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공장 수 11배 증가한 사이 개당 가격은 6분의 1 수준으로…“해외 진출은커녕 남은 건 폐업뿐”
정부가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를 해제하면서 마스크 제조업계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최근 미국과 영국, 독일, 프랑스, 싱가포르 등 주요 국가에서 노마스크를 선언한 데다 우리도 실외를 시작으로 점차 마스크 해제 조치를 진행할 전망이다. 그동안 어느 나라보다 마스크 의존도가 높았던 국내 제조업체가 겪는 타격은 더 클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창궐 이후 마스크 제조업체들은 급격히 늘어나며 몸집을 불렸다. 매주 생산되는 마스크는 1억 개를 훌쩍 넘는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3월 3주 차 국내 마스크(보건용, 비말차단용, 수술용) 생산량은 1억 145만 개다. 2020년 5월 4주 차에 처음 1억 장 생산량을 넘긴 이후 2021년 여름 일부를 제외하면 매주 최소 1억 장의 마스크가 만들어지고 있다. 이는 식약처의 인증을 받은 업체의 생산량만 추산한 것으로 인증을 받지 않은 업체의 생산량까지 합하면 훨씬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 생산량은 줄어드는 추세다. 2020년 8월 4주 차와 9월 4주 차 생산량은 각각 2억 7368만 개와 2억 6344만 개로 거의 3억 장에 육박했던 생산량은 이듬해인 2021년 1월 4주 차에 1억 4522만 개로 반토막 났고 같은 해 2월 4주 차(1억 787만 개)부터는 1억 개에서 소폭 등락을 반복하고 있다.
수요가 증가하지 않는 상황에도 마스크 제조업체는 꾸준히 증가했다. 코로나19 사태 초기였던 2020년 1월 137개에 불과했던 마스크 제조업체는 3월 기준 1595개로 2년 사이 11배 넘게 폭증했다. 같은 기간 허가 품목도 1012개에서 8156개로 8배 가까이 늘었다. 식약처 인증을 받지 않은 업체까지 포함하면 그 수가 2000개를 훌쩍 넘을 것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가격은 급락하고 있다. 식약처에 따르면 2020년 2월 KF94 마스크는 개당 4156원이었다. 다음 달인 3월에는 개당 4525원으로 상승해 ‘금스크’라고 불리기도 했다. 이후 우후죽순으로 제조업체가 들어오면서 공급이 늘자 가격도 다시 떨어지기 시작했다. 2020년 7월 1000원대로 떨어진 마스크 가격은 같은 해 11월에는 개당 700원대를 찍었다. 업계에서 1차 위기라고 부르던 그 시기다. 현재는 KF94 마스크가 개당 600원 정도에 팔리고 있다.
일부 업체가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중이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미 중국에서 값싼 마스크를 전 세계에 대량으로 공급해 해외 시장을 선점한 탓이다. 중국산 마스크 품질은 국산 제품보다 떨어지지만 가격은 3분의 1 수준이다. 국내 마스크 수출액은 2020년 7억 166만 달러(약 8845억 원)에서 2021년 2억 9542만 달러(약 3723억 원)로 크게 줄었다.
2021년 사업을 정리했다는 A 씨는 “수출도 알아봤는데 중국산 마스크에 대적할 수 없었다. 당시 외국인들은 마스크에 거부감도 심했다. 정부가 쓰라고 강제하니까 대충 쓰는 정도였다. 기능이나 품질보다는 저렴한 가격이 첫째 고려 요소였고 이런 면에서 중국산 마스크와 경쟁이 어려웠다”고 말했다.
이어 “2020년 8~9월에는 마스크 공장이 500개 정도밖에 안 됐다. 500개 회사가 3억 장을 만들어 팔았으니 그때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맞았다”면서도 “어떤 분야든 결국 초기에 진입한 사람만 돈을 벌지 않나. 늦게 시작한 사람 치고 여기서 돈 번 사람은 많지 않을 거다. 기계만 있으면 별다른 기술이 필요하지 않으니 너도나도 공장을 만든 것이 패착이었다. 나도 그 가운데 한 명이다. 결국 기계도 팔고 나왔다”고 말했다.
남아있는 업체들은 더 이상 버티기 힘든 상태에 있다고 했다. 경기도의 한 중소 마스크 제조업체 B 대표의 말이다.
“2020년 겨울부터 2021년 초까지 마스크 가격이 쭉 떨어지면서 나가떨어진 사람들이 많다. 지금 있는 사람들은 그때 1차 위기에서 어떻게든 버틴 사람들이다. 그때만 해도 백신이나 치료제가 개발 중인 상태였고 마스크는 지속적으로 필요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희망을 가졌다. 우리도 생산 설비를 어느 정도 정리해가면서 악착같이 살아남았다. 그런데 이번엔 다들 정리하는 분위기다. 앞으로 몇 달 정도는 버티겠지만 원도급 업체가 탄탄하지 않으면 내년쯤에는 정말 큰 회사를 제외한 중소업체는 투자금을 건지지도 못 하고 줄줄이 문을 닫을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돈 되는 사업이라고 해서 뛰어든 것도 맞지만 마스크가 부족했던 시기에 열심히 물건을 만들어낸 것도 사실이다. 제대로 된 유통 채널 하나 없이 주문은 날로 줄어가는 상황이라 이제는 땡처리 할 재고만 남았다. 혹시 정부 차원에서 구제 방안을 마련해 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마스크 제조 공장이 일터인 노동자들도 막막하기는 마찬가지다. 2020년 아르바이트를 하다 정규직이 됐다는 3년 차 직원 C 씨는 “상황이 나아져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점은 반갑다”면서도 “코로나19가 계속 되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지만 마스크 착용 의무화 해제가 공장 직원에게는 ‘사망 선고’ 같았다. 일상은 회복되고 있는데 밥줄이 끊길까봐 웃지 못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마스크 제조업체의 폐업은 외국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2년 동안 중국산 마스크의 물량 공세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하던 미국 마스크 업계도 최근 바이든 행정부의 마스크 해제 소식에 울상 짓고 있다. 4월 20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1년 전 행정부에 중국산 마스크 유입 규제를 촉구하는 성명을 보냈던 26개의 마스크 제조업체 가운데 현재 남아있는 곳은 9개뿐이었다. 대개 경영난을 이겨낼 여력이 있는 큰 규모의 기업들로 이마저도 주력 상품을 마스크에서 공기청정기 등으로 전환해 살아남았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코로나 사태 초기에 물량이 달린다는 이유로 신규 업체에 허가 절차를 간소화하고 대량으로 허가를 내준 것도 시장 불균형에 영향을 줬다고 생각한다. 보통 몇 개월씩 걸리는 절차가 그때는 한 달도 안 되어 나온 것으로 안다. 코로나 사태 이후의 시장은 고려하지 않은 처사였다고 본다. 다음엔 어떤 바이러스가 나올지 모르지만 아마 이런 상황이 반복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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