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장 보궐선거부터 꾸준히 지분 확보…YS 벤치마킹 성공하려면 계파·지역 기반 만들어야
#YS처럼 호랑이굴 속으로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이 4월 18일 합당을 공식 선언했다. 당대당 통합이라는 합의문이 나왔지만, 통합정당 이름은 국민의힘이 됐다. 2020년 2월 23일 안철수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이 창당했던 국민의당이 2년 2개월 만에 명패를 내리고 국민의힘에 사실상 흡수합당된 것이다. 정치권에서 이제 고참이 된 안철수 위원장은 양당 체제가 아닌 3지대 후보로는 절대 대권을 거머쥘 수 없다는 확신을 가진 모양새다.
이번에 안 위원장이 결단한 것처럼 한국 정치사에서 자기 집을 버리고 남의 집에 들어가 대권을 거머쥔 것은 김영삼 전 대통령(YS) 사례가 유일하다.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안 위원장이 YS를 가장 현실성 있는 선행연구 사례로 본다고 해석한다.
박정희·전두환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 YS는 헌정 사상 첫 국회에서의 제명, 가택 연금 등을 당하면서도 저항의지를 꺾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1990년 모두가 깜짝 놀랄 만한 결단을 내린다. 자신이 이끌던 통일민주당 간판을 내리고 전두환 전 대통령의 육군사관학교 동기인 노태우 당시 대통령이 이끌던 민주정의당, 박정희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인 김종필 총재의 신민주공화당과 합당, 민주자유당이라는 3당 합당 체제를 만들어냈다.
YS는 1988년 13대 총선에서 김대중 당시 총재(DJ)가 이끌던 평화민주당에도 밀려 제3당으로 내려앉자 “이대로는 대권 도전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어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로 들어가야 한다”며 3당 합당 문서에 서명했다.
호랑이굴에 들어간 YS는 호랑이를 잡는 데 성공했다. 민정당 계열 세력의 견제가 끊임없이 이어졌지만, 부산·경남(PK) 출신인 YS는 영남은 하나라는 의미의 “우리가 남이가”라는 표어를 내걸고 민정당 핵심 지지층인 대구·경북(TK) 민심을 흡수하면서 변방에서 주류로 떠올랐다. 이 기세를 몰아 1992년 민자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민정당 계열 이종찬 후보를 쉽게 따돌렸다. 이어 대선 본선에서 숙적 DJ와 현대그룹 회장 출신의 정주영 후보를 모두 누른 뒤 첫 문민 대통령이 됐다.
“이제 우리도 지긋지긋한 양당제 그만하고 다당제 체제를 통해 국민에 심판받아 보자”고 얘기해왔던 안 위원장도 YS처럼 현실주의자로 돌아섰다. 지역주의 투표 성향이 여전히 강하고, 남북 분단 체제 하에서 정치적 다양성이 존재하기 어려운 한국적 정치 풍토에서 양당제의 그늘을 벗어나기 힘든 구조적 한계를 안 위원장이 확실히 간파한 것으로 해석된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의 평가다.
“당의 세력을 불리는 차원이라면 안철수 위원장 합류가 좋다. 하지만 안철수라는 정치인은 고정 지지율을 가질 만큼 거물인데, 거물의 합류를 반가워하지 않는 국민의힘 내부 세력이 많다. 그럼에도 안 위원장은 지난해 서울시장 보선에 이어 지난 대선에서 단일화를 통해 선거 승리에 기여함으로써 국민의힘 일정 지분을 이미 확보해버렸다. YS가 전격적인 속도전으로 합당의 길을 갔다면 꼼꼼한 성격의 안 위원장은 차근차근 보수정당의 지분을 조금씩 확보해나가면서 진지전을 통해 합당에 성공했다. 안 위원장의 인내 전략이 먹힌 셈으로 그의 프로그램화된 대권 행보가 시작된 것이다.”
#‘친안’부터 만들어야
안 위원장은 2012년 9월 대선 출마 선언으로 현실정치에 입문한 이후, 이번 국민의힘과 합당 이전에 이미 2번에 걸친 합치기를 통해 ‘연합정치’를 시도해본 바 있다.
안 위원장은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 당시 후보 지지 선언을 하고 후보 사퇴를 한 뒤, 2013년 4월 서울 노원병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돼 국회에 입성했다. 그는 신당 창당을 추진했지만 여의치 않자 2014년 3월 민주당과 손잡고 새정치민주연합이라는 통합신당을 만들어 공동대표가 됐다. 그러나 실패였다. 그는 2015년 2월 새로이 선출된 문재인 대표 체제에서 당 지도부와 각을 세우다 그해 12월 탈당했다.
다음엔 진보진영이 아닌 보수정당과 손을 잡았지만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2016년 국민의당을 창당, 그해 총선에서 38석을 얻으며 대이변을 만들어낸 안 위원장은 2년 후 유승민 전 의원이 이끌던 바른정당과 합당해 바른미래당을 만들었다. 하지만 2년 만인 2020년 결별했다.
