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4월 7일 호아킨 두아토 존슨앤드존슨 최고경영자(CEO)를 만났다. 윤 당선인은 이날 두아토 CEO에게 한국 바이오산업에 대한 투자와 협력을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만남에 대해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는 비공개 미팅이라는 이유로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고, 존슨앤드존슨 역시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존슨앤드존슨은 1983년 ‘한국존슨앤드존슨’을 통해 한국 시장에 진출했다. 존슨앤드존슨은 한국 계열사로 의료기기 업체 한국존슨앤드존슨메디칼, 바이오 업체 한국얀센, 화장품·위생용품 업체 한국존슨앤드존슨 등을 두고 있다. 한국얀센이 제조·판매한 해열진통제 ‘타이레놀’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런데 한국얀센은 2018년 국내 생산시설인 향남공장의 철수를 발표했다. 얀센이 현재 주력하는 제품은 항암제와 면역주사제, 백신 등이다. 향남공장은 주로 고형제(고체 형태의 제제)를 생산하고 있어 얀센의 경영 계획과 맞지 않아 철수를 결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일방적인 철수 결정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왔지만 한국얀센의 결정을 막을 수는 없었다. 한국얀센은 2020년 환인제약에 향남공장을 매각하기로 했고, 올해 3월 매각 절차가 최종 완료됐다.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는 최근 타이레놀정160mg 등 한국얀센 제품 8개의 품목 허가도 취소했다. 이로써 한국얀센이 의약품을 직접 제조할 수 없게 됐다.
향남공장이 철수한 마당에 윤석열 당선인과 존슨앤드존슨이 바이오산업 투자를 논의한 것을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특히나 이번 만남은 존슨앤드존슨 측의 요청으로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존슨앤드존슨이 한국에 새로운 투자를 진행하기 위해 윤 당선인을 만난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얀센은 향남공장 철수를 발표할 때도 한국에 추가 투자를 할 것이라는 뉘앙스를 내비쳤다.
한국얀센의 최근 실적이 나쁘지는 않다.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얀센의 매출은 2013년 이후 매년 상승세에 있다. 지난해에는 매출 3938억 원, 영업이익 394억 원을 기록했다. 한국이 나름 투자 가치가 있는 시장인 셈이다. 다만 투자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한국 정부의 협조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바이오업계 관계자는 “모더나는 유명한 회사도 아니었지만 코로나19 백신을 생산한다는 이유만으로 한국 정부가 온갖 회유책을 써가며 투자를 요청했다”며 “비록 얀센의 코로나19 백신에 이런저런 문제가 있기는 했지만 오랜 기간 한국에서 활동한 한국얀센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아 한국얀센 입장에서는 서운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존슨앤드존슨이 얀센백신을 중심으로 한국 바이오 사업을 진행할 것으로 전망한다. 실제로도 한국얀센은 향남공장 직원 일부를 얀센백신 송도공장으로 재배치했다. 마침 백신 생산을 확대하려는 얀센과 윤석열 당선인의 바이오 정책도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다. 윤석열 당선인은 대선 후보 시절 공약집을 통해 “글로벌 백신허브 구축을 위한 전폭적인 국가 연구개발(R&D) 지원을 확대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얀센백신의 전신은 녹십자백신이다. 스위스 베르나바이오텍은 2000년 녹십자백신을 인수해 사명을 베르나바이오텍코리아로 변경했다. 이후 존슨앤드존슨이 2011년 크루셀(베르나바이오텍 모회사)을 인수하면서 베르나바이오텍코리아도 존슨앤드존슨 계열사가 됐고, 사명도 얀센백신으로 변경됐다.
얀센백신은 현재 수익 활동을 하지 않아 지난해 매출이 발생하지 않았다. 얀센백신은 2019년 B형간염 백신 ‘헤파박스’의 생산을 중단했고, 5가 혼합백신 ‘퀸박셈’도 현재 판매되고 있지 않다. 그렇다고 얀센백신이 국내 시장 철수를 추진하는 것은 아니다. 얀센백신은 현재 생산라인을 재정비하고 차세대 백신 생산을 준비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당장 투자 결정으로 이어질지는 두고 봐야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바이오업계 다른 관계자는 “두아토 CEO가 다른 일 때문에 한국에 왔는데 겸사겸사해서 윤석열 당선인도 만난 것으로 안다”며 “서로의 의중은 확인했겠지만 당장 어떤 일이 벌어질 것 같지는 않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한국얀센 관계자는 “윤석열 당선인과의 만남이나 향후 투자 계획 관련해서는 밝힐 수 있는 내용이 없다”며 “얀센백신 매출 관련해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하기는 어렵지만 철수에 관한 논의는 없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한국얀센 공장 매각에도 유한양행 주가가 뛴 까닭은?
한국얀센의 최대주주는 지분율 71%의 존슨앤드존슨이고, 2대주주는 지분율 29%의 유한양행이다. 유한양행은 한국얀센 2대주주로서 직·간접적인 이득을 보고 있다. 일례로 한국얀센은 지난 3월 약 190억 원의 배당금을 집행했고, 유한양행은 지분율에 따라 약 55억 원의 배당금을 수령했다. 유한양행은 2018년 얀센에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레이저티닙’을 기술수출 하는 등 사업적으로도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한국얀센의 향남공장 철수가 유한양행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관전 포인트다. 존슨앤드존슨의 한국 바이오 사업이 얀센백신에 집중되면 얀센백신 지분이 없는 유한양행과의 파트너십이 약해질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또 유한양행은 한국얀센 일부 제품의 공급이나 마케팅을 맡았지만 국내 생산 기지가 사라진 이상 공급망도 재편될 수 있다.
한국얀센 관계자는 “향남공장에서 생산하던 제품들은 (위탁생산 형식으로) 국내 제조업체로 생산이 이전되거나 얀센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에서 제조될 것”이라며 “얀센은 한국시장에 대한 책임을 다하고 있으며 얀센의 의약품 사용을 통해 고객과 환자의 삶의 개선을 돕기 위해 고품질의 제품을 지속적으로 공급할 것”이라고 전했다.
존슨앤드존슨이 한국 시장에 신규 투자한 후 유한양행과 파트너십을 구축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유한양행과 얀센은 현재도 일부 의약품을 공동 개발하는 등 관계가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기대 때문인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호아킨 두아토 존슨앤드존슨 최고경영자(CEO)를 만난 후 유한양행의 주가가 상승세에 있다. 유한양행의 주가는 지난 4월 7일 5만 7600원에서 4월 8일 6만 900원으로 5.73% 상승해 종가 기준 지난 1월 18일 이후 처음으로 6만 원대를 회복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유한양행 관계자는 “향남공장 철수는 (최대주주인) 한국얀센의 결정이므로 뭐라고 입장을 밝히기 어렵다”며 “존슨앤드존슨의 투자 관련해서도 명확히 나온 것이 없다”라고 전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