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대 사건 수사, 경찰 아닌 중수청으로 이관…입법독주라면 국민이 지방선거에서 심판할 것”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추진 배경이 궁금하다.
“우선 검수완박이라는 용어 자체가 잘못된 용어이자, 잘못된 프레임이다. 민주당은 ‘검찰 수사·기소권 완전 분리’라고 명명하고 있다. ‘박탈’에는 원래 그 사람 것인데 빼앗는 것이라는 부정적인 뉘앙스가 담겨 있다. 검찰이 가진 수사권은 본래 검찰 것이 아니다. 한시적으로 검찰에 부여됐다가 정상화되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인권 보장을 위해서는 수사와 기소를 각각 다른 기관이 맡아야 한다. 이건 형사소송법 기본 원칙이다. 소추권자가 재판을 하게 되면 다 유죄 나지 않겠나. 소추권자가 수사까지 하면 소추를 목표를 두고 수사를 하지 않겠나. 수사하는 사람이 소추권을 가지면 무죄의 증거들을 버리고 유죄의 증거들만 억지로 끌어모아 없는 죄를 만들어 재판에 넘길 가능성이 많다. 수사를 하는 사람, 기소를 하는 사람, 재판을 하는 사람은 모두 분리돼야 한다.”
―수사·기소가 분리되면 공소유지가 어려울 것이란 반박도 있는데.
“복잡하고 난해한 사건은 수사, 기소하는 사람이 수사 단계부터 긴밀히 상호 협업, 협력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판단되는 사건은 수사 단계부터 협업이 이뤄진다. 기소권을 가진 검찰이 일체 관여할 수 없는 거 아니냐, 단절되는 거 아니냐는 우려는 과장됐다.”
―사안을 감안했을 때 전문가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논의가 부족해서 이견이 좁혀지지 않는 상황이 아니다. 수사·기소 분리에 대한 전문가 의견은 충분히 수렴됐다. 지난해 2월 입법 공청회도 했었고, 수사·기소 분리 필요성을 보여준 수십 년의 역사가 있다. 다만 법조계, 학계, 언론 모든 분야에 통틀어 검찰이 주도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의견이 굉장한 영향을 미친다. 이제는 입법적인 결단이 필요할 때다.”
―수사·기소 분리는 2~3년 전 수사권 조정 단계에서 나왔어야 했지 않나. 지금 급하게 추진하는 이유는.
“작년부터 하려고 했다. 선거를 앞두고 민생을 우선하기 때문에 법안 처리가 적절치 않다는 당내 의견이 있어서 처리를 미뤄왔다. 검찰개혁 본래 목표는 수사와 기소의 분리였다. 공수처를 설치하고 검·경 수사권을 조정하면 검찰이 개혁 의지에 공감하고 협조해줄 거라 생각했다. 2020년 12월 말 법무부로부터 검찰개혁 추진 사항을 보고받아 봤더니 취지에 정면으로 역행하고 저항하고 있더라. 검·경 수사권만 조정해서 아무 효과가 나타나지 않은 거다. 검찰개혁을 위해서는 수사·기소 분리를 확실하게 하는 것 말고는 의미가 없다. 직전 검찰총장이 대통령으로 직행하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검찰공화국 우려는 현실이 됐다. 게다가 한동훈 검사장을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했다. 이심전심으로 검찰권을 통치수단으로 활용할 것이다. 5월 10일 이후 윤 당선인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법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다. 그렇게 되면 법안이 물 건너가는 거다.”
―문재인 정부 비리 사건을 덮으려고 정권 말 서둘러서 처리를 강행하는 것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살아있는 권력형 비리, 살아있는 권력은 문재인 대통령 쪽이 아니다. 윤석열 당선인은 없는 죄를 만들어 내는 과잉 수사를 해왔다. 꼭 필요한 수사는 꼭 필요한 선에서 해야 한다. 하지만 큰 틀에서 볼 때 전 정권 표적 수사가 반복되는 게 끊어내야 할 고리지, 이걸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하나.”
