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이 직접 적은 것은 아닐 테지만 선생님답다고 생각했다.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고 했던 박경리 선생처럼 세상의 무게를 모두 내려놓고 아무런 미련 없이 훌훌 털고 떠난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대학에 들어가니 선배들이 꼭 들어야 할 명강의를 추천해주었는데, 그중의 선배들이 무조건 꼽는 것이 소흥렬 교수의 강의였다. 처음에 나는 기대 없이,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다는데 뭐 그리 대단하겠나, 하는 자만심으로 선생님의 강의를 청강했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소문은 괜히 나는 게 아니구나’라고.
처음으로 선생님의 강의를 들었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철학개론'이었다. 차분하게, 따뜻하게, 유연하게,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선생님의 방식에 나는 처음부터 감탄했다. 무엇보다도 선생님은 물음을 던지는 자였다. 현재를 사는 우리가 관습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상식이나 도덕 혹은 정의까지도 꼭 받아들여야만 하는 진리가 아닐 수 있다는 자세를 가지고 나와 그것을 분리하여 물음을 던지는 태도, 선생님에게는 그 태도가 몸에 배어 있었다.
살아오면서 순간순간 삶의 모퉁이를 돌고 있다고 느낄 때가 있었다. 지금과는 다른 삶이 기다리고 있는 것을 마주하고 어디로 가야 하나, 막막하고 먹먹했을 때 문득문득 선생님이 지팡이가 되고 있음을 보았다.
내가 아는 선생님은 불가지론자였다. 불가지론자로서 선생님은 기독교를 알았지만, 보수적인 기독교가 만들어내는 분위기는 좋아하지 않았다. 보수적으로 신을 믿은 입장에 대해서는 철학적이지 않다며 분명히 선을 그었다. 불가지론자인 러셀은 자신의 불가지론은 현실적으로 무신론과 다르지 않다고 공언했는데, 선생님의 불가지론은 그것과는 결을 달리했다.
신이 있는지 없는지는 신 존재증명이 될 수 없는 이상, 신의 존재에 대해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면서도 독특하게도 종종 성서에 나오는 이야기를 중요한 상징으로 삼았다.
지금도 기억하는 것은 신의 천지창조 이야기다. 선생님께서 주목하신 점은 신이 천지를 창조한 이유였다. 선생님은 ‘보시기 좋았더라’에 방점을 찍었다. 내 마음에 좋은 것, 그것이야말로 창조의 에너지라는 것이다. 그것으로 선생님은, 강박적으로 옳고 그름을 따졌던 시절에 슬쩍 어떤 해방의 씨앗을 뿌리신 것 같다.
좋아하는 것 속에 창조의 에너지가 흐르는데 문제는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부모나 가족이 원하는 것을 혹은 사회적 평판이 좋은 것을 내가 원하는 것이라 착각하는 시절을 거치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것은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것, 가지고 있는 것 혹은 적어도 이 정도는 가져야 한다고 믿는 것을 가지지 못할지도 모르고, 누리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그 두려움 때문에 종종 하고 싶은 것을 미루고 해야 하는 것을 하다가 마침내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하는 그런 삶을 살게 되기도 한다. 니체는 그런 삶을 자기 짐도 아닌 남의 짐을 지고 그저 성실하게 사막을 걷는 ‘낙타’에 비유했다. 생각해보면 인생에서 낙타의 시기가 있는 것 같다.
창조는 혼돈에서 온다. 낙타의 시기를 거치며, 지치며, 좌절하는 혼돈의 시간이 내 마음의 ‘좋은 것’을 따라가는 창조의 에너지가 되는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보시기 좋았더라’에 방점을 찍은 선생님의 말씀이 살아난다.
“그래, 창조의 에너지는 ‘좋은 것’ 속에 있는 거야,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것 속에 있는 거야!”
선생님이 계시지 않아도 선생님이 고맙다.
※외부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