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니체프스키 대 인디애나’ 사건을 영화로 만든 <아메리칸 크라임>. |
지난 1965년 10월 26일, 인디애나주 지역 경찰이 사망 신고를 접수받고 한 가정집에 출동했다. 경찰이 집에 들어섰을 때에는 한 소녀가 매트리스 위에 누운 채 숨져 있었고, 소녀와 한집에서 살고 있던 거트루드 배니체프스키와 그녀의 자녀들은 하나같이 “깡패 소년들한테 맞아서 숨졌다”고 진술했다.
숨진 소녀의 이름은 실비아 라이컨스, 사망 당시 나이는 16세였다. 하지만 이상한 점이 있었다. 단순한 폭행 사건으로 치부하기에는 수상한 구석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던 것이다. 가장 이상했던 것은 처참하다 못해 차마 눈 뜨고 보지 못할 정로로 끔찍하게 망가져있던 소녀의 몸 상태였다. 사망 당시 실비아는 극심한 영양실조 상태였고, 몸에는 여러 군데 멍과 화상, 그리고 오래된 듯한 타박상 자국들이 즐비했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복부에 새겨진 낙인이었다. 실비아의 복부 한가운데에는 ‘나는 창녀다. 그리고 나는 이것이 매우 자랑스럽다’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다.
결국 사인에 의심을 품었던 경찰이 수사를 시작했고, 결정적으로 실비아의 동생이었던 제니의 증언으로 처참한 진실, 즉 실비아가 배니체프스키와 그녀의 자녀들의 상습 고문 및 폭행 끝에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7~10월까지 약 4개월에 걸쳐 벌어졌던 이 사건은 ‘인디애나주 역사상 가장 잔혹한 범죄’로 기억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충격적인 이유는 첫째, 소녀를 향한 학대가 배니체프스키를 비롯한 그녀의 10대 또래의 자녀들과 이웃집 소년들에 의해 집단적으로 벌어졌다는 점이다. 고문은 저녁밥을 먹기 전, 혹은 TV를 보기 전 늘 습관적인 놀이처럼 아무렇지 않게 벌어졌다. 적어도 12명의 이웃 소년들이 직접 고문에 가담했거나 방조했던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 가운데 죄책감을 느끼거나 부모에게 사실을 말했던 이는 아무도 없었다.
둘째는 소녀가 이렇게 학대를 당하고 있었는데도 이웃 사람들은 이 사실을 무시하거나 모른 척했다는 것이다. 때때로 몇몇 사람들이 배니체프스키 집을 방문했지만 아무도 얼굴에 시퍼런 멍이 들어 있던 소녀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수상한 낌새를 눈치 챘던 이웃이 있긴 했지만 역시 경찰에 신고는 하지 않았다.
셋째, 라이컨스 자매들이 아무에게도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는 점 역시 놀랍긴 마찬가지였다. 학교나 교회에서 만난 어른들에게 단 한 차례도 사실을 말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인근에 살고 있던 친척 어른들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 이유인즉슨 배니체프스키 부인으로부터 가해질 보복이 두려워서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이런 끔찍한 일이 벌어진 걸까. 사건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 사건이 발생한 집과 고문으로 숨진 소녀 실비아가 갖혀 있던 지하실. |
형편이 어려웠던 배니체프스키는 이 제의를 수락했다. 하지만 불편한 동거는 시작부터 삐걱댔다. 실비아와 배니체프스키의 장녀 폴라가 마찰을 빚으면서 신경전을 벌였던 것이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생활비가 제때 안 들어온 것을 확인한 배니체프스키는 화가 폭발하고 말았다. 자매를 침실로 데리고 들어가 팬티를 내린 그녀는 “내가 공짜로 짐승 같은 너희들을 일주일간 돌봤단 말이지!”라고 욕설을 퍼부으면서 엉덩이를 때렸다.
언어폭력을 비롯한 신체적 폭행과 학대는 그때부터 서서히 시작됐으며, 날이 갈수록 횟수도 잦아졌다. 폭행에 본격적으로 불이 붙은 것은 실비아가 학교 친구들에게 폴라의 임신 사실을 소문내면서부터였다. 당시 폴라는 중년의 남성과 하룻밤 성관계를 가진 후 임신을 했으며, 배니체프스키와 폴라는 이를 발설한 실비아를 상대로 원한을 품게 됐다. 이에 주변 사람들에게는 거꾸로 실비아가 매춘을 했고 임신까지 했다는 헛소문을 퍼뜨렸으며, 집에서는 “더럽고 불결한 창녀”라고 욕하며 발길로 걷어차곤 했다.
하루는 자매가 쓰레기장에서 코카콜라병을 모아서 판 돈으로 사탕을 사오자 도둑질을 했다며 몽둥이로 엉덩이를 세차게 때리고, 성냥불로 실비아의 손가락 끝을 지지기도 했다. 빈약하고 마른 체형이었던 배니체프스키는 전남편의 두꺼운 가죽 혁대나 몽둥이를 사용해서 자매를 때리곤 했으며, 그마저도 기운이 없는 날에는 폴라를 비롯한 다른 자녀들에게 대신 때리도록 지시했다.