―4월 13일 리얼미터 조사(에너지경제신문 의뢰, 95% 신뢰수준에서 표본오차 ±3.1%포인트)에 따르면 검수완박에 반대하는 입장이 52.1%, 찬성 38.2%였다.
“국민들이 반대한다는 건 동의하기 어렵다. 정반대 여론조사도 있다. 특정 여론조사가 국민들의 여론을 잘 반영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언론도 전문가도 내용을 잘 모르는 상황이다. 국민들이 내용을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충분한 설명을 하면 여론조사가 달라질 수 있다.”
―야당은 검수완박 법안이 5월 초 공포돼 3개월 뒤 시행되면, 그 이후부터는 현재 진행 중인 주요 사건(대장동 비리 사건, 산업부 블랙리스트 의혹 등)에 대한 수사가 종결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로 인한 국민적 피해가 심각하다고 강조하는데.
“국민적 피해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대장동 사건이 과연 성남 시민들에게 피해를 준 건지, 이익을 준 것인지 수사 결과에 따라 달라질 문제다. 블랙리스트 사건도 수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과잉·표적 수사일 수 있다. 국민적 피해라는 것은 정치적인 주장이자, 야당의 주장일 뿐이다. 3개월 유예 기간을 뒀기 때문에 여야 합의로 중수청을 만들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현직 검사와 검찰 수사관들이 중수청으로 얼마든지 옮겨갈 수 있다. 그럼 대장동 사건 팀도 그대로 옮겨 갈 것이고, 블랙리스트 팀도 그대로 갈 수 있다. 수사 공백이 전혀 발생하지 않는다. 만약 팀이 안 온다고 하더라도 수사에 대한 노하우가 있거나, 경험이 있는 사람이 수사를 담당하면 된다.”
―대표 발의한 ‘중대범죄수사청법’ 내용은 무엇인가.
“2021년 2월 9일 ‘중대범죄수사청법 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검찰이 담당하는 6대 범죄(부패범죄·경제범죄·공직자범죄·선거범죄·방위사업범죄·대형참사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범죄) 등 중대범죄에 대한 수사를 전담하는 별도의 기관을 설치하여 수사권을 이관하는 것이다.”
―민주당 의원들에게 “검찰 수사권을 분리하면 검찰의 6대 범죄 수사권은 어디로 가는 게 아니라 그냥 증발하는 것”이라는 내용이 담긴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증발’이란 표현으로 논란이 됐었는데.
“증발 뜻은 검찰 수사권이 사라지는 것이지, 경찰로 그대로 이관되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검찰 수사권이 사라진다는 건 기소권을 가진 사람들이 하는 수사를 말하는 거다. 기소권을 가진 사람이 수사를 못하게 하는 게 수사·기소 분리다. 다만 그 사건 자체는 연속성이 있기 때문에 전혀 공백이 발생하지 않는다. 그런데 마치 부정부패 수사가 사라지는 것처럼 호도를 한다. 검찰의 무리한 표적 수사, 먼지떨이 수사가 사라진다는 말이었다.”
―수사권 조정 이후 보완 수사도 많아지면서 인력 과부하에 대한 경찰 내 불만들이 크다. 경찰에서는 법 통과 후 검찰의 보완 수사 요구 등 과부하가 더욱 심해질 수도 있다는 걱정도 나온다.
“과부하는 조금 있지만, 수사 환경이 바뀐 탓도 있다. 하지만 수사·기소 분리와는 별개의 문제다. 수사권 조정에 따른 후속적인 보완책을 마련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문제와는 분리해 추진할 일이다. 수사권 조정에서 실무적으로 보강해야 될 부분을 찾고, 인력 증원이 뒷받침돼야 한다. 경찰은 지금도 (검찰이 가진) 6대 범죄 수사권을 가지고 있다. 검찰이 기존에 하던 수사를 공수처나 경찰이 일시적으로 인수인계를 해야 하는 부분은 있겠지만, 검찰이 현재 진행 중인 사건들은 많지 않을 거다.”
