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초 영국 런던 남동부 사우스 버먼 지역에서 열린 ‘마약파티’. 수백 명이 마약에 취한 채 전자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고 있다. |
미치 와인하우스의 말이다. 여기서 ‘딸’은 지난 7월 약물과다 복용으로 사망한 영국 가수 에이미 와인하우스다. 미치에 따르면 와인하우스를 ‘약쟁이’로, 즉 마약으로 끌어들였던 건 전남편 블레이크 필더-시빌(27)이었다. 마약상습복용자인 필더-시빌이 코카인과 헤로인 등을 구입해 평범한 20대 여성이었던 와인하우스를 타락시켰다는 얘기다. 27세의 나이로 요절한 천재가수 와인하우스의 비극으로 마약은 최근 영국 사회에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사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12월 밥 에인스워즈 영국 노동당 국회의원은 “음지에서 마약복용이 버젓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럴 바에 마약 합법화를 하는 게 낫다”고 주장해 논란을 일으켰고, 지난 2009년 영국 약물안전위원회 의장으로 있었던 데이비드 너트 교수는 “엑스터시나 대마초가 술·담배보다 안전하다”고 주장했다가 의장직에서 경질되었다. 영국은 유럽 내에서 보수적인 국가로 꼽히지만, 마약에 관해선 찬성과 반대가 대립하는 논쟁적인 모습을 보인다.
특히 대마초가 그렇다. 지난 9월 20일 오후, 영국 런던 중부 워털루 역 인근 난간에 앉은 대니(21·가명)는 대마초를 피우고 있었다. 주변에 옆으로 메는 큰 가방이 있었고, 대니는 마약에 취한 모양으로 눈이 반쯤 풀려 있었다. “집에 가려면 기차를 타야 하는 등 피곤한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 이럴 때 대마 한 대 빨면 긴장이 풀어지고 잠이 잘 온다.”
런던 메트로폴리탄 대학에서 국제경영학을 전공한 그가 대마초를 입에 처음 댄 건 지난해다. 학교 시험이 끝난 날 밤, 같은 과 동기들끼리 한 파티에서 친한 친구가 대마초를 권했다. “주변에서 다 피는데 별 걱정 없이 한 대 받아 피웠다. 한 대 빨아보니 시험 때문에 받았던 중압감 등이 사라지면서 몸이 나른해졌다.”
대니는 한 달에 3~4개비의 대마초를 피우지만 담배와 술은 하지 않는다. 집 근처 체육관에서 체력 단련 삼아 하는 권투 때문이다. 스파링 등 경기가 있으면 며칠 전부터 대마초를 일체 피지 않는다. “대마초가 무해하다고 말하지 않겠다. 다만 중독성은 그리 심하진 않다.”
이날 늦은 오후께, 런던 중부 차링 크로스 역 인근에 있던 제프(23·가명) 역시 코카인을 복용한 적이 있다. “대마초가 긴장 완화에 좋다면 코카인은 사람을 매우 흥분시키는 등 기분 전환에 좋다. 파티 분위기를 들끓게 하는 건 대마초가 아니라 코카인이다.”
금발에 캐주얼 정장 차림을 한 제프는 전형적 영국 신사의 모습이었다. 세계적 명문대인 옥스퍼드에서 역사학을 전공했고, 로스쿨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그는 다음날 변호사로서 첫 출근을 앞두고 있었다. “코카인이든 대마초든 사실 대학 시절 한때 추억으로 하는 거다. 이제 사회생활을 해야 하는 만큼 마약과 거리를 둘 생각이다.”
그는 매일 술을 마시고 담배를 핀다. 그 역시 마약이 중독성이 심각하지 않다고 말했지만, 위험성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일단 정신이 몽롱해진다. 마약을 하면 육체적으론 어떨지 몰라도 정신적으론 타격을 입는다.”
이날 저녁 워털루 역 앞에서 담배를 피던 사이먼(38)은 인근 직장에서 사무직으로 일하는 직장인이다. 20대 후반까지 마약을 복용한 사이먼에게 인생 최고의 마약은 엑스터시다. “한마디로 기분 뿅 간다. 엑스터시를 복용하면 굳이 섹스를 하지 않아도 그 쾌락에 도달한다.”
그는 마약을 한다고 폭력적으로 변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굳이 술보다 안전하다고 할 수 없지만, 적어도 다른 이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누군가 엑스터시를 하고 기물을 파괴하는 등 폭력적으로 변하면 그가 좀 이상한 사람이다. 행복 만땅의 기분을 누리는데 주먹질을 할 필요가 없다.”
