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이 이국철 SLS그룹 회장으로부터 10여 년간 거액의 금품을 제공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돼 파문이 일고 있다. 지난해 8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로 내정됐을 당시 인사청문회 모습. 그는 결국 각종 비리 의혹으로 낙마했다. 주간사진공동취재단 |
신재민 전 차관은 지난해 8·8 개각 당시 문화관광체육부 장관 후보자에 내정되었다가 각종 비리 의혹이 제기되며 낙마한 바 있다. 당시 제기된 의혹은 탈세, 5차례 위장 전입, 부동산 투기, 증여세 탈루, 배우자 위장취업 및 월급 부당수령 등 손에 꼽기도 어려워 장관 후보자에서 낙마하면서 ‘의혹 백화점’이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 신 전 차관은 당시 의혹이 커지자 “더 이상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라며 후보직에서 자진 사퇴한 바 있다.
그러나 이국철 SLS그룹 회장의 신 전 차관에 대한 폭로로 인해 그는 이미 레임덕 논란에 시달리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더 큰 짐을 안기게 되었다. 청와대 내부에서는 잇따른 대통령 측근들의 비리 의혹이 불거지자 상당히 곤혹스러워하고 있는 분위기다. 신재민 전 차관을 잘 아는 한 청와대 관계자는 “두 사람이 10년 동안 가까운 사이였는데 왜 그런 의혹을 제기하는지 모르겠다.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다”며 씁쓸한 심경을 전하기도 했다.
더구나 신 전 차관이 이명박 대통령과 남다른 인연을 쌓아왔다는 점은 그의 비리를 단순한 ‘개인의 비리’로 보기 어렵게 만든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여기에서 신 전 차관의 이력을 잠시 되돌아보자.
그는 <한국일보> 기자 시절이던 지난 1997년 2월 워싱턴 특파원으로 발령받게 된다. 신 전 차관이 이명박 대통령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이 무렵부터. 당시 이 대통령은 1998년 선거법 위반으로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고 워싱턴에서 1년 여간 머물렀고, 이 시기에 두 사람이 골프라운딩을 통해 교류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이 대통령과 교분을 쌓았던 인사들 상당수는 훗날 이명박 정부에서 요직에 오르게 된다. 이와 관련해 비슷한 시기에 <한겨레> 워싱턴 특파원을 지냈던 정연주 전 KBS 사장은 한 인터넷 매체 기고문에서 당시 이명박 대통령과 워싱턴에서 교분을 쌓은 인사들과의 관계에 대해 ‘워싱턴 커넥션’이라 표현한 적이 있다. 정 전 사장은 이 기고문에서 “이명박 전 의원이 99년 워싱턴에 머물고 있을 당시 주미 한국 대사관에 근무하던 인사들이 이명박 정권 출범 당시 주요 자리에 다소 포함되어 있었다”라고 주장했다. 그 예로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당시 주미 한국대사관 정무공사), 김성환 외교통상부 제2차관(당시 주미 대사관 경제 참사관), 김영호 행정안전부 제1차관(당시 주미 대사관 행정자치부 주재관), 홍석우 중소기업청장(당시 주미대사관 산자부 주재관)’ 등을 거론했다. 정 전 사장은 이 ‘워싱턴 커넥션’을 좀 더 구체적으로 확인시켜주는 인물로 신재민 전 차관을 꼽기도 했다. 신 전 차관은 워싱턴에서의 인연으로 훗날 이명박 대통령 후보의 캠프로 영입된다.
워싱턴에서 돌아온 이후 <한국일보> 정치부장을 맡게 된 그는 청와대가 언론사로 전화하고 정보원을 상주시키며 조사하는 ‘관행’를 강하게 비판하며, 이를 바로잡겠다고 밝힌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의견을 지지하는 칼럼을 써 눈길을 끌기도 했다. 2002년 3월 3일자 칼럼 ‘청와대 전화부터 사절입니다’에서 신 전 차관은 “청와대와 국가정보원의 로비는 치열했고 또 거부하기도 힘들었다. …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이 공무원으로 하여금 조간신문 가판의 구독을 금지시키고 언론에 대한 뒷거래를 일절 못하게 한다고 했다.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기자생활을 하면서 가장 성가셨던 일이었는데 청와대부터 그러지 않겠다니, 정말 두 손을 들어 반길 일이다. ‘정권과 언론의 유착관계’라는 표현에 대해 ‘별로 얻어먹은 것도 없는데 유착이라니…’ 하는 억울함이 마음속에서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지만 언론이 그동안 제 할 일을 제대로 다 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그냥 삭이기로 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번에 이국철 회장이 폭로한 내용의 사실 여부를 단정할 수는 없으나, 신재민 전 차관의 행보와 입지를 보았을 때 기업들로부터의 ‘로비 대상’이 되었을 가능성은 적지 않다는 평가다. 이 회장 역시 “신 전 차관은 깃털에 불과하다”며 “신 전 차관을 ‘창구’로 청와대 실세들에게 금품이 건네졌을 것”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이 회장이 건넸다는 돈의 규모를 감안하면, 신 전 차관 혼자 사용했을 것으로 보기가 어려운 상당한 액수라는 점도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이 회장이 지난 2002년 신 전 차관이 기자로 있을 때부터 건넸다고 주장하는 액수는 10억 원이 넘는 수준. 이 회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신재민 전 차관이 2002년부터 2006년 언론사에 다닐 때 매달 300만~500만 원 또는 500만~1000만 원씩을 줬고, 이명박 대통령 후보 대선 캠프와 당선자 비서실에 있을 때는 최고 1억 원부터 수천만 원과 법인카드를, 문화부 차관으로 재직할 때도 1000만~2000만 원을 다달이 제공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 2008년 당시 신재민 차관이 한국보도사진전 개막식에 참석해 보도사진들을 보며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이 회장이 밝히고 싶어 하는 점은 무엇보다 자신의 회사가 수차례 검찰 수사를 받으며 결국 해체 지경에 이르게 된 것에 대한 진실 규명으로 보인다. 이 회장 스스로도 “신 전 차관에게 청탁도 없었고, 호형호제하는 친밀한 사이에서 이뤄진 선의의 지원”이었다며 신 전 차관을 ‘최종 목적’으로 한 폭로는 아니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 회장은 또 “2007년 대검 중수부에선 나를 한나라당 자금줄이라는 이유로 수사를 했고, 2009년에는 창원지검에서 나를 열린우리당 자금줄이라는 이유로 수사를 했다”며 “창원지검 수사 이후 그룹은 해체됐고, 그룹의 주력기업인 SLS조선은 워크아웃을 신청하지도 않았는데 워크아웃이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권 차원에서 그룹을 의도적으로 해체시켰다고 주장하는 상황이다.
