중앙박물관에는 ‘흥선대원군 기린무늬 자수 흉배’(국가민속문화재)가 소장돼 있는데, 검은색이 도는 청색 비단에 구름무늬를 바탕으로 상상 속의 영물인 기린이 금색 실로 수놓아져 있다.
한편 민간에서는 부녀자들을 중심으로 의복은 물론 베갯모, 방석 등 일상 용품에까지 자수가 폭넓게 적용되면서 생활의 일부로 정착되었다. ‘경국대전’ ‘속대전’ 등에 따르면 민간에서 고급 직물과 자수 의장을 사용하는 것을 여러 차례 금지한 것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민간에서 얼마나 자수가 성행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방증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 전통 자수는 개화기에 접어들면서 오랜 기간 위축된다. 서양 문물의 도입과 모직 기계 등의 발달로 전문적으로 수를 놓는 장인들이 설 자리를 점차 잃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제강점기를 거치고 한국전쟁을 겪은 이후 외래적 자수 기법의 유입으로 전통 자수를 찾아보기 어려울 지경에 놓인다. 옛 자수를 되살리려는 몇몇 장인들의 노력으로 그나마 명맥이 이어지던 전통 자수는 1984년 자수장이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전승의 기틀이 마련되었다. 초대 자수장은 고 한상수 선생으로, 평생 전통 자수 기법을 복원하고 한국 자수의 예술성을 외국에 알리기 위해 애썼다. 그 뒤를 이은 최유현 자수장은 팔상도, 만다라 등 불화 대작을 수놓은 작품으로 유명한데, 이러한 대작은 보통 2~3년, 길게는 8년에 걸쳐 완성된다고 한다.
자료 협조=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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