여러 차례 도전한 ‘연합정치’에서 번번이 쓴맛을 본 안 위원장을 두고 이번에도 과거와 비슷한 경로를 걷는다면 결과는 뻔하다는 지적을 정치권에서 내놓는다. 호랑이굴에 들어가 호랑이를 잡은 YS 사례를 더 정확하게 들여다보고, 그에 맞게 결행해야 한다는 쓴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안 위원장이 2014년 3월 첫 번째 연합정치에 나섰을 당시 이 같은 조언이 나온 바 있다. 그의 핵심 멘토였던 윤여준 전 장관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안 위원장이 당시 민주당과 합치기로 결정한 것에 대해 “일부에서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굴에 들어갔다고 하는데 그것은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해당되는 말”이라며 “(안 의원은) 사슴이 호랑이굴에 들어간 것”이라고 깎아내렸다.
정치판을 오래 봐온 윤 전 장관이 이렇게 호된 평가를 내린 것은 YS와는 전혀 다른 안 위원장 주변의 엷은 정치세력을 꿰뚫어본 것이었다. 권위주의 정권과 싸워온 YS계 정치인들은 우선 숫자가 많아 ‘YS계’라는 명칭을 명확히 붙일 수 있었고, 그들은 정치적 리더 YS에 대해 강한 충성도를 보였다.
실제 3당 통합 당시 통일민주당 13대 총선 당선자 59명 가운데 합당에 동참하지 않은 현역 의원은 노무현·김정길·이기택·박찬종·김광일·장석화 의원 등 6명에 불과했고, 절대 다수인 53명은 YS를 따라갔다.
더욱이 YS계 개별 정치인은 모두가 각개전투 상황에서 누구라도 제압할 수 있을 만큼의 전투력을 갖고 있었다. 이에 3당 합당 이후 다수인 민정계를 제압한 뒤 당내 소수파의 리더 YS를 대선 후보로 올릴 수 있었다. 당시 상황을 기억하는 국민의힘 한 원로 정치인은 “평생 민주화 투쟁을 해온 YS계의 투지를 민정계는 도저히 당할 수 없었다. 대세가 기운 것을 읽은 민정계 김윤환 의원이 YS 손을 들어주면서 YS는 민자당을 완전히 장악했고, 대권을 거머쥐었다”고 회고했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호랑이굴에 들어온 안 위원장이 여전히 사슴이라고 보고 있다. YS와 비교가 어려울 만큼 곁에 사람이 없어 세력이 미약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분석은 정치의 기본으로 불리는 ‘자신의 휘하로 사람을 끌어들이는 능력’, 즉 정치적 리더십이 안 위원장에게는 부족한 것 아니냐는 질타와도 맞닿아있다.
안 위원장이 국민의힘과의 합당을 발표한 당일 기자 간담회에서도 이 부분을 파고드는 질문이 나왔다. 한 기자가 ‘정치를 10년이나 하면서 주위에 사람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묻자 안 위원장은 자신의 문제가 아닌 정치구조의 문제를 원인으로 꼽았다. 안 위원장은 “제 주위에 사람이 없었다는 건 3당이기 때문이었다. 선거 때마다 3당 소속으로 당선 확률이 떨어지면 양당으로 가버려서다. 거대 양당에 속해 있었으면 사람이 안 떠났을 것이다. 제 개인 성격 탓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안 위원장이 아직도 이런 생각에 빠져 있다면 향후 정치적 행보에도 디딤돌보다는 걸림돌이 훨씬 많을 것이라는 따가운 충고를 내놓고 있다. 친노·친이·친박·친문 등이 있었듯이, ‘친안’이라는 정치적 세력을 안 위원장 스스로 구축하지 않으면 답이 없다는 것이다.
안 위원장이 예전과 다른 모습으로 친안 세력을 구축한다 해도 소지역주의가 만연한 한국적 정치 풍토에서 지역적 정치기반 확보 역시 인적 세력 규합만큼 중요한데, 안 위원장은 이 부분 역시 약하다는 게 정치권의 한 목소리다.
TK 지역 국민의힘 의원은 “홍준표 의원이 차기 대구시장으로 유력한데 이렇게 되면 안 위원장이 차기 대권 경쟁에서 국민의힘 핵심 지지층인 TK 민심을 얻기가 쉽지 않다”며 “YS는 ‘우리가 남이가’ 표어를 내세워 보수정당의 핵심 지지 권역을 장악했는데 안 위원장도 이런 메가 프로젝트 마련이 필요할 것”이라고 전했다.
#윤석열 당선인의 생각은?
안 위원장 결단도 있었지만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역시 이번 양당 합당 과정에 적극적 노력을 기울였다. 윤 당선인과 안 위원장은 4월 14일 만찬을 하면서 신속한 합당에 합의했고, 윤 당선인은 총괄보좌역인 이철규 국민의힘 의원을 국회로 파견해 합당 조율을 진행시켰다.
새 정부 조각 과정에서 다소 파열음도 있었지만, 윤 당선인은 안 위원장을 인수위원장으로 앉힌 데 이어 국무총리 제안까지 하는 등 지난 대선에서 단일화에 대한 의리 지키기를 잊지 않는 모습이다.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하며 주판을 두드리기보다는 정치적 의리 지키기에 대한 의지가 강한 윤 당선인이 임기 중 2인자를 절대 두지 않는 한국 정치지형을 바꿀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홍준표 유승민 원희룡 등 지난 대선 경선에서 겨뤘던 거물들이 여전히 건재한 상황에서 안 위원장의 존재감도 키워 공동정부 존중이라는 정치적 명분도 지키고, 윤석열 정부에 대한 바람막이 역할도 맡길 수 있다는 것이다.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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