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수’ 평가 받은 러시아 공장 애물단지로…전기차 시대 지연 따라 기계 사업부 흑자 전환도 지연
금융투자(IB) 업계 전문가들은 한동안 현대위아를 비롯한 자동차 부품 업체들의 고전을 예상하고 있다. 실제 공급망 붕괴로 판매량을 회복하지 못한 상황에서 원가 상승 요인은 넘쳐나고, 완성차 업체들은 원가 부담의 상당 부분을 부품 업체들에게 떠넘긴다는 뒷말이 나온다. 정용진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부품사의 손익 개선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면서도 “생산량 확대가 가시화돼 완성차 업체들이 부품 재고 확보에 나서거나 높아진 원가를 판매 가격에 반영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묘수 평가받던 러시아 투자 현실은?
현대위아는 2020년 7월 중국 엔진 조립라인을 러시아로 옮긴다고 발표했다. 당시 전문가들은 ‘묘수’라고 호평했다. 현대위아 중국 법인은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보복 등으로 인해 수년간 가동률이 낮았다. 마침 러시아가 탄탄한 지원을 약속했다. 현대위아는 2020년 보도자료에서 “이번 투자는 러시아 정부의 기업투자 촉진제도(SPIC)를 통해 이뤄졌다”며 “부품 수입 관세 인하, 규제 완화 등의 혜택을 기대할 수 있으며 러시아 공장을 통해 유럽시장을 더 공략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준성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지난 3년간(2019~2021년) 러시아에 대한 현대차·기아의 합산 판매 점유율은 25%에 달했고, 현대차 공장 월평균 가동률은 116%를 기록해왔다”며 “엔진 조립라인 이전은 수입에 의지했던 현대차 러시아 공장의 엔진 조달을 현지 공급으로 대체해 엔진 사업부문의 전체 수익성을 끌어올릴 수 있는 묘수였다”고 설명했다. 문용권 신영증권 연구원도 “현대위아의 중국 공장은 워낙 수요가 적고, 멕시코 공장은 K2와 K3, 엑센트 등 비인기 세단만 생산하고 있다”며 “가뜩이나 반도체가 부족한 상황이라 현대차·기아 입장에서는 중국, 멕시코 공장 생산을 우선할 유인이 적다”고 전했다.
러시아 공장은 지난해 11월 가동을 시작했다. 현대위아는 러시아 공장에서 올해 총 24만 개의 감마(배기량 1.8~2.0L) 엔진을 생산할 계획이었다. 계획대로라면 러시아 공장의 예상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4320억 원, 302억 원이다. 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경제 제재 및 수출 중단과 소비자들의 구매력 약화 등의 악재가 겹치면서 현대위아의 계획에도 차질이 생겼다. 증권가에서는 현대위아 러시아 공장의 엔진 공급 대수가 12만~15만 대에 그칠 것이라고 관측한다. 또 당초 기대했던 영업이익은커녕 적자만 500억 원이 넘을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이마저도 전쟁이 곧 끝날 것으로 예상했을 때 기준이다. 심지어 최소 1000억 원대 손실을 염두에 둬야 한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향후 계획도 '시계제로'다. 현대차는 내년부터 연산 10만 대 규모의 러시아 현지 2공장을 가동할 계획이었다. 현대위아도 이에 맞춰 2공장을 가동해 엔진 공급량을 34만 대로 늘릴 예정이었다. 러시아 공장이 생산하는 엔진도 감마, 누우(배기량 1.4~1.6L)로 이원화해 평균 판매 단가 상승을 기대했지만 당분간은 이를 검토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이와 관련, 현대위아 관계자는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지켜보고 있다”며 “개선할 수 있는 부분을 찾고 있다”고 전했다.
#주판알 튕기는 완성차 업계
예기치 못한 전쟁과 별개로 전기차 시대가 예상보다 지연되는 것도 현대위아에게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현대위아는 크게 자동차부품 사업부와 기계 사업부로 나뉜다. 기계 사업부는 미래 먹거리 사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전기차 및 수소차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다. 현대위아 기계 사업부는 기계를 만드는 기계, 즉 공작기계를 만든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나 수소차 생산 설비를 구축하면 현대위아 기계 사업부가 수혜를 입는 구조다.
그렇지만 최근 분위기만 보면 쾌속 성장은 어렵다는 평가다. 일례로 2차전지 소재인 양극재를 생산하는 기업들은 최근 리튬·니켈 가격 폭등을 이유로 2분기 양극재 가격 25% 인상안을 2차전지 제조업체들에 통보한 것으로 전해진다.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등 2차전지 제조업체들은 원가 인상을 반영해 배터리 가격을 인상할 수밖에 없다. 이는 완성차 업체의 부담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현대차를 비롯한 완성차 업체들은 배터리 업체들에 주도권을 내주지 않으려 할 것이고, 이로 인해 가격 인상 과정에서 진통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 시대에 대한 불신으로 투자를 확정 짓지 않으면 현대위아 기계 사업부의 흑자 전환도 지연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위아 기계 사업부는 2016년 흑자를 마지막으로 5년째 적자를 지속 중이다.
나쁜 소식만 있는 건 아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2022 뉴욕오토쇼’ 참석차 뉴욕을 방문한 자리에서 “연내 (전기차 미국 공장에 대한) 투자를 결정하겠다”며 “액션 플랜을 짜고 있다”고 밝혔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이르면 내년 초에는 공장 착공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정 회장의 발언에도 우려의 목소리는 여전히 높다. 자동차 업계 한 관계자는 “배터리 원자재에 대한 수급 이슈 등 자동차 업체 입장에서 고려해야 할 것이 적지는 않다”며 “개인적으로는 현대차그룹도 신중히 검토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본다. 최근 분위기만 보면 탄소제로 시대가 지난해 예상했던 것만큼 빨리 오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민영훈 언론인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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