이 과정에 대한 진실 규명을 위해 이 회장은 지난해 청와대에 진정서를 냈다고 밝히기도 했다. 결국 아무런 상황 변화가 없자 신 전 차관 비리를 폭로함으로써 “청와대에 메시지를 전해 준 것”이라는 설명이다.
현재로선 이국철 회장의 폭로가 어느 ‘선’에까지 파장을 미칠지 알 수 없다. 이 회장은 신 전 차관 외에 역시 현 정부 실세였던 전 지식경제부 차관 P 씨를 거론하며, “국무총리실 차장 시절 일본을 방문했을 때 SLS그룹 일본지점 간부를 통해 식비와 술값 등 여행경비 400만~500만 원을 제공했다”고 추가 폭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회장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가 아직 공개되기 전이기 때문에 이번 파문이 미칠 여파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다.
신재민 전 차관과 P 전 차관 모두 이 회장의 의혹 제기에 대해 “터무니없는 이야기”라며 반박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권 일각에서는 신 전 차관에 대한 진술이 구체적인 데다 검찰에 근거 자료를 넘기겠다고 밝히고 있어 향후 검찰 조사 결과가 주목되고 있다.
반면 또 다른 일각에서는 이국철 회장이 가지고 있는 물증의 ‘수위’에 따라 이번 폭로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수도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 회장이 기자회견을 연 다음 날인 지난 23일 이 회장으로부터 미화 2만 달러를 받은 혐의로 1, 2심에서 실형이 선고됐던 진의장 전 통영시장에 대한 파기환송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는 점도 눈길을 끄는 대목.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공소사실을 뒷받침하는 객관적 물증이 없는 상태에서 검사가 제시한 증거만으로는 금품제공의 방법이나 금액에 대한 합리적 의심이 모두 배제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힌 바 있다.
결국 이번 파문은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 그 여파가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이 회장이 쥐고 있는 ‘키’에 따라 신 전 차관과 P 씨는 물론 그 ‘윗선’이 등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는 상황. 오랜 인연에서 악연으로 변해버린 신 전 차관과 이국철 회장과의 관계는 정치권의 이면을 보여주는 듯해 씁쓸함을 느끼게 한다.
조성아 기자 ilychic@ilyo.co.kr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 인사들이 잇따라 비리 의혹에 얽히고 있어 청와대는 물론 한나라당마저 그 여파가 10·26 서울시장 선거에 미치지 않을지 전전긍긍하는 분위기다.
앞서 정진석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삼화저축은행 사건에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고, 은진수 전 감사위원과 김해수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 역시 삼화저축은행 사건으로 기소된 바 있다. 그리고 김두우·홍상표 전 홍보수석과 신재민 전 차관까지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 비리가 잇따라 터져 나오고 있는 것.
특히 김두우 홍상표 전 수석과 신재민 전 차관 모두 기자 출신으로 이명박 대통령의 언론 참모 역할을 해왔다는 점에서 언론계 내부의 규탄 목소리도 높다. 언론계의 ‘촌지 관행’이 결국 비리사태로까지 번졌다는 자성의 분위기도 큰 상황. 김두우 전 홍보수석은 부산저축은행 로비스트 박태규 씨로부터 받은 돈으로 딸의 자동차를 구입하고 부인의 골프채와 상품권을 받은 의혹을 받고 있으며, 홍상표 전 수석 역시 박 씨로부터 1억 원 상당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홍 전 수석이 YTN 보도국장 재직 시절 당시 신재민 차관의 발언을 YTN으로 전한 ‘통로’라는 주장이 나왔었다는 사실이다. 지난해 8·8 개각에서 신 전 차관이 장관 후보자에 내정되었을 당시 민주당 최문순 의원은 신 후보자가 문화부 차관 시절 YTN과 YTN 노조를 향해 했던 “세상을 박쥐처럼 살지 마라” “투쟁 노조원들 자르라고 하겠다” “<돌발영상> 없애야 한다” 등 협박 발언이 담긴 녹취록을 공개한 바 있었다. 그때 최 의원이 공개했던 녹취록에는 신 전 차관이 YTN 관계자와 만난 자리에서 “공영 방송하려면 돌발영상도 없애야 한다” “홍상표 보도국장 만나서 대충 얘기한 것이다” 등의 내용도 담겨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권력의 요직에 앉았던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들이 비리에 연루되며 이 대통령의 레임덕은 그 속도를 더해갈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사실 여부를 떠나 측근 비리 의혹이 제기된 것만으로도 이 대통령의 입지는 크게 흔들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