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설득 나섰지만 “여론 호소에 불과” 지적…고검장-지검장과 함께 수뇌부 일괄 사의 가능성
검찰의 역사를 돌이켜 봤을 때 위기 때마다 검찰총장에게 당연히 요구되는 행동이라고는 하지만 김오수 총장의 경우 취임 전부터 정치권과의 갈등 국면일 때 ‘강경한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던 터라, 검찰 내부에서는 “이제 조금 총장답다”는 평도 나온다. 하지만 더 이상 할 수 있는 카드가 많지 않다는 게 문제다. 사의 표명부터 평검사 회의까지, 검찰이 할 수 있는 모든 수를 동원한 탓에 이제 국회와 청와대를 지켜보는 일만 남았다는 자조 섞인 반응도 나온다.
#깜짝 사의 표명? “예정된 수순”
4월 17일 오전 11시 즈음. 대검찰청은 김 총장이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김 총장은 입장문에서 “2019년 법무부 차관 재직 시 70년 만의 검찰개혁에 관여했던 저로선 제도 개혁(검경 수사권 조정) 시행 1년여 만에 검찰이 다시 개혁 대상으로 지목돼 검찰 수사 기능을 전면 폐지하는 입법 절차가 진행되는 점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며 민주당의 검수완박 법안 입법 절차에 대한 반대의견을 분명히 했다. 거부권 행사를 요청하기 위해 문재인 대통령과의 면담을 추진했지만 좌절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사실 이미 고검장-지검장 회의 과정에서 사의에 대해서 모두 뜻을 모았고, 시기는 “나에게 맡겨 달라”는 김 총장의 뜻에 따라 일임했던 상황이었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검찰 관계자는 “검찰 역사에 가장 큰 위기라는 데 모두의 뜻이 일치했고, 필요하다면 총장부터 책임지고 사의를 표명해 문제의 심각성을 알려야 한다는 점에도 이견이 별로 없었다”고 설명했다. 사실 4월 14~15일 전후로 “총장이 사의를 표한다더라”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대검찰청에서 돌기도 했다. 그는 “다만 회의 직후가 아니라, 일요일 오전에 사의를 표명한 것은 주초부터 국회 일정이 있었던 점, 언론을 통한 공론화 필요성을 고려할 때 가장 효과적이라고 판단한 것 아니겠냐”고 덧붙였다.
문재인 대통령도 김오수 총장이 사의를 표명하자, 그제야 김 총장을 청와대로 불러들였다. 하루 만인 18일, 문재인 대통령과 면담을 가졌고 김오수 검찰총장은 사의 표명을 거둬들였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김오수 총장에게 “검찰총장을 중심으로 국회 설득을 해야 한다”는 입장을 전달했다고 한다. 실제 김 총장은 “필사즉생의 마음이었는데 마지막까지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겠구나 생각하고 있다”고 답했다.
#나름대로의 대응 나섰지만…
그 뒤, 김오수 검찰총장은 ‘검찰이 할 수 있는 모든 수’를 꺼내들고 있다. 대검찰청에서 긴급회의를 열고 대책을 논의하고 있던 6명의 전국 고검장들에게 김 총장은 문 대통령과의 면담 결과를 전하고 대응 과정을 논의했다. 이후 “앞으로 검찰총장을 중심으로 국회 논의 과정에 적극 참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국 18개 지검과 42개 지청 평검사 대표가 한자리에 모이는 평검사 대표회의도 19일 열렸다. 2003년 당시 강금실 법무부 장관의 기수 파괴 인사 방침에 반발해 개최한 회의 이후 19년 만이었는데 평검사 대표 207명은 성명을 통해 “검찰에 대한 국민 여러분의 비판을 엄중히 인식하고 있다”면서도 “검수완박 법안은 검사가 기본적인 사실조차 확인할 수 없게 만들어 억울한 피해자를 양산하고, 검사의 판단을 받고 싶어 이의를 제기해도 검사가 이를 구제할 수 있는 절차를 없애 버린다”고 비판했다.
김 총장 역시 19일 국회를 찾아서는 검수완박 법안을 대신할 표적·과잉수사 제한 특별법 제정 등 다섯 가지 대안을 제시하며 설득 작업에 나섰다. 현직 검찰총장이 국회 상임위 소위에 출석한 것은 이례적이다. 김 총장은 12분 동안 검수완박에 대한 반박 의견이 담긴 글을 읽으며 검찰 수사의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표적·과잉수사 제한 특별법 제정 △수사심의위원회 권한 강화(기소 독점 견제) △검찰 수사에 대한 국회 현안질의 도입 △국회의 검사 탄핵소추 강화 △전관예우 처벌 강화 등의 내용을 제안했다.
하지만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한동훈 검사 휴대폰 비밀번호 못 풀어 무혐의 처분했고,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도 제대로 수사 못했다”며 “왜 신뢰받지 못하는지 반성과 고민이 없다”고 질타했고, 소위 위원장인 민주당 박주민 의원도 김 총장이 언급한 특별법에 대해 “지금 당장 그런 고민은 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진짜 사의’ 카드 꺼내나
그만큼 민주당의 검수완박 법안 처리 의지는 상당하다. 최대 90일 동안 법안을 잡아둘 수 있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안건조정위원회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민주당은 자당의 민형배 의원을 탈당시켜 무소속으로 참여케 하는 강수를 뒀다. 국회법 취지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꼼수 탈당 논란에도 민주당 지도부의 검수완박 강행 처리 의사는 강력하다. 민주당이 계획한 일정대로라면 이제 10여 일 안팎의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문제는 김오수 총장이 앞으로 할 수 있는 대응 옵션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21일에는 박병석 국회의장, 박범계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각각 긴급 면담을 갖고 대안을 설명·제시하는 자리를 가지는 등 검수완박 입법 저지를 위한 행보를 하고는 있지만 아직까지 전망은 부정적이다. 특히 검찰총장이 할 수 있는 국회 대응 자체가 ‘설득전’ 말고는 없는 터라 “민주당을 막을 수 있겠냐”는 회의적인 반응이 나온다.
검찰 관계자는 “입법을 저지할 수 있는 것은 국민의힘이 하는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나 180석의 입법안 찬성 미달 혹은 대통령의 거부권 정도로 국한이 되는데 민주당이 본회의 법안 상정의 의지가 강하고 필요하다면 필리버스터를 무력화시키기 위한 살라미 전략(회기를 쪼개는 것)을 쓰겠다는 것 아니냐”며 “지금 김오수 총장이 ‘총장답게’ 할 수 있는 모든 카드를 꺼내들어 대응하고 있지만 사실 여론과 국민에 호소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토로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 ‘검경 수사권 조정’ 등에 긍정적인 입장이었던 김오수 총장 등 검찰 수뇌부를 향한 불만도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당장 20일 열린 전국 부장검사 회의에서는 김 총장을 포함한 검찰 수뇌부에 대한 책임론이 제기됐다. 이 자리에서는 검찰총장과 고검장, 지검장급까지 총사퇴를 건의하는 안을 ‘입장문에 담을 것이냐’ 여부를 놓고 표결도 거쳤다고 한다.
진짜 ‘사의’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지검장 출신의 변호사는 “김 총장은 정권 교체를 앞두고 덜 불명예스럽게 그만둘 수 있는 기회를 가진 셈”이라며 “법안 처리를 4월 말이나 5월 초에 한다고 하면 고검장-지검장 등과 함께 일괄 사의를 밝혀서 국민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호소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김 총장은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시점을 고민하고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환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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