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있어도 못 사는 ‘버킨백’ 금 같은 자산으로 각광…“Y·Z세대 2025년까지 명품 매출 70% 책임질 것”
인플레이션 시기에 어떤 자산에 어떻게 투자하는 게 현명할까. 부동산도 있고 주식도 있고 금도 있지만 몇 년 전부터는 명품백에 투자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고 있다. 독일 시사주간 ‘슈테른’이 들여다본 명품백 투자에 대해 살펴본다.
에르메스의 ‘버킨백’은 제아무리 돈 많은 부자라고 해도 쉽게 손에 넣지 못하는 핸드백으로 유명하다. 짧게는 수개월에서 길게는 수년 동안 대기해야 할 정도로 품귀 현상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공급보다 수요가 더 많으면 가격이 오르는 건 당연한 일.
1984년만 해도 2500유로(약 330만 원)였던 ‘버킨백’의 가격은 2022년 현재 8800유로(약 1200만 원) 정도에 형성돼 있다. 근 40년 동안 무려 네 배가 오른 셈이다. 사정이 이러니 ‘버킨백’이 금처럼 버젓이 하나의 투자 자산으로 각광받은 건 어쩌면 당연한 일. 심지어 코로나19 대유행 기간 동안 가격이 급등하면서 요즘에는 더욱 더 구하기 힘들어졌다.
샤넬의 ‘2.55백’ 역시 마찬가지다. 처음 선보였던 1955년에는 190유로(약 25만 원)에 불과했던 ‘2.55백’의 가격은 2006년 1200유로(약 160만 원), 그리고 2022년 현재는 8250유로(약 1100만 원)로 치솟았다. 루이비통의 ‘스피디’ 경우에는 2006년 600유로(약 80만 원)에서 지금은 1150유로(약 150만 원)로 껑충 뛴 상태다.
인기 있는 명품 브랜드 매장 앞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는 풍경은 이제는 흔하게 됐다. 명품백을 구입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단지 소비만 목적으로 하는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니다. 이들 가운데는 훗날 더 높은 가격에 되팔기 위해 ‘투자’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독일 함부르크에 거주하는 모니카 셰퍼가 지난 3월 딸 카를라(17)와 함께 루이비통 매장 앞에 줄을 선 이유도 비슷했다. 아직 10대인 카를라는 몇 년 전부터 ‘스피디’ 백을 사기 위해 열심히 돈을 모아왔다. 하지만 사고 싶다고 해서 아무 때나 살 수는 없었다. 매장에 입고되자마자 거의 순식간에 완판이 돼버리기 때문이었다.
가방을 사기 위해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카를라는 그날은 다행히 1시간가량 줄을 선 끝에 그토록 원하던 ‘스피디’ 백을 하나 살 수 있었다. 셰퍼는 “내년이 되면 과연 이 핸드백이 얼마가 돼있을지 한 번 두고 봐야겠다”며 사뭇 기대감을 내비쳤다. 이런 기대감이 전혀 근거 없는 건 아니다. 실제 몇 년 전부터 일부 명품 제품의 가격은 우상향하고 있다. 셰퍼는 “작년 크리스마스 전만 해도 ‘스피디’ 가격은 900유로(약 120만 원)였다. 그런데 지금은 벌써 1150유로(약 155만 원)로 올랐다”며 놀라워했다.
다른 명품 브랜드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코로나19 대유행 기간 동안에만 ‘2.55백’의 가격은 무려 여섯 배나 올랐다. 에르메스의 ‘버킨백’은 10년 전보다 두 배 이상 올랐다.
