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업계 “지지” 낙농업계 “반대”…‘하필 사료값 오르는 이때에’ 정부가 혼란 자초
낙농진흥회가 몸살을 겪고 있는 이유는 용도별 차등가격제 도입 여부를 놓고 정부와 유업계, 그리고 낙농업계 사이의 갈등 때문이다. 용도별 차등가격제란 원유를 음용유(마시는 우유)와 가공유(치즈·버터용 등)로 용도를 나눠 가격을 따로 매기는 제도다. 정부 등 용도별 차등가격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측은 가공유가 음용유보다 저렴하지만 국내 낙농업계가 구별 없이 음용유 가격으로 원유를 공급하는 점을 문제로 지적한다. 이 때문에 국내산 가공 유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수입산에 비해 떨어진다는 것이다.
특히 지난 20년 동안 음용유 소비량은 지속적으로 줄고 가공유 소비량은 큰 폭으로 늘어났다. 농림축산식품부 자료에 따르면 2001년부터 2020년까지 국민 1인당 음용유 소비량은 36.5kg에서 31.8kg까지 지속적으로 하락했지만 가공유 소비량은 63.9kg에서 83.9kg까지 큰 폭으로 늘어났다.
결국 국내산 원유의 가격경쟁력은 하락할 수밖에 없다. 지난 20년간 국내 원유 생산량은 234만 톤(t)에서 209만 톤으로 감소한 가운데 수입산은 65만 톤에서 243만 톤으로 증가했다는 것이 정부 측 주장이다.
정부는 낙농가의 원유 생산비와 우유 가격을 연동한 현행 원유가격 생산비 연동제가 가격을 경직시켜 오히려 낙농산업을 위축시키고 있다고 지적한다. 수요가 줄면 시장가격이 낮아져야 하지만 원유 생산비용과 가격을 연동한 탓에 시장가격을 낮추는 데 한계가 생기기 때문이다. 물론 원유가격 생산비 연동제가 도입된 데에도 이유가 있다. 매일 생산되는 원유는 부패가 쉽고 단기적인 생산조절이 어려워 수요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하기 쉽지 않다. 원유가격이 시장 수급을 고려해 가격을 조절하느라 생산비를 보상하지 못할 경우 낙농가들이 줄도산해 생산기반이 무너질 우려가 있다.
하지만 정부는 이대로는 낙농산업에 미래가 없다고 보고 있다. 2026년부터는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미국과 유럽에서 들어오는 치즈와 우유에 적용되는 관세가 철폐된다. 시장이 개방되면 저가의 유제품 수입이 지금보다 늘어난다. 국내산 원유의 가격경쟁력은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농식품부의 한 관계자는 “용도별 차등가격제는 우리나라를 제외한 나라들이 거의 다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며 “우리만 그간 너무 생산자 위주의 정책을 폈던 것이고 이 제도는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말했다.
농가에서 원유를 구매해 우유·유제품으로 만들어 판매하는 국내 유업계도 용도별 차등가격제를 지지하고 있다. 유업계는 원유가격 생산비 연동제와 쿼터(할당)제로 인해 수요를 초과하는 물량을 비싸게 구매해 시장가격에 맞춰 저렴하게 내놓는 과정에서 피해를 보고 있다고 주장한다. 비싼 음용유 가격으로 원유를 구매하지만 음용유로 사용하지 못한 물량은 가공유로 활용해야 한다. 2020년 기준 음용유로 구매해 가공유로 판매한 물량만 34만 톤에 달한다.
한국유가공협회 관계자는 “수요가 안 맞는데도 쿼터제 때문에 받아가서 억지로 분유나 멸균유로 만들어 1+1(원 플러스 원) 행사 등으로 소진한다”며 “정상 원유 가격으로 갖고 와서 손해 보면서 판매를 하니 백색시유(멸·살균 처리 외 별다른 가공을 하지 않은 시유) 분야에서는 모두 적자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낙농업계도 할 말은 있다. 국내산 우유의 가격경쟁력이 떨어지는 이유는 원유 가격이 높아서가 아니라 유통마진이 지나치게 높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한국낙농육우협회와 전국 낙농관련조합장협의회가 농식품부에 제출한 의견서에 따르면 국내 우유의 유통마진은 2019년 기준 38%에 달한다. 유통마진이 10~20% 수준인 선진국에 최대 2배 가까이 높다. 낙농업계는 지난 20년간 우유가격은 리터당 1228원 올랐고 원유가격은 고작 454원이 올랐다는 점을 지적하며 원유가격 결정구조 때문에 우유시장의 제품가격이 과도하게 오른다는 주장은 틀리다고 지적하고 있다.
제도 도입 시기를 두고도 뒷말이 나온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사료값과 사료 운송비가 크게 늘어 생산비가 가중될 전망이기 때문이다. 특히 우크라이나는 세계 최대의 곡창지대 중 하나로 주요 배합사료의 원료 수출국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전쟁으로 2022~2023년 국제 밀과 옥수수 가격이 약 10~20%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2022년 3월 곡물가격지수도 전월(143.5포인트)에 비해 17.1% 상승한 170.1포인트를 기록하며 다달이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곡물자급률이 높을 경우 외부 환경의 압력으로 국제 곡물가가 변화해도 일정 기간 사료값을 유지하며 버틸 수 있다. 하지만 국내의 경우 사료 수입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 2020년 기준 우리나라는 사료 원료의 9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이미 2021년 12월 기준 전년대비 폐업률이 67% 증가한 낙농가 입장에서는 극심한 외부 환경 변화에 뒤이은 용도별 차등가격제 도입이 날벼락일 수밖에 없다고 토로하고 있다. 정부는 용도별 차등가격제로 가격 경쟁력이 생기면 생산량이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농가업계는 “정부 주장처럼 생산을 쉽게 늘릴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라고 반박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낙농업계 관계자는 “농가들이 현재 전체 순수익의 20%를 사료값으로 소모하면서 버티고 있는데 사료값 상승으로 이 비율이 더 높아질 예정”이라며 “전쟁으로 인한 곡물값이나 운송비가 상승 등 외부환경 조건의 변화는 고려 안하고 당장의 우유값 생각만 하면서 용도별 차등가격제를 밀어붙이는 건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앞서의 농식품부 관계자는 “전쟁 영향이 아직 사료값에 반영될 시기가 아니다”라며 “어느 지역에서 가축이 많이 죽었다거나 하면 수요가 적어질 수도 있는 만큼 앞으로 사료 가격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3월 말 낙농진흥회 이사회 소집을 요구하며 용도별 차등가격제가 도입될 것인지 이목이 쏠렸으나 낙농진흥회 최희종 회장의 사퇴로 당분간 결론을 내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이에 대해 낙농진흥회 관계자는 “최 이사장은 건강상의 문제로 사퇴했으며 낙농진흥회 이사회 소집 일자는 아직 정해지지 않아서 말씀드릴 내용이 없다”고 밝혔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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