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8일 한국기원 바둑TV스튜디오에서 열린 제23기 맥심커피배 입신최강전 결승3번기 2국에서 박정환 9단이 이동훈 9단에게 159수 만에 흑 불계승을 거두고 종합전적 2-0으로 우승컵을 안았다.
3월 끝난 우슬봉조 한국기원선수권전 결승에서도 이동훈 9단에게 3-0으로 완봉승을 거둔 박정환은 국내랭킹 4위 이동훈 9단을 상대로 11연승을 기록하며 상대전적도 14승 2패로 격차를 벌렸다.
#서른 넘어 제2의 전성기
박정환은 우승이 확정된 후 가진 인터뷰에서 “속기는 잘 못 두기 때문에 맥심커피배에서 다시 우승할 거라 생각지 못했다. 그래서 더 기쁘다. 예전보다 초읽기에 몰리면 수읽기와 판단이 느려진다”고 말하면서 “후배 기사들이 굉장히 열심히 하기 때문에 나 역시 공부량을 늘려야겠다는 생각은 많지만 뜻대로 안 된다. 체력도 보강하고 공부량도 늘려서 잘 두는 기사들을 쫓아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1993년생인 박정환 9단은 올해 꼭 서른이 됐다. 기가(棋街)에서는 프로기사의 전성기를 20대 초반에서 중반으로 보고 20대 후반, 서른이 넘어가면 내리막길에 들어섰다고 본다. 천하의 이창호 9단도 그랬고 이세돌 9단도 세월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서른 줄에 접어든 박정환은 하향세는커녕 올해 제2의 전성기가 찾아온 게 아니냐는 소리를 듣고 있다.
지난해 11월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우승에 이어 올 3월 제1기 우슬봉조 한국기원선수권전 우승, 그리고 다시 맥심커피배 우승까지 보유 타이틀이 3개로 늘어났다. 프로 통산 우승 횟수는 34회.
랭킹1위 신진서 9단이 부럽지 않은 상승세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진행 중인 쏘팔코사놀배 본선리그에서 4승 1패를 기록하며 선두권을 유지하고 있고, 신설기전 YK건기배 리그에서도 3연승을 기록하며 맨 앞에서 질주 중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박정환은 현재 포스트시즌이 진행 중인 KB리그에선 소속 팀 수려한합천을 정규리그 1위로 이끌며 개인전과 단체전을 가리지 않고 맹폭 중이다.
#세계대회 경쟁력도 충분
서른이 넘어서도 사그라지지 않는 상승세의 비결은 뭘까. 한 동료 기사는 그것을 이렇게 분석했다.
“과거에 비해 프로기사들의 수가 늘어났고 출중한 실력의 기사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정상급 기사들의 수명이 짧아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박정환 9단이나 신진서 9단 등은 차원이 다른 초일류급이기 때문에 30대 중반까진 호락호락 내려오지 않을 것이다. 특히 정상급 기사들의 경우 체력이 중요한데 박정환 9단은 본인 스스로가 이를 잘 알고 있고 또 열심히 실천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역대 기사들 중 자기관리가 가장 충실하다고 보면 된다. 또 공부량도 신예들보다 많으면 많았지 절대 적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롱런의 비결이다.”
세계대회 경쟁력도 충분하다. 신진서에게 일인자 자리를 내주긴 했지만 세계랭킹을 따지면 박정환은 여전히 세계 톱3 안에 든다. 비공인 세계바둑 순위 사이트인 ‘고 레이팅’ 최신판에서도 박정환은 신진서, 커제에 이어 3위에 올라있다.
무소불위의 신진서를 세계대회 결승까지 피할 수 있다는 점도 박정환이 지닌 경쟁력 중 하나다. 현 세계대회들은 흥행을 위해 가급적 자국 기사들끼리의 대국을 막고 있다. 따라서 매 라운드 대진 추첨을 다시 하게 되는데 그러다보니 주로 국가 간 대결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신진서를 피할 수 있는 것.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를 최후에 만날 수 있다는 건 대단한 이점이 아닐 수 없다.
서른, 박정환의 질주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승부처 돋보기] 11연승 결정적 순간은 바로…
제23기 맥심커피배 입신최강전 결승3번기 제2국
흑 박정환 9단 백 이동훈 9단 159수끝, 흑 불계승
#장면도1 ‘너무 느슨했다’
흑이 일찌감치 백의 본진인 상변에 쳐들어온 모양. 그러나 이동훈 9단의 백1은 너무 느슨했다. 흑10까지 알뜰하게 살아 흑이 집으로 앞서나가기 시작한다.
#참고도1 ‘백, 묘미 있는 진행’
백1로 붙여 흑의 응수를 묻는 것이 묘미가 있었다. 흑2로 젖히면 백3으로 들어가 집 모양을 없앤다. 흑6에 백7의 젖힘이 재미있는 수로 백11까지 피차 기세의 진행이지만, 흑 2점을 잡은 백이 나쁠 리 없다.
#장면도2 ‘공수(攻守) 역전’
초반 흑의 우세는 우변에서 저위에 치우치는 바람에 날려버린 상황. 흑1·3은 타개의 맥이지만 실은 고육지책이다. 그런데 백6의 이음이 이 바둑의 패착이 됐다. 흑7·9로 끊기니 오히려 공수가 역전됐다.
#참고도2 ‘백, 두터운 진행’
백은 1·3이 두터운 진행이었다. 흑4로 실리는 빼앗겼지만 백5까지 두텁게 처리해 불만 없는 결과. 흑이 실리는 챙겼지만 2선과 3선을 많이 기었고, 백은 상변과 하변 두터움이 호응하는 형태라 나쁘지 않았다.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