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다. '나 하나쯤이야', '누군가가 하겠지'하는 마음에 밀리고 밀려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훼손되고 있는 지구. 그렇지만 한 번쯤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지구가 온전히 지금 우리 세대의 것인지, 이렇게 망가진 지구를 미래 세대에게 물려주는 것이 맞는 일인지.
1년의 시간 동안 자연과 눈높이를 맞추며 더 많은 것을 보려고 노력해 왔다. 세상에 사소한 생명은 없다는 것을 끊임없이 이야기했으며 이 아름다운 자연을 온전히 미래 세대에게 물려줘야 한다는 사명감을 시청자들에게 전해주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 365일 간의 기록 산과 강과 바다와 우리 일상의 환경이야기를 만나본다.
'침몰선의 부활, 강철숲'은 차가운 강철선이 바다 속에서 생명의 숲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다뤘다. 하지만 이런 바다의 복원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 바다는 위기에 처해있다. '웃어라 상괭이'는 해양생물보호종이면서도 매년 천여 마리가 안강망에 질식사하고 있는 우리 바다의 참혹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없다면 우리의 미래 세대는 우리 바다에서 더 이상 상괭이를 볼 수 없을지 모른다.
바다 생명을 위협하는 것들 중 또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플라스틱 쓰레기다. '지금 우리 바다는'편은 그물 올리기가 무섭다는 어부들의 하소연을 통해 과연 플라스틱이 얼마나 바다환경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추적한 프로그램이었다. 더 문제인 것은 바다 플라스틱 쓰레기가 육지에 사는 우리의 식탁까지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생선의 배 속에서 김밥 용기가 나오고 플라스틱 패트병이 나오는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할까.
한반도는 곰의 땅이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벌어졌던 해수구제정책으로 그 수가 급격히 줄었고 급기야 1983년 설악산에서 마지막 곰이 밀렵됨으로써 곰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말았다. 하지만 20여 년 전부터 꾸준히 벌여온 복원사업으로 현재 70여 마리가 지리산 일대에 살고 있다. 최소 존속 개체수인 50마리를 넘겨 안정적인 수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 안심하기 이르다. 각종 관광개발사업으로 숲이 사라지고 덫과 올무로 인해 많은 곰들이 다치거나 죽고 있기 때문이다.
사향노루는 더 큰 문제다. 그동안 전설로만 전해졌던 한반도의 사향. 그런 사향을 추적했던 KBS환경팀은 드디어 사향노루의 실제 모습을 생생하게 카메라에 담아낼 수 있었다. 사향노루의 울음과 배변, 구애와 교미까지. 이와같은 모습은 방송사상 처음으로 촬영된 것으로 실제로 한반도에 사향노루가 서식하고 있음을 눈으로 확인하는 쾌거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사향노루 역시 여전히 위기에 처해 있음을 확인했다. 밀렵꾼들의 덫에 의해 새끼를 키우고 있는 어미의 앞발이 잘려나간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베일에 싸여있던 사향을 존속시키기 위한 보다 근복적인 대책이 빨리 강구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수달이 산다는 건 아직 강의 생태계가 건강하다는 뜻이다. 물 속의 최대 포식자 수달이 살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먹잇감인 물고기들이 많이 살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천강과 달리 내성천은 강의 무분별한 개발이 얼마나 크게 생태계에 영향을 미치는지 잘 보여준다. 수많은 모래톱과 맑은 물, 그리고 모래무지 등 다양한 강의 생태를 갖고 있었으며 사람들의 삶과 요모조모 어울리며 흘렀던 내성천.
하지만 4대강 사업의 일환인 영주댐이 건설되면서 강의 모습이 순식간에 변해버렸다. 모래가 사라졌고 새들의 둥지가 줄었으며, 모래톱에서 추억을 쌓던 사람들이 떠나버렸다. 생명은 물론 강에 대한 아름다운 기억까지 잃어버린 상황. 과연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개발이었을까.
재두루미는 전 세계에 수천 마리밖에 없는 1급 보호종에 속한다. 이 귀한 새가 10여 년 전만해도 한강 하구에 천여 마리나 찾아오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겨우 서너 마리일 뿐이다. 시베리아로부터 2천 킬로미터를 날아왔지만 내려앉을 서식지를 잃어버린 것이다. 새들의 서식지를 하루가 다르게 점령해가는 아파트숲.
찾아왔다고 해도 위험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 한 해 800만 마리의 새, 하구 2만 마리의 새들이 유리창 충돌로 죽어가고 있다. 아름다운 경관을 조망하기 위해, 소음을 막기 위해 오늘도 수많은 유리창들이 도심을 채워나가고 있다. 하지만 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새들에겐 죽음의 덫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스티커 작업 등 다양한 방법들이 시도되고 있지만 여전히 지지부진한 상태. 우리는 언제까지 새들의 죽음을 방관하고 있어야만 될까.
인구 79억 명의 지구에 한해 천억 벌의 옷이 생산된다. 때문에 겨우 1년도 입지 않은 옷, 심지어 포장지도 뜯지 않는 옷들이 버려지고 있다. 우리는 옷을 버릴 때 막연히 '누군가 입겠지'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하지만 이렇게 버려진 옷들 중 우리나라에서 재활용되는 옷의 비중은 50%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가나와 같은 개발도상국에 수출된다. 세계 5위의 중고의류 수출국인 우리나라. '옷을 위한 지구는 없다'는 과연 옷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환경적 문제를 일으키는지, 또 버려지면서 일으키는 환경문제가 무엇인지를 심도있게 추적했다.
'먹다버릴 지구는 없다' 편 역시 매년 생산량의 30퍼센트를 버리고 있는 음식문제를 이야기한다. 버릴 음식을 생산하기 위해 숲을 태우고, 물을 소비하고, 대기를 오염시키는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1년의 기록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메시지는 단 하나, 공존. 보려고 하지 않았던 불편한 진실에 맞서, 자연의 편에서, 미래세대의 편에서 세심하게 관찰하고 기록했던 지난 시간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누리고 사는 이 자연은 우리의 것이기도 하지만 대를 이어 살아갈 미래세대의 것이기도 하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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