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상 LIG그룹 회장은 지난해 LIG넥스원 미등기임원으로 경영에 복귀했다. 공식 직위는 ‘LIG넥스원 경영임원’이다. 구 회장은 복귀 후 해외 사업에 공을 들이고 있다. 그는 지난 3월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에서 열린 로봇·무인분야 국제전시회 ‘UMEX 2022’에 직접 참석하는가 하면 대한민국·콜롬비아 수교 60주년을 맞아 인천광역시 경명공원 콜롬비아 참전 기념비를 찾아 참전용사를 기리는 추모행사도 개최했다.
LIG넥스원 측도 “구본상 회장의 ‘성장의 답은 해외 시장 수출 확대’라는 확고한 의지를 바탕으로 미국, 콜롬비아, 인도네시아, UAE 등에 순차적으로 현지 사무소를 개소하는 등 해외사업 전문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와중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LIG넥스원이 주목받고 있다. 미·중 패권 갈등에 이어 유럽에서 전쟁까지 벌어지면서 세계적으로 안보를 강화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한국 방산 업체들은 일명 ‘K-방산’으로 불릴 정도로 최근 인기가 높아졌다. 방위사업청에 따르면 국내 방산 수출액은 2010~2020년 연 30억 달러(약 3조 7140억 원) 수준이었지만 2021년에는 70억 달러(약 8조 6660억 원)로 늘었다. 증권가에서는 2022년 방산 수출액이 100억 달러(약 12조 3800억 원)를 넘어설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상현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LIG넥스원에 대해 “늘어나는 수주잔고를 바탕으로 외형 증가와 수출비중 회복, 첨단무기체계 강화에 따른 수익성 향상이 이어질 것으로 기대된다”며 “역대 최고 실적을 기록했던 2015년 수준(매출 1조 9037억 원, 영업이익 1127억 원)을 상회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최근에는 드미트로 포노마렌코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가 LIG넥스원 방문 의사를 전하기도 했다. 방산업계에서는 LIG넥스원에 무기 지원을 요청하기 위한 목적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동행하기로 한 한국 정부 관계자가 일정을 취소하면서 포노마렌코 대사의 LIG넥스원 방문 계획도 불발됐다.
포노마렌코 대사가 LIG넥스원 관계자를 만났더라도 무기 지원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무기 수출·지원은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만 한다. 한국 정부는 우크라이나에 살상용 무기를 제공하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대신 의약품이나 식료품 등 인도적 지원 물품과 방탄모 등 비살상용 물자 등을 우크라이나에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의중에 따라 상황이 변할 수 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4월 12일 SNS(소셜미디어)를 통해 “인도적 지원부터 더 큰 직접적인 지원까지 마음을 열고 여야가 논의할 때”라고 밝혔다. 다만 배현진 대통령 당선인 대변인은 “현 정부도 무기 지원 거부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고 있고, 그런 사실이 있다는 정도만 확인하고 있다”며 “(윤 당선인이) 취임하면 인도적 지원을 확대할 계획”이라고만 했다.
방산업계에서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떠나 LIG넥스원이 큰 홍보 효과를 거둔 것으로 보고 있다. 우크라이나 측은 LIG넥스원의 중거리 대전차 유도탄 ‘현궁’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 미국의 대전차 미사일 ‘재블린’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큰 효과를 거두면서 인기를 끌고 있다. 현궁은 재블린과 비슷한 성능을 갖추고도 가격 경쟁력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제 현궁은 그간 재블린에 밀려 큰 인기를 끌지 못했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인지도가 상승했다는 평가다. 중동 국가에서도 최근 현궁에 큰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 사업을 확대하려는 구본상 회장에게 호재인 셈이다. 한영수 삼성증권 연구원은 LIG넥스원에 대해 “매출의 수출 비중 정상화가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일반적으로 수출은 내수 매출 대비 수익성이 우수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LIG넥스원은 공식적인 언급은 자제하고 있다. 민감한 사안에 의견을 냈다가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포노마렌코 대사의 방문 시도 등 외교적 사안에 계속 엮이는 것도 LIG넥스원에게 부담스러운 일이다. LIG넥스원 관계자는 “방산 사업은 국책 사업이므로 정확한 입장을 밝히기 어렵다”고만 전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대외적으로 입장을 밝히지 않을 뿐, 최근 정부 주도로 다수의 국가와 LIG넥스원 제품 수출 협상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방산업계에서는 정부나 LIG넥스원이 타 국가와의 협상 과정에서 최근 사태를 언급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LIG넥스원의 주목도나 지명도는 확실히 올라간 것이 느껴진다”면서도 “구본상 회장이 최근 해외 활동을 확대하는 것도 좋은 분위기를 이어나가고 싶은 마음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라고 전했다.
LIG그룹, IPO로 실탄 모아 M&A 나서나
LIG그룹이 올해 대규모 인수합병(M&A)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행동주의 사모펀드 KCGI가 지난해 (주)LIG가 발행한 1000억 원 규모의 교환사채(EB)를 인수한 데 이어 올해 1월에는 구본상 LIG그룹 회장 일가로부터 (주)LIG 지분 약 25%를 인수했다. 해당 EB는 LIG넥스원 주식 189만 7685주(지분율 8.63%)와 교환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구본상 회장의 지분 매각을 기업공개(IPO·상장) 신호탄으로 해석한다. 강성부 KCGI 대표는 LIG그룹 계열사 LK투자파트너스 대표를 역임한 바 있어 구본상 회장과의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전해진다. (주)LIG가 IPO를 진행해 구 회장의 지분율이 낮아져도 KCGI가 백기사 역할을 할 수 있는 셈이다.
나아가 (주)LIG가 IPO를 통해 마련한 자금으로 M&A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특히 LIG넥스원 민수 사업 확장에 관심을 두는 것으로 전해진다. 군수 사업만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김지찬 LIG넥스원 대표이사는 지난 3월 주주총회에서 민수 사업 확장과 관련한 질문에 “중장기 성장동력의 한 축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이동통신·자율주행 분야는 물론이고, 혁신적 스타트업과의 M&A를 적극 추진해 사업구조를 다변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민수 사업의 경험이 부족해 당분간 기대만큼의 실적을 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다. 주로 국가를 대상으로 하는 군수 사업과 민간을 대상으로 하는 민수 사업은 영업 방식에 큰 차이가 크다. 경쟁 업체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나 한화 등은 민수 사업 매출 비중도 상당하지만 LIG넥스원의 매출은 대부분 군수 사업 관련한 것이다. 이와 관련, LIG넥스원 관계자는 “현 상황에서 밝힐 수 있는 입장은 없다”라고 전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