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교란종’ 방생 금지 불구 여전히 종교 행사에 쓰여…“신고 해도 죽고, 그냥 둬도 죽어” 반려동물 인정 요구도
#바다에서 사멸할 가능성
이 아무개 씨는 최근 경주로 가족 여행을 갔다가 놀라운 일을 겪었다. 문무대왕릉 앞 바다에서 가족사진을 찍기 위해 차에서 내렸는데 주변이 소란스러웠다. 둘러보니 육지와 멀지 않은 곳에 검은 물체가 둥둥 떠 있었다. 작은 점 같은 물체는 파도가 칠 때마다 넘실거리는 물너울을 타고 점점 육지와 가까워졌다. 뭍으로 거의 다 올라와서도 파도에 밀려 자갈 위를 데굴데굴 구르기도 했다. 다가가서 보니 손바닥 두 개 크기의 청색 등껍질을 가진 거북이였다. 이미 자갈 위를 여러 번 굴렀는지 목에는 상처가 있었고 발톱도 빠져있었다.
이 씨는 “어떤 가족이 ‘와~거북이다’라고 해서 봤더니 바다에서는 살 수 없는 민물거북이었다. 누가 민물거북을 여기에 버린 건지 놀랐다. 얘는 살려고 아등바등 헤엄을 쳐서 온 거다”라며 “근처에 있던 또 다른 거북은 이미 기운이 너무 없어 보였다”고 했다.
민물거북이 바다로 오게 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상태를 보기 위해 들어 올린 거북의 배딱지에는 사람 5명의 이름과 생년월일이 매직으로 빼곡하게 쓰여 있었다. 누군가 복을 빌기 위해 거북의 배에 글씨를 쓰고 바다에 방생한 것이다. 살생의 반대 개념인 방생은 물고기나 새, 거북이 등 사람에게 잡힌 생물을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내줌으로써 공덕을 쌓는 일종의 종교 의식이다. 통상적으로 불교계 행사로 알려져 있으나 불교뿐만 아니라 무속신앙 등 기타 종교에서도 방생 행사를 매년 열고 있다. 특히 문무대왕릉 인근은 무속인들 사이에서 영험하고 신기가 좋은 기도명당으로 알려져 있어 이미 올해 초부터 방생 행사가 많이 열렸다고 했다.
문제는 살리는 취지로 행한 방생이 오히려 생명을 죽이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는 점이다. 방생 행사에 쓰이는 양서류와 어류는 일부러 사오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서식지와 환경을 신중하게 고려하지 않으면 떼죽음을 당할 확률이 높은 까닭이다. 민물고기인 붕어와 잉어를 바다에 풀어주거나 남생이와 붉은귀거북 등 민물거북을 바다에 방생하는 등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삼투조절 기능이 없는 민물고기와 민물거북은 바다에서 사멸할 가능이 매우 높다.
#한때 반려동물이었던 붉은귀거북
또 다른 문제는 목격된 거북이 붉은귀거북이나 쿠터류(리버쿠터‧플로리다붉은배거북 등) 등 유기·방생이 금지된 생태계교란종이라는 점이다. 이 씨는 “바닷가에서 40분 정도 있었는데 그 사이에 본 거북이만 최소 7마리였다”고 했다. 다만 관할 기관에 신고는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알아보니 (신고를 하면) 그 거북이들을 죽인다고 하더라”며 “곧 죽을 것 같았는데 너무 불쌍했다”고 했다. 즉, 신고를 해도 죽고 그냥 둬도 죽는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눈 뒤부터 목까지 이어지는 빨간 선을 가진 붉은귀거북은 ‘애완 거북이’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릴 만큼 친숙하게 생겼지만 미국에서 온 외래종이다. 1970년대 후반 국내에 들어와 1990년대 후반부터 종교계 방생용 및 애완용으로 큰 인기를 끌면서 대거 수입됐다. 유행은 오래 가지 않았다. 단순 호기심으로 입양된 거북들은 저수지와 하천 등에 무책임하게 유기됐고 한 쪽에선 종교 행사를 이유로 계속 방생됐다. 불똥은 우리 토종 남생이에게로 튀었다. 붉은귀거북의 개체수가 점점 증가하는 만큼 남생이의 입지가 좁아졌다. 이에 환경부는 2001년 붉은귀거북의 수입을 금지했다.