―대기업 담합과 부당 지원 등 검찰의 법률적 전문성과 수사 노하우가 필요한 사건들이 있다. 수사권 조정 이후인 지난해에도 전체 사건 중 61%를 검찰이 직접 수사 중인 상황이다. 최근 ‘계곡 살인사건’을 두고도 경찰의 수사 전문성에 대한 논란이 많았다.
“증권 범죄나 담합 사건은 전문화된 경제 부분이기 때문에 경찰과 검찰이 둘 다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부분을 경찰이 다하겠다는 게 아니고 중수청을 만들어 그쪽으로 이관하겠다는 것이다. 검찰이 하는 걸 경찰이 다하게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는 잘못됐다. 가평 계곡 살인사건 역시 수사·기소 분리와는 상관이 없다.”
―법 통과 3개월 이후 검찰 수사권이 박탈되면 새 수사기관이 생길 때까지 경찰이 사실상 모든 수사를 맡을 수밖에 없다. 법조계에서는 수사 공백이 불가피하고, 수사 지연 등 부작용이 심화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내는데.
“3개월의 공백이라는 게 얼마나 큰 공백인지 모르겠다. 내사만 6개월, 1년이 걸리는 사건들도 있다. 물론 현장 범죄 같은 시급한 수사가 있다. 살인사건, 절도사건, 교통사고, 당장 잡아야 하는 사기꾼들 말이다. 그런 사건들은 과거부터 경찰이 계속 담당해왔고, 이후로도 그럴 것이다. 검찰이 담당하는 6대 범죄 중에는 고소·고발 후 내사 단계를 거쳐 진행하는 사건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급한 사건이 없다. 3개월 (수사를) 안 한다고 해서 우리나라가 갑자기 부정부패 공화국이 되는 건 아니다. 실제 국민들을 불안하게 하는 사건은 경찰들이 맡고 있다.”
―‘한국판 FBI(미국 연방수사국)’ 신설 법안을 냈다. 중대범죄수사청과 국가수사본부를 합치는 형태로 한국판 FBI를 만들자는 건데, 구체적인 로드맵은.
“중대범죄수사청과 국가수사본부를 합치는 형태로 한국판 FBI를 만들자는 밑그림만 나왔을 뿐 구체적 로드맵이 제시되지 않은 상태다. 수사·기소 분리 법안 통과 이후 구체적으로 논의할 예정이다.”
―일각에서는 ‘경찰 비대화’ 우려도 나온다. 경찰 권력을 견제하기 위한 제도가 있다면.
“수사·기소 분리는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해서 검찰이 기소 및 공소를 유지하는 기능을 하는 것이다. 기존에 검찰이 담당하던 6대 범죄 수사는 경찰이 하는 것이 아니라 제3의 기관이 담당하게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권 비대화에 대한 우려가 있다면, 여야가 합의해서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해야 할 것이다.”
―지금 구상으로는 중수청이 법무부로 갈 수 있다.
“한동훈이라는 변수가 생긴 거다. 법안 심사 단계에서 법무부 장관이 중수청을 좌지우지할 수 없는 차단 장치를 마련해 두거나, 공수처처럼 어느 부처에도 소속돼 있지 않는 소속으로 둘 수 있겠다. 중수청 만들 때 윤석열 라인 심복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이 수사를 장악하게 된다면 수사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해칠 수 있다.”
―입법 독주로 민심의 역풍이 불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국민의힘도 민생을 걱정한다면 이 문제에 대해 필리버스터를 할 일이 아니다. 국민의힘 의원들도 정치적, 정략적인 이유로 반대하는 것이지 검찰 내 직접 수사에 대한 폐단이 엄청 크다는 걸 알고 있을 거다. 민주당이 입법 독주를 하면 국민 분들이 지방선거에서 심판을 하실 거다. 의석 수로 밀어붙이면 안 되지만, 거대 정당이 담론으로 정해서 막을 방법이 없을 땐 국민들에게 심판을 맡겨야 한다. 개혁은 그 순간 역풍을 맞을 수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한 단계 전진할 수 있는 과제들도 있다. 검찰 수사·기소 분리는 사법정의 구현을 위해서 결단해야 할 문제다.”
설상미 기자 sangmi@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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