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정호영 등 ‘아는 사람’ 발탁, 인재풀 한계 뚜렷…안철수와 불협화음 제동장치 필요성 대두
새 정부의 내각 인선이 마무리된 가운데 윤석열 당선인 인사 스타일은 윤곽을 드러냈다. 한동훈 후보자 지명에서 볼 수 있듯이 철저하게 선악을 구분, ‘나쁜 짓’을 막기 위한 인사라면 정무적 고려는 과감히 배제하는 모양새다. 특유의 직진 본능도 여실히 드러냈다. “누군가 브레이크를 밟아 줘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말이 국민의힘 내부에서조차 나온다.
#나쁜 놈 잡는 인사?
새 정부 2차 조각 인선안이 발표된 4월 13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브리핑룸에선 기자들 사이에 탄식이 터져 나왔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이름 ‘한동훈’이 거명된 직후다. 문재인 정부가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윤석열’을 임명한다고 했을 때 기자들로부터 나왔던 반응을 떠올리게 했다.
이날 스포트라이트는 한동훈 후보자에게 쏠렸다. 인선 발표 내내 윤 당선인 바로 옆자리를 지킨 한 후보자를 향해 사진기자들의 플래시 세례가 쏟아졌고 윤 당선인을 향한 첫 인선 관련 질문도, 후보자들을 향한 첫 질문도 모두 한 후보자에게 집중됐다.
윤 당선인 역시 회견 내내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한동훈 지명이 가져올 정치적 파장을 예측한 듯 보였다. 윤 당선인은 한 후보자를 두고 “절대 파격 인사는 아니다”라고 했다. 윤 당선인은 “유창한 영어 실력으로 다양한 국제 업무 경험도 갖고 있다. 법무행정이 경제 발전을 뒷받침할 수 있는 법무행정 현대화, 글로벌 기준에 맞는 사법제도로 정비해나가는 데 적임자”라면서 그의 능력을 치켜세웠다.
더불어민주당은 격앙했다. “인사 참사 정도가 아니라 대국민 인사 테러” “공정이 아닌 공신(功臣)을 챙겼다” “노골적인 정치 보복 선언” “한동훈보다 별장 성 접대 사건의 김학의 전 차관이 차라리 낫겠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등 박홍근 원내대표는 한동훈 후보자 지명 소식이 나오자마자 지명 철회를 요구하며 봇물처럼 비판을 쏟아냈다.
정치권에서는 범죄자를 오랫동안 다뤄온 ‘26년 검사’ 출신 윤 당선인의 내면세계가 이번 첫 정무직 인사에 반영된 것으로 해석한다. 정의 구현이라는 명분이 있다면 상대 정파가 ‘측근 인사’라고 아무리 비판해도 그 인물을 과감히 쓴다는 것이다.
한 후보자가 지명된 당일 기자들에게 내놓은 발언에서도 이런 인사 기조가 묻어난다. 한 후보자는 윤석열 정부 초대 법무부 장관으로서 검찰 개혁 과제와 관련한 기자의 질문에 “검찰은 법과 상식에 맞게 진영을 가리지 않고 나쁜 놈들을 잘 잡으면 된다”고 답했다. 법무 행정을 총괄하게 될 자신도 나쁜 놈 잡는 검찰의 원활한 임무 수행을 위해 지원할 것이고 이런 인식이 바로 당선인의 생각이라는 뜻으로 읽혔다.
국민의힘 법조인 출신 한 현직 의원은 “한 후보자의 나쁜 놈 발언에서 보듯이 범죄를 다루는 검사 출신은 선악 구분의 양단 논리에 빠져들기 쉽다. 이렇게 되면 선을 위해서 어떤 인사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빠지고 상대 정파는 물론, 국민들로부터 ‘내 식구 챙기기’ 지적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윤 당선인이 과거 문재인 정부를 겨냥, 법무부 장관에 최측근 정치인을 앉혀 법치주의를 유린했다고 비판해왔던 점을 고려하면 한동훈 후보자 지명이 ‘내로남불’ 후폭풍에 휩싸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명박 정부 때 정치를 했던 전직 국회의원은 이렇게 평가했다.
“이명박 정부 때 10년 만의 정권교체라는 분위기에 들떠 통일부, 여성부, 해양수산부 폐지 등을 밀어붙이며 곧 야당이 될 통합민주당과 격렬한 충돌을 했다. 당시 이명박 당선인은 기업인 출신이라 불도저식으로 밀어붙이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 당선인은 인사에 있어서 비교적 충돌을 줄이는 보수적 모습을 보였다. 법무부 장관만 해도 지장이지만 덕장으로도 평가받는 김경한 법무부 차관을 기용했다. 지금의 한동훈 후보자는 지장은 맞는데 덕장의 면모가 부족해 충돌이 빚어지는 것이다.”
#내가 잘 아는 사람?
한동훈 후보자 지명에서 드러나듯이 오랫동안 알고 지냈거나, 최근에 알았더라도 확실히 파악했다고 생각하는, 이른바 ‘아는 사람’을 중용하는 것도 윤 당선인 인사 스타일로 포착된다. 이 스타일 역시 검찰총장 시절 정권과 직접 겨뤘던 윤 당선인 특유의 직진 본능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한동훈 후보자와 함께 ‘의외의 인선’으로 불리는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도 한 후보자처럼 윤석열 당선인의 오랜 지인이다. 경북대 의대를 다닌 정 후보자는 대학 시절 서울대 법대 다니던 친구로부터 윤 당선인을 소개받아 윤 당선인과 40년가량 알고 지낸 사이로 알려졌다.
