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금융 데이터 이용해 중·저신용자 대상 사업 확대…금리상승기 부실상환 리스크 커질 우려도
4월 11일 카카오뱅크는 SGI서울보증이 신용위험을 부담하던 ‘직장인 사잇돌 대출’의 신규 신청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앞으로는 그간 축적한 데이터와 노하우를 바탕으로 지난해 6월에 구축한 자체 신용평가시스템(CSS)에 기반해 급여소득자 대상 중신용자 대상 신용대출을 운영할 방침이다. 케이뱅크도 올해 2월부터 ‘맞춤형 신용평가모형’을 구축해 중·저신용자와 금융이력이 부족한 신파일러들을 향한 대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토스뱅크 역시 올해 2월부터 인터넷은행 최초로 개인사업자 신용대출 시작하며 자체 신용평가모형(TSS)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선보인 신용평가모델은 소득 수준과 대출 이력 등 금융 정보뿐만 아니라 대안정보까지 활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대안정보에는 휴대폰소액결제 등 결제정보나 건강보험료 납부, 연말정산 내역 등 공공정보가 포함된다. 스마트폰 요금제나 요금 납부이력 등 통신 정보, 패션·외식·생활용품 등을 구매한 쇼핑 정보 등 비금융 데이터도 반영될 수 있다. 지금까지는 인터넷은행들이 코리아크레딧뷰로(KCB)와 나이스평가정보(NICE) 등 개인신용평가사(CB)에서 제공하는 금융 이력과 신용 점수만을 기반으로 대출을 심사했다. 앞으로는 보다 세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상환능력을 충분히 갖췄음에도 신용정보가 없어 돈을 빌리지 못하던 고객들을 대상으로 여신사업을 확장할 수 있게 된다.
인터넷전문은행들이 이처럼 기존 모델이 아닌 비금융 데이터까지 활용한 신용평가모델 도입에 적극적인 이유는 중·저신용자 대출 확대가 ‘숙제’이기 때문이다. 인터넷은행들은 신용등급이 4등급 이하(신용평가점수 820점 이하)인 약 2200만 명 중·저신용자 대출 확대를 약속하며 출범했으나 고금리 사잇돌 대출에만 집중하며 시중은행보다도 중·저신용자 대출 비중을 낮게 유지해 금융당국의 지적을 받았다. 신사업 인·허가 등에서의 불이익을 피하려면 적극적으로 중·저신용자 대출 비중을 확대해 올해 연말까지 25~40%에 달하는 목표치를 달성해야 하는 상황이다. 부실 상환 위험을 피하려면 비금융 데이터를 최대한 활용한 자체 신용평가모델 개발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
다만 시기가 좋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리 상승기에 진입했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중·저신용자들의 부실상환 리스크도 따라서 오르며 가계부채율이 높아질 수도 있다. 국내 인터넷전문은행 한 관계자는 “저희로서도 부실상환 리스크는 딜레마지만 금융당국 압박에 따라 중·저신용자 대출 확대를 해야 하기 때문에 선택권이 없다”며 “지금으로서는 신용평가시스템을 충분히 정교화해 리스크를 줄이는 데 중점을 둘 방침이다”라고 말했다.
해외에서는 중남미의 아마존이라 불리는 전자상거래 업체 ‘메르카도 리브르’가 전자상거래 정보를 활용해 구축한 신용평가모형이 기존 신용평가사(CB) 모형보다 뛰어난 예측력을 확보했다는 평가를 듣는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금융이력을 제외한 그 사람의 비금융 데이터를 분석해 여신사업을 제공하려면 데이터가 많을수록 정확해질 것”이라며 “인터넷은행들이 그만큼 많은 데이터를 이용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중·저신용자 잡기 위한 금융권 움직임도 활발
기존 금융권도 대안신용평가모형 활용에 적극적이다. 신한카드는 전문개인신용평가사(비금융CB)인 크레파스솔루션과 협력키로 했고, 국민카드는 통합결제 비즈니스 전문기업인 다날과 제휴해 향후 BNPL(선구매 후지불) 서비스를 출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신한은행도 지난해 NHN페이코와 손잡고 은행권 최초로 BNPL 서비스 제공에 나서기로 했다. BNPL은 신파일러나 신용 점수가 낮은 중·저 신용자들에게 신용을 공여하는 개념으로 상품을 선구매한 후 일정 시일이 지나 플랫폼에 되갚는 방식이다. 국내에서는 네이버파이낸셜, NHN페이코, 토스 등이 앞서 진출한 분야다. 후불결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은 소비자의 소비 패턴 등 각종 데이터와 상환이력을 세밀하게 평가해 자체 대안신용평가모형을 구축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 신용카드사 관계자는 “신파일러나 신용이 낮아 사각지대에 있는 고객들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이라며 “서비스 제공 전에 CB사에서 제공하는 금융이력을 검토하는 체크소액신용서비스와 달리 새로 출시하는 BNPL 서비스는 비금융 데이터만 들여다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정유신 서강대 기술경영대학원장은 “그전까지는 리스크가 큰 것도 있지만 데이터가 없어서 신용 파악이 안 되니까 기존 금융권이 몸을 사렸던 것”이라며 “이제는 핀테크 업체들이 앞장서서 데이터를 구축하며 비즈니스 모델이 나오고 자금 조달이 이뤄지고 있으니까 레거시 금융권도 잘 제휴하면 이윤을 극대화할 수 있겠다고 파악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에서는 CB사를 통해 신용정보가 일원화됐던 과거와 달리 각 금융주체들이 자체 대안신용평가모형을 구축하며 각축전을 벌일 경우 중·저신용자들이 이곳저곳에서 중복으로 돈을 빌리거나 신용을 공여받을 수 있어 상환 리스크가 심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그러나 여신사업의 경우 중복대출을 통해 부실상환 리스크가 심화할 위험도는 적다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국내 한 CB사 관계자는 “대출 정보는 신용정보원을 통해 서로 공유가 가능하기 때문에 자체 신용평가모델에도 연체 정보나 대출 정보 등은 반영이 될 전망”이라고 귀띔했다.
다만 신용공여의 성격을 지닌 BNPL 서비스의 경우 대출과 달리 각 기업이 자체 데이터를 관리하기 때문에 신용공여 및 부실상환 이력이 서로 공유되지 않는다. 실제로 보험연구원의 손보배 연구원은 지난 4월 18일 발표한 ‘선구매 후결제(Buy Now, Pay Later) 서비스 시장의 성장과 보험산업’ 보고서에서 영국, 미국 등 선진국 금융당국이 BNPL 시장의 채무불이행 위험에 관한 경각심을 강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국제신용평가기관 피치는 BNPL 시장에서 연체율 등의 실질 데이터를 확보하기 어려운 점이 향후 시장의 위험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목했다.
앞서의 정유신 서강대 교수는 “BNPL 시장은 여신사업에 비해서는 규모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누적되면 리스크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얼마나 적정한 규모로 신용을 공여할지 잘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성엽 교수도 “기업 간의 데이터 장벽이 있기 때문에 되도록 많은 데이터를 동원해 평가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는 방침도 고민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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