룸에 기관사용 시뮬레이터 설치, 도쿄역 ‘열차뷰’ 압권…반려견 친화 호텔·숙박 가능 영화관도 ‘취향 저격’
도쿄역 인근에 위치한 호텔 메트로폴리탄 마루노우치. 4월 초 호텔 측이 선보인 ‘트레인룸’은 철도 팬들을 설레게 하는 장치들로 가득하다. 객실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띈 것은 모니터와 미터기가 달린 기계. 무려 철도 운전사가 실제 훈련할 때 쓰는 시뮬레이터가 방에 구비돼 있다. NHK 보도에 의하면 “이곳은 일본 최대 철도회사인 JR동일본그룹 계열사의 호텔”이라고 한다. 그런 만큼 “열차의 마스터 컨트롤러(가속·감속 제어기) 같은 각종 장치들이 충실히 구현됐다”는 설명이다.
객실 전망 또한 압권이다. 도쿄역에 인접해 있는 데다, 28층 높이라서 시야를 가리지 않고 선로를 바라볼 수 있다. 신칸센 중 가장 빠른 하야부사를 비롯해 고마치, 가가야키 등 고속열차, 특급열차 및 일반열차들이 끊임없이 오간다. 열차를 바라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하루 종일 지루할 틈이 없어 보인다.
호텔 총지배인인 하스미 히데키 씨는 “밤새 철도운행 체험을 할 수 있고, 열차를 얼마든지 구경할 수도 있다”면서 “도심 한복판에서 비일상적인 체험이 가능해서인지 예약 첫날부터 큰 호응이 쏟아졌다”고 밝혔다.
트레인룸에 숙박한 한 고객은 “시뮬레이터 체험이 대단히 즐거웠다”는 소감을 전했다. 화면이 생생해 정말 운전하는 느낌이 들었다는 것. “특히 좋아하는 특급열차 히타치와 스쳐 지나갈 땐 절로 감탄사가 나왔다”고 한다. 화면에 나타나는 장면은 열차에서 카메라로 직접 촬영한 풍경들이다. 차내 안내 방송과 벨소리 또한 실제 차량과 똑같은 것을 적용했기 때문에 현장감을 더한다.
철도 팬의 관심을 끄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침대에도 친숙한 장치가 적용됐다. 다름 아니라, 일본 철도승무원 숙직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정각 기상 장치’다. 늦잠이 허용되지 않는 승무원들을 위해 설정한 시각이 되면, 자동으로 ‘등 부분’이 부풀어 오르는 시스템이다. 무조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이 비밀스러운 장치는 마치 철도승무원이 된 듯한 기분을 맛보게 해준다.
객실 ‘트레인룸’의 1박 비용은 3만 7000엔(약 37만 원)대. 5개월 전부터 예약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반응이 뜨거운 것으로 알려졌다. 하스미 총지배인은 “지난 2년간 코로나 사태로 호텔업계가 큰 타격을 받았다”면서 “점차 회복되는 수요를 놓치지 않도록 다양한 준비를 하겠다”고 덧붙였다.
NHK에 따르면 “코로나 시대 새로운 여행패턴으로 ‘스테이케이션(Staycation)’이 주목받고 있다”고 한다. 스테이케이션이란 ‘머물다’는 의미의 스테이(Stay)와 ‘휴가’를 뜻하는 버케이션(Vacation)의 합성어로, 요컨대 “멀리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 가까운 곳의 호텔에 머물면서 숙박 그 자체를 즐기는 여행 스타일”을 말한다.
이러한 경향은 앙케트 결과에서도 잘 드러난다. 최근 자란리서치센터가 ‘숙박여행의 목적’에 대해 묻는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숙소에서 한가롭게 휴식을 취하고 싶어서”가 크게 상승해 응답자의 절반에 가까운 46.8%를 차지했다. 코로나 사태 이전에는 “현지의 맛있는 것을 먹기 위해” “온천·노천탕”이 1, 2위였던 것과 비교하면 확실히 커다란 변화다.
자란리서치센터의 모리토 가나코 수석연구원은 “코로나19로 인해 여러 명이 함께 관광지를 도는 여행이 사라지고, 숙박시설 그 자체가 여행 목적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네댓 명이 같이 가는 여행이라면 ‘어디로 갈까’ ‘무엇을 할까’ ‘뭘 먹을까’ 등 다양한 협의가 필요하다. 반면 한두 명일 경우 취미나 좋아하는 걸 즐기자는 쪽으로 의견이 취합되기 쉽다. 이처럼 “여행 인원이 줄어들면서 호텔 체류 등 테마성 강한 여행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는 분석이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주춤했던 오프라인 커뮤니티도 호텔을 계기로 새롭게 형성되고 있다. 지난 2월 도쿄 미나토구에 문을 연 호텔 ‘이누모’는 반려견이 안전하게 뛰어노는 ‘놀이터’라든지, 반려견 털을 다듬어주는 ‘그루밍 살롱’, 반려견 출입이 가능한 레스토랑을 갖추는 등 반려견과 함께 머무는 공간으로 특화했다.
일반 호텔에서는 반려견이 침대나 소파에 오르는 것이 금지돼 있지만, 이 호텔에서는 제공되는 기저귀만 채우면 주인과 함께 침대 위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게다가 아예 침대마저 없앤 ‘반려견 퍼스트’ 룸도 있다. 커다란 침대가 떡하니 자리하면 아무래도 반려견이 지나다닐 때 불편하다는 것이 이유다. 되도록 넓은 공간에서 놀 수 있도록 침대를 없앤 대신, 잘 때는 소파를 변형해 침대로 바꾼다.
NHK에 따르면 “호텔 지하에 있는 놀이터에서는 보호자들 간의 교류도 이어진다”고 한다. “우리 애는 여섯 살이에요.” “우리 애도 같은 나이예요.” 동갑내기 반려견을 데려온 숙박인들은 금세 친해져 대화에 꽃을 피웠다. 이와 관련, NHK는 “숙박인 모두 반려견과 체류하는 것이 목적이므로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졌고 여행의 즐거움이 느껴지는 밝은 표정들이 인상적이었다”며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위기를 겪고 있는 일본 호텔업계. 전문가들은 “지금이야말로 선택과 집중의 전략이 필요한 시기”라고 지적한다. 자란리서치센터의 모리토 가나코 수석연구원은 “일례로 철저하게 전문성을 추구하면 관련 마니아의 네트워크를 통해 전국으로 퍼져나간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마니아들에게 입소문이 날 경우 예약하기 어려운 ‘인기 호텔’이 될 가능성이 높다. 모리토 연구원은 “코로나19가 바로 소멸되진 않을 것으로 보이니, 위드 코로나(단계적 일상회복)에 맞는 프로모션을 진행하는 편이 좋다”는 조언을 더했다.
실제로 최근 일본에서는 독특한 콘셉트를 내세운 ‘초개성파’ 호텔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가령 책으로 둘러싸인 호텔(가나가와 하코네), 숙박이 가능한 영화관(도쿄 스미다구), 양조장 호텔(나라시), 닌자룸이 있는 호텔(도쿄 다이토구), 폐교에서 즐기는 글램핑(시즈오카 시마다시) 등이 새롭게 탄생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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