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명계 ‘친노계 포섭’ 등 세 확산, 장기집권 친문계에 도전장…‘친문 장관 4인방’ 당 복귀 핵심 변수
현 여권 신구 권력이 오는 8월 전당대회 전 맞붙는다. 상대방 맷집을 가늠하는 전초전인 셈이다. 시기는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는 오는 5월이다. 이 전초전은 문재인 정부 ‘순장조’ 복귀와 맞물려 8월 당권 경쟁에 버금가는 일대 전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정부 임기와 동시에 여의도 정치권으로 복귀하는 순장조는 친문(친문재인)계 핵심인 전해철 행정안전부, 박범계 법무부,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권칠승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등이다. 더불어민주당 ‘신주류’ 친명(친이재명)계와 ‘구주류’ 친문(친문재인)계의 승부처인 이 지점은 당 세력 교체 최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현 여권 인사들이 꼽은 친문 분화 기준점은 ‘친명계’다. 민주당 신주류인 친명계의 양적·질적 파워에 따라 구주류 장기 집권에 마침표를 찍는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진보진영 한 관계자는 “친문을 포함한 범친노(친노무현)계가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약 20년간 주류로 있지 않았냐”라며 “친명계의 등장은 공고하던 범친노계의 아성을 깨는 일대 사건일 수 있다”고 했다.
민주당발 권력 분화의 물꼬는 트였다. ‘콘클라베(교황선출 투표)’ 방식으로 3월 24일 치른 원내대표 경선에서 친명계인 박홍근 의원은 친문계 박광온 의원을 제치고 원내사령탑에 올랐다. 재적 172명 중 166명 의원이 참여한 이날 경선은 과반(87명) 득표자가 나올 때까지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반복해서 적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최종 득표수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90명 안팎의 의원들이 박홍근 원내대표를 지지한 것으로 추산된다. 민주당 전체 의원 가운데 절반가량이 친명 원내사령탑에 지지를 보낸 것이다.
친명계는 핵심 측근인 정성호·김남국 의원 등의 ‘7인회 2선 후퇴’에도 불구하고 원내대표 경선 이후 당 주요 당직을 꿰차면서 몸집 불리기에 나섰다. 현 비대위에도 박지현 공동위원장을 비롯해 조응천 이소영 채이배 권지웅 위원이 친명계로 분류된다. 조직부총장과 미래부총장을 각각 맡는 민병덕·양이원영 의원도 친명계로 꼽힌다. 한 당직자는 “당분간 친문계의 전진 배치가 어려운 만큼, 친명계는 더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이에 따라 친명계는 7인회를 비롯한 이해찬계, 박원순계, 초선 연구모임인 ‘처럼회’ 등을 주축으로 새판 짜기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지난 대선 당시 친명계로 분류된 인사는 50명가량이었다. 이해찬계와 박원순계도 최소 각각 10여 명에 달한다. 처럼회 소속 의원도 20명 선이다. 이 수는 원내대표 경선 과반수(87명)와 엇비슷한 수치다. 당 안팎에서 “친명계가 최소 90명 이상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다만 친명계의 원내대표 경선 승리에도 당내 신구 교체를 가늠할 ‘권력지도’는 뚜렷하게 나뉘지 않았다. ‘명낙(이재명·이낙연) 대리전’인 원내대표 경선에서 친명계가 승리했지만, 구주류의 산은 여전히 높다. 신주류인 친명계가 20년간 유지한 친노·친문 아성을 깨트리진 못했다는 얘기다. 실제 현 지도부에는 윤호중 공동비대위원장과 진성준 원내수석부대표, 고민정 원내 전략부대표, 김성환 정책위의장, 송기헌 정책위 수석부의장, 고용진 수석대변인 등 친문계가 포진해 있다.
NY(이낙연)계와 가까운 친문으로는 배재정 비대위원과 오영환 원내대변인 등이, SK(정세균)계와 가까운 범주류로는 조승래 전략기획위원장과 김수흥 입법부대표 등이 있다. 민주당 계파 축이 친명계 외에도 친노·친문 직계, 이들과 가까운 NY계, SK계 등으로 분화된 셈이다.
이 중 친명계는 친문계보다 먼저 분화한 친노계 포섭에 시동을 걸었다. 앞서 대선에서 친노 좌장인 이해찬 전 대표의 ‘이재명 지지’ 연장선이다. 이재명 상임고문의 전국 조직인 ‘민주평화광장’은 이 전 대표의 조직 ‘광장’을 계승했다. 이해찬 지지에 힘입은 이 고문은 참여정부 당시 법무부 장관을 지낸 강금실 변호사를 후원회장으로 영입하기도 했다.
‘포스트 문재인’을 찾지 못한 친문계 다수는 NY계 쪽으로 이동했다. SK계는 친명계와 친문계 사이에서 방황하는 모습이다. 여권 한 인사는 ‘이재명 조기 등판론’을 전제로 “8월 전당대회 결과가 민주당 신주류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라면서도 “5월 전초전을 벌일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5월 전초전의 핵심 변수는 ‘진문(진짜 문재인계)’의 여의도 복귀다. 윤석열 정부 출범(5월 10일)을 계기로 현역인 문재인 정부 장관들이 당으로 복귀하면 친문 입김은 한층 세질 수밖에 없다. 특히 문재인 정부 순장조 중 ‘전해철 박범계 황희 권칠승’ 장관은 친문 직계로 꼽힌다. 이들 4인방은 친문 직계 모임인 ‘부엉이 모임’의 멤버였다. 이 모임 좌장은 전해철 장관이 맡았다. 황희·권칠승 장관 등은 실무 역할을 했다. 좌장 위 회장엔 왕실장 논란을 일으켰던 노영민 전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장이 자리 잡고 있었다.