하지만 그녀의 분풀이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점차 동네 아이들까지 불러 모아 고문에 가담시켰으며, 소년들로 하여금 실비아를 상대로 유도 연습을 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신이 난 소년들은 실비아를 들고 벽을 향해 내던지곤 했으며, 발로 차기도 했다. 이런 잔혹한 ‘고문 놀이’에 가담하기 위해서 배니체프스키 집을 찾는 소년들은 점차 늘어났다.
하루는 자녀들과 이웃 소년들이 보는 앞에서 옷이 벗겨긴 채 성기에 콜라병을 삽입하도록 강요당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요실금이 생긴 실비아는 한밤중에 침대에 소변을 보는 일이 잦았다.
또한 담뱃불로 온몸을 지지는 학대도 빈번하게 자행됐다. 실비아가 학교에서 운동복을 훔친 사실을 알게 된 배니체프스키는 담뱃불로 손가락 끝마디를 지지는 벌을 줬으며, 그날 이후 집에서 담배를 피우는 모든 사람들은 실비아의 몸에 대고 담배를 비벼 끄곤 했다.
그러던 중 급기야 ‘더럽고 불결해서 함께 생활할 수 없다’는 이유로 지하실에 감금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으며, 실비아는 어두컴컴한 지하실 바닥에 똥오줌을 싸면서 짐승 같은 생활을 해야 했다. 식사로는 과자만 줬으며, 이마저도 불규칙적으로 줬기 때문에 영양실조에 걸렸고 바닥에 싼 똥을 먹거나 오줌을 마시도록 강요당했다. 배니체프스키 자녀들은 이웃 소년들에게 지하실에서 실비아의 알몸을 구경시켜 주거나 계단에서 밀어 굴러 떨어뜨리게 하는 대가로 돈을 받는 등 용돈벌이까지 했다.
또한 몸이 더럽다며 손발을 묶은 채 주기적으로 뜨거운 물이 담긴 욕조에 집어넣곤 했는데 물이 얼마나 뜨거운지 온몸이 화상자국투성이였으며, 화상 부위를 소금으로 문질러 고통을 더했다.
그리고 마침내 배니체프스키는 자신의 딸들에 대한 나쁜 소문을 퍼뜨렸던 데 대한 마지막 복수를 하기 위한 끔찍한 계획을 하나 세웠다. 실비아의 몸에 ‘나는 창녀다’라는 글을 새기도록 한 것이다. 배니체프스키 자녀들은 그녀의 지시대로 불에 달군 바늘로 몸에 글을 새겼으며, 그녀는 “너는 이제 결혼도 못하고, 누구 앞에서도 옷을 벗을 수 없어. 기분이 어때?”라고 말했다.
▲ 왼쪽은 숨진 실비아 라이컨스. 오른쪽은 학대 주범 거트루드 배니체프스키와 그녀의 딸 폴라, 아들 존. |
그렇다면 왜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주변 사람들은 아무도 몰랐을까. 또 실비아의 부모는 왜 이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을까.
알려진 바에 따르면 실비아와 제니 자매는 배니체프스키의 명령으로 부모는 물론 학교 친구들이나 동네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학대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지 못했다. 혹시 가해질 보복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구출될 뻔한 적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한 번은 자매의 상태를 의심한 자매의 큰언니인 다이애나가 사회복지팀에 연락해서 자매가 살고 있는 집을 방문해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배니체프스키는 “실비아는 더러운 매춘부다. 그래서 몇 번 때린 적은 있다. 그랬더니 가출했다”고 둘러댔으며, 이 말을 그대로 믿은 사회복지사는 말없이 떠났고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또한 이웃에 사는 부부 역시 여러 차례 실비아가 얼굴에 멍이 든 채 돌아다니거나 아이들이 실비아에게 뜨거운 물을 붓거나 때리는 등 괴롭히는 모습을 직접 목격하고도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 괜히 참견했다가 이웃 간에 껄끄러워지진 않을까하는 두려움과 모르는 게 낫다는 안일한 생각 때문이었다. 이런 이유에서 실비아가 밤새도록 지하실 바닥을 삽으로 두드리면서 구출을 청했을 때에도 아무도 경찰에 신고하는 사람은 없었다.
1급 살인죄로 기소된 배니체프스키는 1966년 사형 선고를 받았다. 하지만 항소심에서 다시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 구형됐으며, 18년 동안 수감 생활을 하면서 모범수로 지내던 끝에 마침내 지난 1985년 가석방됐다. 당시 그녀의 가석방은 충격 그 자체였으며, 온 미국을 들끓게 만들었다. 시민단체들과 라이컨스 가족들이 가석방 반대 시위를 벌였지만 헛수고였으며, 배니체프스키는 나딘 판 포산으로 개명해서 살다가 1990년 폐암으로 사망했다.
2급 살인죄로 기소됐던 딸 폴라는 종신형을 선고 받았지만 훗날 유죄감면신청이 받아들여져 징역 3년을 살고 가석방됐다. 이밖에 학대에 가담했던 다른 아들 셋은 소년원에서 8개월 징역을 살았다. 집단적인 학대와 묵인이 한 소녀를 죽음으로 몰고간 끔찍했던 이 사건은 <아메리칸 크라임> <이웃집 소녀> 등 여러 차례 소설과 영화로 만들어졌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