더 이상 붉은귀거북을 들여올 수 없게 된 수입업자들은 이와 비슷한 쿠터류 거북을 들여오기 시작했다. 붉은귀거북 대신 방생용으로 쓰인 쿠터류 거북의 번식 속도도 빨랐고 2020년 3월에는 리버쿠터가, 그해 12월에는 플로리다붉은배거북이 생태계교란 생물로 지정됐다. 한때 인기 있는 반려동물에서 생태계 파괴범으로 전락한 셈이다.
현행 생물다양성법에서는 생태계교란 생물 또는 생태계위해우려 생물을 생태계로 방출, 방생, 유기, 이식을 금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보관과 운반도 해서는 안 된다. 즉, 붉은귀거북을 발견하고 다른 장소로 옮기거나 집으로 데려가서도 안 된다. 어길 시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반려동물로서의 거북이를 인정해 달라는 목소리도 나왔다. 리버쿠터를 키우고 있는 A 씨는 “2년 전 버려진 거북이를 주웠다. 이미 한 마리 키우고 있었기 때문에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 기운이 없는지 등딱지 안에만 들어가 있는 녀석을 데려와서 정성껏 돌봤다. 겨우 살려 놓고 무슨 종인지 찾아보니 붉은귀거북 아종 가운데 하나인 컴버랜드거북이었다. 그냥 키우면 불법 사육자가 되는 상황이었다. 한참 고민하다가 결국 동사무소에 전화를 하는데 고개를 내밀고 나를 끔뻑끔뻑 쳐다보는 거북이랑 눈이 마주쳤다. 거북은 사람을 알아본다. 눈물이 났다. 너무 미안했다”고 했다.
이어 “어떤 거북이든 처음에는 개나 고양이와 다름없이 입양된 반려동물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개체수가 늘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어느 날 갑자기 키우던 동물이 생태계교란종이 됐다. 이날 이후로 유기된 거북은 잡아다 죽인다. 개나 고양이처럼 새 가족을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안 준다. 잘못은 마구잡이로 방생하고 버린 사람에게 있는데 왜 필요에 따라 수입됐다가 버려진 거북이만 죽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방생과 유기가 문제라면 추적 시스템을 만들거나 동물등록제도를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행법에는 생태계교란종 방사에 대한 주기적인 단속 의무가 명시돼 있지 않아 시민의 신고나 제보가 있을 시에만 관련 조사를 시행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법령에서 정하는 형량과 벌금의 무게에 비해 실제 처벌을 받는 이는 많지 않다.
한편 경주시청 관계자는 4월 27일 문무대왕릉 앞 바다에서 생태계교란종 거북이 발견되고 있는 것에 대해 “붉은귀거북과 관련된 신고는 아직까지 들어온 것이 없어 관련 조사나 시행 중인 일이 없다”고 답했다. 다만 “만약 신고가 접수되면 환경단체와 함께 포획을 한 뒤 처분하게 된다”고 답했다. 다만 경주 문무왕릉 인근 바다에서 거북을 봤다는 목격담은 2019년부터 주요 포털 사이트와 커뮤니티에 지속적으로 올라오고 있다. 내용을 확인해보면 이들이 본 것은 대개 붉은귀거북이나 쿠터류 거북 등 생태계교란종이었으나, 당시에는 관련 정보가 부족해 민물거북을 바다거북으로 오인하거나 생태계교란종임을 몰랐던 사례도 많았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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