윤 당선인이 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원 댓글 사건 파동으로 대구고검에 좌천됐을 때 경북대병원에 근무하던 정 후보자는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함께 소주잔을 기울이던 ‘절친’으로 전해진다. 정 후보자는 3월 26일 윤 당선인과 김부겸 국무총리가 만나는 데 다리를 놨던 것으로 전해진다. 행정안전부 장관 후보로 지명된 이상민 변호사도 윤 당선인의 충암고·서울대 법대 직속 후배다. 윤 당선인이 정치 참여 선언을 했을 때부터 물밑 조력자 역할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권영세 통일부 장관 후보자 역시 윤 당선인이 대학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다. 권 후보자는 윤 당선인이 사석에서 ‘영세 형’이라고 부르는 서울대 법대 2년 선배로 사법고시 공부도 같이한 사이다. 과거 인연도 깊지만 윤 당선인이 정치에 입문한 이후에도 권 후보자는 윤 당선인에게 많은 도움을 주면서 능력을 인정받았다.
오랜 인연은 아니지만 ‘후발 인연’도 윤 당선인은 중시한다. 인수위 기획조정분과 간사로서 새 정부 국정과제 수립의 실무를 이끌어온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가 대표적이다. 추 후보자는 국민의힘 원내수석부대표를 하면서 이준석 대표와 대선 후보였던 윤 당선인과의 갈등이 벌어지자 ‘악역’을 자처, 이 대표를 강하게 비토하는 역할을 했고 결국 이 대표가 돌아오게 하는 마중물 역할을 했다.
경선에서 얼굴을 붉혔던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도 윤 당선인의 당내 경선 승리 이후 선대본부 정책본부장에 이어 인수위 기획위원장으로 보임되면서 짧은 시간에 깊은 인연을 쌓았다.
‘아는 사람’을 많이 쓰다 보니 윤 당선인은 인재풀 부족, 다양성 결여 등의 비판에도 직면해있다. 이념과 진영에 구애받지 않고 탕평 인사를 하겠다는 애초 약속과 달라진 것이다. 실제로 새 정부 첫 내각은 특정 지역·학교·성별·세대 등으로 쏠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한덕수 총리 후보자와 장관 후보자 18명의 평균 나이는 60.6세로, 윤 당선인이 대선 당시 공언했던 ‘30대 장관’은 없었다.
출신 지역은 서울(4명) 경남(3명) 대구(2명) 충북(2명) 전북(2명) 강원·경북·대전·부산·제주·충남이 각 1명씩이었다. 권역별로는 영남이 7명으로 가장 많았고, 광주·전남 출신은 1명도 없어서 자신의 지지 기반에 대한 보상은 있었지만 통합이라는 가치에는 소홀했다는 비판을 낳고 있다. 출신 대학은 서울대(10명) 고려대(4명) 경북대(2명), 광운대·육군사관학교·한국외대 각 1명씩이었다. 원희룡 박진 권영세 한동훈 이상민 등 서울대 법학과 동문이 무려 5명이나 되는 점도 눈총을 받는다.
#브레이크는 누가 잡나
대통령의 사실상 유일한 권한이 ‘인사권’이다. 재정집행에 대한 권한이 있지만 국회가 예산 심의를 하기 때문에 대통령은 국가 재정도 마음대로 편성할 수 없고, 정부조직도 법 개정 사항이어서 최근 여가부 폐지 논란에서도 드러났듯이 국회의 협조 없이는 대통령 마음대로 정부 조직 하나 개편하기 어렵다.
그러나 인사권만큼은 대통령이 포괄적으로 큰 권한을 갖고 있다. 국회 표결이 있어야 하는 국무총리를 제외하고는 인사청문회 제도가 있지만 임면에 대해 강제 사항이 없기 때문에 정무직 인사에 대해서는 대통령의 인사권 행사 폭이 넓다. 때문에 인사에 대해서만큼은 여러 유혹에 빠지기 쉽다는 것이 여러 정부를 경험해본 인사들의 한목소리다.
봉합은 됐지만 안철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위원장과 최근 인사 갈등 사태가 보여주듯 이번 첫 조각에서 윤 당선인 뜻에 대한 내·외부 제동장치가 과연 작동했는지에 대해 논란도 불거진다. 공동정부라고는 하지만 안 위원장 뜻도 잘 반영되지 않았다는 얘기가 나올 만큼 윤 당선인의 ‘마이웨이 인사’였다는 지적이 높다.
실제로 4월 14일 윤 당선인과의 만찬에서 의기투합하며 인수위 업무 보이콧 하루 만에 업무에 복귀한 안 위원장은 4월 15일 출근길에서 “공동정부 정신이 훼손될 만한 일이 있었습니다만, 다시 국민들께 실망을 끼쳐드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 했다”고 언급, 인사를 둘러싼 갈등이 있었음을 드러냈다.
윤석열 당선인 대선 캠프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윤 당선인의 장점은 소통력이 좋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인사에서는 소통과는 다른 모습이 목격됐다. 여소야대 상황이라는 점을 분명히 알고 야당과의 마찰을 줄이려면 당선인의 행보에 제동을 걸어줄 수 있는 브레이크 시스템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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