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 돈 구매 슈퍼카 개인계좌 이체 등 ‘돈세탁’ 편법·불법 잦아…“구체적 규제 방안 마련해야” 지적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중고차 매매업은 2013년 민간 자율 합의기구인 동반성장위원회에서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하면서 대기업 진출이 제한됐다. 2019년 중고차 매매업의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 기한이 끝나면서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의 출입문이 열렸다. 하지만 중고차 업계는 같은 해 중고차 매매업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다시 지정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동반성장위원회는 2019년 중고차 시장에 대기업 진입을 막는 것이 부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결국 지난해 12월 현대·기아차가 중고차 시장 진출을 선언했다. 중고차 업계는 이들의 시장 진출을 막아달라며 중소벤처기업부(중기부)에 사업조정 신청서를 제출했다. 국토교통부 인가 자동차매매업 단체인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 임원들은 이날부터 중기부 앞에서 릴레이 단식에 돌입했다. 연합회 측은 “중기부가 소임을 다하기 위해서는 생계형 적합업종 미지정 결정 후 소상공인의 마지막 보루인 현대·기아차에 대한 사업 조정 과정에서 약자의 편에 서야 한다”고 전했다.
중고차 시장과 업계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는 것과 달리 슈퍼카 중고차 시장은 동요가 거의 없다. 그렇다고 슈퍼카 중고차 시장의 움직임이 둔한 것도 아니다. 페라리, 람보르기니, 벤틀리 등 초고가 브랜드에서 중고차사업부를 운영할 정도로 활발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슈퍼카 중고차 시장이 영향을 받지 않는 까닭은 “슈퍼카 차주들의 편법 행위 때문”이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슈퍼카 중고차 시장에서는 대체로 △자금 전환 △명의이전 △개인 렌트 등의 행위가 이뤄진다. 이 중에서 법인 돈으로 구매한 슈퍼카를 판매한 후 개인 자금으로 세탁하는 자금 전환은 법에 위반된다. 형법 제355조(횡령·배임)에 의거해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가 그 재물을 횡령하거나 반환을 거부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불법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슈퍼카 중고차 시장에선 자금전환 행위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국내 최대 수입 중고차 시장으로 알려진 서울오토갤러리에서 수년간 딜러로 근무해온 A 씨에 따르면 최근 국내의 한 중소기업 임원이 자금전환 행위를 통해 법인 돈으로 구매한 슈퍼카를 개인 계좌로 받은 경우가 있었다.
이러한 사실과 함께 A 씨는 일부 메신저 대화 내용을 공개했다. 자금전환을 요청한 임원의 비서로 추정되는 인물은 A 씨에게 “어떻게든 표시없게 해서 보내주세요”라고 전했다. 자금전환 행위 과정에 대해 흔적을 남기지 말라는 뜻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법무법인 정의의 강동원 대표변호사는 “명백한 업무상 횡령죄”라고 강조했다.
강동원 변호사는 “법인 돈으로 구매한 슈퍼카를 판매할 때 중고차 업체 측과 매매계약서를 작성했을 것”이라며 “매도인이 법인이기에 매수인 입장에서 매도인 계좌에 돈을 넣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므로 업무상 횡령죄”라고 설명했다. 강 변호사는 또 “슈퍼카인 경우 대체로 억 단위의 차량인데 만약 해당 임원이 판매한 차가 5억 원이 넘으면 업무상 횡령죄뿐 아니라 특정경제가중처벌법에도 위배된다”고 덧붙였다.
슈퍼카 중고차 시장에서는 명의이전도 손쉽게 벌어진다. 슈퍼카 중고 판매업자 김 아무개 씨(31)는 “중고차 시장에서 슈퍼카 매매를 하는 차주들 중에는 도박사이트 운영 등 불법 행위를 저지르는 인물, 신용불량자 등이 많다”며 “이들이 자신의 소유로 차량을 구매하지 못해 업체 측에 일명 ‘명의비’를 주고 중고차 업체 명의로 슈퍼카를 끄는 경우가 있다”고 언급했다.
김 씨에 따르면 국내 유명 직수입 슈퍼카 업체에서도 이 같은 행위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김 씨는 “슈퍼카 법인 차량을 하나 하나 조사하면 차주 본인 명의로 제대로 등록된 건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한국수입차협회에 따르면 국내에 유통된 페라리의 70%, 람보르기니·멕라렌 80% 정도가 법인 및 사업자 명의로 등록돼 있다.
개인 렌트 행위도 슈퍼카 중고차 시장이 끄떡없는 이유다. A 씨는 “슈퍼카 차주가 차량을 팔겠다고 업체를 통해 내놨을 때 차량이 팔리기 전까지 (해당 차량을) 업체 측에서 개인 렌트로 돌려 이익을 낸다”며 “종종 이 같은 행위를 차주와 입을 맞춰 진행하는 경우가 있다”고 전했다.
차주가 슈퍼카 중고차 업체에 차량을 판매하겠다고 넘긴 뒤 해당 차량이 판매되기 전까지 개인 렌트를 돌린다. 이때 차주는 비록 차량이 팔리지 않았지만 중고차 업체 측과 개인 렌트 수익을 나눠 가질 수 있다. 슈퍼카 중고차 업체 관계자들은 “슈퍼카 매매의 경우 대체적으로 차주들이 신차·중고차 상관없이 ‘어떻게 수익을 낼까’ 생각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슈퍼카 업체 B 사에서 근무 중인 C 씨는 “슈퍼카 고객들이 중고차 시장을 찾는 이유 중에는, 비록 그것이 편법·불법 행위여도 수익을 낼 수 있는지 여부도 중요한 부분일 것”이라며 “슈퍼카 중고차 시장은 일반 중고차 시장 움직임과 별개”라고 귀띔했다.
슈퍼카 중고차 시장의 편법·불법 행위가 끊이지 않는 까닭은 고수익에 있다. 슈퍼카 중고차 거래에서는 수천만 원의 수익이 오간다.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 국산중고차 업체 등에 따르면 전국 국산중고차 딜러 5만여 명의 월평균 수익은 현재 150만~200만 원이다. 이보다 높은 수익을 내는 딜러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국산중고차 시장에서 딜러들의 순수익은 높지 않다. 이들이 현대·기아차의 중고차 시장 진출을 막는 가장 큰 이유다.
반면 슈퍼카 중고차 시장의 딜러 수익은 억대도 가능하다. 슈퍼카 중고판매업자 김 씨는 “슈퍼카 중고차 시장이 성수기(6~8월)에 돌입하면 딜러 개인 순수익만 2억 정도 되기도 한다”며 “편법·불법 행위가 있어도 수익이 크게 떨어지니 서로 눈감아주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어떤 경우라도 슈퍼카 중고차 시장은 살아 남을 것이라는 게 업계 관측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중고차·신차를 넘어 슈퍼카의 전반적인 시장에 대한 편법 행위를 제한할 수 있도록 현실적인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슈퍼카 신차 시장이든 중고차 시장이든 돈세탁 등의 편법 문제는 꾸준히 제기돼 왔지만 설익은 정책과 규제가 대부분이었다”며 “신차든 중고차든 슈퍼카 매매와 관련해 벌어지는 편법·불법 행위에 대한 구체적인 규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소영 기자 upjsy@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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