애초 부엉이 모임은 노무현 전 대통령 퇴임 직후인 2008년 ‘청정회’란 이름의 친목회에 불과했지만, 2012년 대선에서 문 대통령이 패한 뒤 ‘정치적 결사체’ 성격을 띠기 시작했다. 부엉이 모임으로 확장된 이들 결사체가 수면 위로 부상한 것은 2018년 8월 민주당 전당대회였다. 이 모임의 ‘문재인 친위 조직’ 논란에 불을 지핀 이는 다름 아닌 전해철 장관이었다. 그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부엉이 모임에 대해 “밤에도 (옆에) 있으면서 문 대통령을 지키는 역할을 하겠다는 의미”라고 밝혀 ‘문재인 사조직’ 논란을 자초했다.
전해철 장관은 노무현 정부 실세였던 3철(전해철·양정철·이호철) 중 한 축이었다. 3철 중 현재 여의도에 발을 걸친 이는 전 장관뿐이다.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은 문재인 대통령 퇴임과 함께 ‘정계 은퇴’를 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 당선 직후 ‘5년간 백의종군’을 약속했던 그가 현 정부 폐막과 함께 정치 퇴장을 선택한 셈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과 동시에 “내 역할은 끝났다”며 백의종군한 양 전 원장이 직을 맡은 것은 2020년 총선 전 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장직이 유일하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대통령 재임 기간 최측근 인사가 임명직과 선출직을 하지 않은 첫 사례일 것”이라고 했다. 부산 친노의 핵심인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2018년 지방선거 이후 출국길에 오르면서 일찌감치 정치권에서 멀어졌다.
전해철 장관은 여의도 복귀와 동시에 당권 도전도 고려할 것으로 전망된다. 범주류 한 관계자는 “전 장관이 8월 당권 도전에 나설 것”이라고 예상했다. 전 장관의 ‘직접 등판’은 이재명 고문의 조기 등판과 맞물려 당내 권력구도의 최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전 장관뿐 아니라 홍영표 의원을 비롯한 친문계 일부와 이인영 통일부 장관 등 86그룹(80년 학번·60년대 생)이 직접 선수로 등판할 땐 계파 갈등 구도가 고차방정식으로 격상할 것으로 보인다. 상수는 지난 대선에 이은 ‘반명(반이재명) 연대’의 재등장이다. 전해철·홍영표 등의 친문계가 전당대회 초반, 연대 전선을 펼칠 경우 ‘반명 연대’는 자연스럽게 구축될 전망이다.
문제는 지난 20년간 반복된 계파 갈등의 데자뷔다. 당 일각에선 ‘친노·친문 vs 비노·비문’ 갈등이 또 재연될 것이란 우려가 분출하는 모습이다. 당장 민주당은 송영길 전 대표의 서울시장 출마를 둘러싼 갈등의 매듭을 풀지 못하고 있다. 부엉이모임 후신격인 ‘민주주의 4.0’은 송 전 대표를 향해 “후안무치한 행동”이라고 직격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논란 끝에 서울을 ‘전략 선거구’로 지정했다. 당 관계자들은 “송 전 대표는 물론, 박주민 의원 등의 경쟁력이 낮다는 당내 여론을 반영한 결정”이라고 했다. 송 전 대표의 운동권 동지인 김민석 의원은 송 전 대표 대신 ‘신 4인방(강경화 강병원 김현종 박용만)’을 띄우자고 주장했다. 박지현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은 “청년과 여성을 대표할 후보를 찾자”고 대체재 가능성을 언급했다.
그러자 당 내부에선 이낙연 전 대표를 비롯해 정세균 노무현재단 이사장 등의 ‘대선 주자 차출설’이 또 고개를 들었다. 여권 한 관계자는 “이 전 대표도 출마를 권유받은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다른 관계자는 “오세훈 현 서울시장을 이길 수 있는 카드는 이낙연·정세균 카드 정도”라고 했다. 민주당 MZ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대 중반 출생자) 당원들 사이에선 지난 대선 때 영입한 김슬아 마켓컬리 대표 이름도 거론된다.
송영길 서울시장 후보 출마를 둘러싼 논란을 조기에 매듭짓지 못할 땐 ‘진보판 친이(친이명박) vs 친박(친박근혜)’ 갈등이 발발할 수도 있다. 2016년 정국을 들썩인 국정농단 게이트도 풀지 못한 ‘친이·친박’ 갈등이 하나의 원인이 됐다. 민주당 한 당직자는 “5월 들어서면 윤석열 정부 출범(10일)을 시작으로, 하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 등 정치 이벤트가 연이어 있다”며 “보수진영의 ‘(컨벤션 효과) 호재’와 진보진영 ‘악재’가 맞물린 형국”이라고 했다.
윤지상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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