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의 재발을 막기 위해 임기응변적으로 외환보유액을 푸는 것은 위험하다. 이탈하는 외국자본에 목돈을 쥐어주며 금융위기를 확대재생산하는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
우선 정부는 미국 등과 통화스와핑을 다시 체결하여 외환수급의 안정성을 확보해야 한다. 외국자본의 급격한 유출을 막기 위해 외환규제의 강화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외국자본의 횡포에 대해 국내 금융회사들의 공동대응도 절실하다. 동시에 정부는 내년도 예산을 긴축으로 편성하여 재정건전성을 높여야 한다. 정치권이 경쟁적으로 내놓는 선심성 복지정책도 옥석을 가려야 한다. 그리하여 재정위기의 확산을 막아야 한다. 이러한 대책은 단기적으로 필요한 것들이다. 경제의 위기 대응능력을 높이기 위해 보다 근본적인 처방이 필요하다.
우리 경제가 세계경제가 흔들릴 때마다 위기를 겪는 것은 자생력이 없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 경제는 동력을 상실한 배가 거대한 파도를 만난 것과 같다. 구조적으로 양극화가 심화되어 반쪽으로 움직인다. 수출시장은 살아났으나 내수시장이 무너져 산업 저변이 생명력을 잃었다. 대기업은 일어섰으나 중소기업들이 쓰러져 고용창출능력을 잃었다. 부유층과 빈곤층의 격차가 커져 사회갈등이 심화되었다. 서민들은 실업, 물가, 가계부채, 전월세 대란 등으로 생계까지 불안하다. 이런 상태에서 금융시장이 사실상 국부유출의 통로가 되어 위기를 경제전반으로 확산시키고 있다. 외국자본 유출→주가폭락과 외환위기→고통감수와 구조조정→다시 외국자본 유입의 악순환을 형성하여 국내경제를 희생물로 만들고 있다.
우리 경제는 5적의 위협을 받아 이런 구조를 형성했다. 첫째 적은 정치싸움이다. 정치인들은 어떤 정책이든 표만 얻을 수 있으면 찬성이고 그렇지 않으면 반대다. 이에 따라 경제정책을 놓고 자기파괴적 정쟁을 벌인다. 둘째 적은 관료주의다. 관료들은 국민경제를 보호대상으로 여기지 않고 통제대상으로 여긴다. 갖가지 규제와 관주도 금융으로 경제를 다스린다. 셋째 적은 경제력 집중이다. 대기업들은 시장을 자신들의 영토로 만들고 독점이익을 추구한다. 중소기업들은 설 땅을 잃고 하청업체로 전락하여 하수인 역할을 한다. 넷째 적은 노사불안이다. 노사가 적대적 관계 하에 갈등의 뿌리가 깊다. 위기가 오면 구조조정을 놓고 극단적인 대립을 보이며 기업의 부도를 재촉한다. 다섯째 적은 외국자본이다.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금융시장을 지배하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독과점의 힘을 이용하여 이익을 빼내간다.
결국 정치권, 관료, 대기업 등 힘을 가진 경제주체의 개혁과 노사 간 상생의식 전환, 금융산업의 발전을 통한 경제주권의 확립 등이 우리 경제에 필요한 과제다.
고려대 교수·전총장 이필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