이런 가격은 과연 정당할까. ‘슈테른’은 “사실 불경기에는 되레 이런 명품들의 가격은 경쟁적으로 큰 폭으로 오르게 돼있다”고 지적했다. 경제전문가들은 코로나19 대유행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전세계가 인플레이션 공포에 휩싸여 있지만 오히려 명품에 대한 흥미는 결코 시들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이런 현상은 이미 몇 년 전부터 일어나기 시작했으며, 그 결과 명품 투자는 현재 엄연한 하나의 재테크 수단으로 인정받고 있다. 일단 사놓기만 하면 꾸준히 가격이 오르기 때문이다. 얼마 전부터는 경제적 능력이 있는 젊은층까지 명품 투자에 뛰어들면서 관련 시장은 성행하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인 ‘베인앤드컴퍼니’는 Y세대와 Z세대가 2025년까지 전세계 명품 매출의 70%를 책임질 것으로 추정했다. 1980~2010년 출생한 세대들에게 명품백은 신분의 상징일 뿐만 아니라 저금통장, 주식 등 일종의 가치 투자처로 인식되고 있다.
럭셔리 패션 중고거래 플랫폼 ‘베스티에르 콜렉티브’의 CEO(최고경영자)인 막시밀리안 비트너는 “핸드백은 패션업계의 금이다”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현재 이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매일 2만 개의 중고 명품들이 올라오는데 이 가운데 가장 잘 팔리는 베스트셀러는 단연코 핸드백이다. 비트너는 “상태 좋은 버킨백을 내놓는다면 충분한 수익이 보장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몇 년 전 온라인 쇼핑몰인 ‘백헌터’가 진행한 조사 결과를 보면 이런 인식 변화는 당연해 보인다. 지난 35년 동안 세 가지 투자 자산의 연평균 수익률을 조사해본 결과 금 1.9%, S&P500 지수 11.6%, 버킨백 14.2%였다.
명품 핸드백이 오늘날과 같은 특별한 위상을 갖게 된 것은 1990년대 초반부터였다. 당시 ‘잇백’이란 신조어가 등장하면서 시즌별로 유행하는 명품백이 하나씩 새롭게 등장했다. 이런 유행을 더욱 부추긴 데는 1998년 방영되기 시작했던 미 HBO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가 한몫했다. 뉴욕에 거주하는 세련된 네 명의 여주인공들은 저마다 펜디의 ‘바게트백’이나 디올의 ‘새들백’ 등 형형색색의 명품백들을 두루 착용하고 나왔다.
방송이 나간 후에는 이런 핸드백들은 순식간에 완판되기 일쑤였다. 그리고 2000년대 들어서 패리스 힐튼, 킴 카다시안 등 셀럽들이 전투적으로 이런 핸드백들을 착용하면서 인기가 더욱 치솟곤 했다.
그렇다면 어떤 핸드백이 투자 가치가 있는 걸까. 사실 ‘잇백’이라고 해서 모두 자산으로 인정받는 건 아니다. 한철 유행처럼 지나버리는 ‘잇백’들은 가격이 떨어지면 떨어지지 오르는 일은 없다. 반면, 유행을 덜 탈수록, 그리고 클래식하고 차분할수록 오히려 가치가 치솟는다.
경매회사인 ‘크리스티’의 가방 전문가인 레이첼 코프스키는 “이런 가방들은 세대를 뛰어넘어 그 가치를 인정 받는다. 품질 또한 세대를 넘어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실제 크리스티 경매에 나오는 명품들은 해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지만 이 가운데 가장 가치가 높은 품목은 에르메스의 가방들로, 보통 수백만 유로에 팔려 나간다.
에르메스의 6대손이자 현 CEO인 악셀 뒤마는 “가방 하나를 만드는 데 보통 15시간이 걸린다. 물론 모두 수작업으로 만들어진다”라고 소개했다. 하루가 다르게 찾는 사람이 늘고 있기 때문에 2024년까지 신규 작업장 세 곳을 더 운영할 예정이라는 계획도 밝혔다.
한편 언어학자들은 나라마다 ‘럭셔리’라는 단어가 다르게 인식된다는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가령 독일에서는 ‘럭셔리’가 낭비나 사치, 혹은 불필요와 동의어로 간주된다. 반면, 영어권 나라에서는 부유함과 명예와 연결짓는 경향이 있으며, 중국에서는 독점으로 해석된다. 아마도 명품을 선호하는 성향이 나라별로 상이한 이유도 아마 여기에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볼 수 있을 듯싶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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