엑스터시 이외에 그는 대마초와 LSD 등을 복용한 적 있다. 제프는 “LSD는 복용자를 환영으로 초대한다”고 말했다. “LSD를 하면 하늘이 열리고 건물이 일그러지는 등 기괴한 풍경을 보게 된다. 다른 건 몰라도 LSD는 다른 사람들에게 권할 만한 것이 못된다.”
다시 런던 중부 차링 크로스 역. 이날 늦은 오후, 차링 크로스 역에서 10m 떨어진 공원에서 중년 남성 두 명이 정장 차림의 직장인 가운데 눈에 띄었다. 중년 남성 중 한 남성은 반삭발에 맥주를 마셨고, 다른 남성은 검정색 벙거지를 쓰고 귀에 피어싱을 했다.
“당신은 길가다 마약하는 사람을 본 적 있나? 음지에서만 마약을 허하다 보니까 괜히 사람들이 무섭다고 여기는 거다.” 맥주를 마시는 남성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여전히 마약을 하지만, “마약은 위험하다”는 사람의 일반적 견해에 강한 불만을 제기했다.
벙거지를 쓴 남성은 병원에서 마약을 경험했다. “영국 병원에 한 달 정도 입원하면 헤로인 등 강력한 마약까지 흔하게 접하거나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사람을 살리는 곳에서 마약을 투입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마약은 마취제 역할을 물론 고통에서 해방시켜주는 일도 한다.”
1971년 개정된 마약남용법에 따르면 마약은 강력한 순대로 A, B, C등급으로 나뉜다. A급 마약은 헤로인과 코카인, 엑스터시, LSD 등이고, B급 마약은 대마초 등이며 C급 마약은 벤조디아제핀, 케타민 등이다. 가장 인기 있는 마약은 단연 대마초다. 영국 내무성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대마초를 복용한 16~59세의 총 수는 215만 명인데, (두 번째로 높은) 암페타민 복용자 수인 31만 9000명에 비해 7배 가까이 많다.
마약에 관한 영국 시민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20일 저녁 워털루 역 앞에서 만난 제니(40·가명)는 “마약을 불법화한 결과 범죄조직이 개입된 마약 거래 등 더욱 큰 범죄가 일어나고 있다. 차라리 마약을 합법화한 다음 정부가 적정선에서 복용을 통제하면 강력 범죄는 줄어들 것이다”고 말했다. 워털루 역에서 만난 루시 존슨(30)은 반대 입장이다. “술과 담배가 위험하다고 하지만 사람을 무기력하게 하진 않는다. 마약을 하는 사람들은 우울증 환자 등 삶에 대해 의지가 없는 사람들이 많은데 합법화하면 사회적으로 큰 문제를 야기할 것이다”는 이유다.
알렉스 스티븐 영국 켄트 대학 교수(형사범죄학)는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마약중독자들이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것이다”며 “국가가 적극적으로 무료 재활 치료 등을 마약중독자에게 제공할 필요가 있지만 무엇보다 일반 시민의 편견이 없어졌을 때 그들은 사회로 복귀하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글·사진=이승환 영국 통신원 world@ilyo.co.kr
거래망 뚫으면 집 앞까지 배달
남들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롭게 마약하고 거래하는 공간도 있다. 일명 ‘마약 파티’다. 올해 초 런던 남동부의 사우스 버먼 지역 지하철역 인근 무허가 건물에서 열린 마약파티에 취재차 참석한 적이 있는데, 페이스북이나 개인 연락망 등을 통해 초대받은 수백 명이 있었다. 10대~20대가 주를 이뤘고 몽환적인 전자 음악이 아침까지 울렸다. 건물 바닥에 삼삼오모 모여 코카인 등을 복용했고, 헤로인을 복용한 이의 공통된 특징은 바닥에 널브러져 누워있었다는 것이다. 이날 새벽 3시 무렵, 17세의 톰(가명)은 흙탕으로 질퍽거리는 바닥에 성인 남성 세 명과 주저앉아 있었다. 톰은 “마약하는 이를 정키(쓰레기)다 뭐다 조롱하는데 우린 적어도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며 “온갖 거짓말로 국민을 현혹시킨 다음 실제 삶에서 고통을 주는 정치인보다 우리가 낫다”고 말했다. [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