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 관련 품귀로 깜짝 실적 냈지만 신사업 속도는 아쉬움…합병설 등 롯데케미칼과의 관계도 부담
롯데정밀화학은 소재 기업으로 염소, 암모니아, 셀룰로스 기반의 제품을 만든다. 구체적으로는 알약 캡슐이나 디젤 자동차에 들어가는 요소수, 반도체 현상액, 건축자재 및 의약품 원료 등 특수 용도로 쓰이는 화학제품을 생산한다. 최근 발생한 요소수 대란 등 화학 관련 품귀 현상이 빚어지면 롯데정밀화학 제품의 가격은 급등했다.
화학업계에서는 롯데정밀화학이 당분간 실적 고민을 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전유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내 화학업체 중 물량효과 없이 온전히 수익성 지표만으로 이익이 대폭 늘어나는 기업은 롯데정밀화학뿐”이라며 “연간으로 시황 변화에 따라 이익이 대폭 감소하는 업체들보다 훨씬 매력적”이라고 전했다.
롯데정밀화학의 모태는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가 1964년 설립한 한국비료공업이다. 한국비료공업은 1967년 사카린 밀수 사건 이후 공기업이 됐다가 1994년 삼성그룹에 반환되면서 삼성정밀화학으로 사명이 바뀌었다. 삼성그룹은 2015년 삼성정밀화학을 롯데케미칼에 매각했고, 사명도 롯데정밀화학으로 변경됐다.
#롯데정밀화학의 가격 경쟁력 상승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는 롯데정밀화학의 실적이 가파르게 상승할 것으로 예상한다. 에프앤가이드가 지난해 전망한 롯데정밀화학의 올해 영업이익은 2063억 원이었지만 최근 3843억 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2분기 영업이익 예상치도 현재는 1052억 원이지만 1100억~1200억 원을 예상하는 증권사도 하나둘 나오고 있다. 이에 힘입어 롯데정밀화학의 주가는 올해 2월 초 6만 원대에서 지난 4월 한때 8만 9900원까지 급등했다.
인도네시아의 팜유 수출 제한 조치도 롯데정밀화학 실적에 도움이 될 전망이다. 롯데정밀화학의 주요 제품인 ECH(에폭시수지 원료)는 프로펠린 기반과 글리세린 기반으로 나뉜다. 글리세린은 팜유가 주원료인 바이오디젤 생산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이다. 하지만 롯데정밀화학은 프로필렌으로 ECH를 만든다. 팜유 수출이 중단되면 바이오디젤과 글리세린 생산량이 감소하고, 이로 인해 프로필렌으로 ECH를 만드는 롯데정밀화학이 수혜를 입는 구조다.
강동진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인도네시아뿐 아니라 말레이시아도 팜유 생산 과정에서의 인권 문제 등 불확실성이 있다”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유럽이 디젤 수요를 줄이는 정책을 펴고 있다는 점도 롯데정밀화학의 ECH 사업 경쟁력을 높이는 요인”이라고 전했다.
암모니아 계열의 화학사업과 그린소재 사업도 2분기 이후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그린소재 사업은 식물성 펄프를 원료로 하는 셀룰로스 계열의 사업을 뜻한다. 시멘트나 생활용품에 첨가되는 제품이 있고, 식물성 의약용 코팅제나 대체육 등 미래 먹거리 사업도 포함돼 있다. 박한샘 SK증권 연구원은 “암모니아는 가격 상승으로 2분기에도 매출 상승이 예상되고, 셀룰로스는 상반기 안에 식의약용 라인이 2000톤(t) 추가된다는 점이 긍정적”이라고 전했다.
#미래 먹거리 더 갖춰야
롯데정밀화학의 사업은 당장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신사업을 더 갖춰야 한다는 진단이 나온다. 일단 롯데정밀화학 실적을 끌어 올리는 ECH 가격도 하반기 이후에는 진정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롯데정밀화학은 대체육 외에 암모니아 해상운송, 벙커링(선박 연료 주입) 등을 신사업으로 추진 중이다. 일각에서는 이를 구체화하는 일정이 기대보다 더디다고 지적한다.
롯데정밀화학이 대기업 계열사가 아니었다면 훨씬 크게 성장했을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삼성그룹 계열사에 있을 당시에는 그룹이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고, 현재는 롯데케미칼 영역에 진출할 수 없어 사업 다각화가 더디게 진행된다는 이유에서다.
롯데정밀화학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지난해 말 별도 기준 2225억 원에 달한다. 현금이 풍부한 만큼 신사업 투자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스카이레이크가 2020년 두산솔루스(현 솔루스첨단소재)를 인수할 때 롯데정밀화학이 2900억 원을 투자하기는 했다. 하지만 아예 두산솔루스 경영권을 인수하는 것이 낫지 않았겠냐는 뒷말이 나온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당시 롯데그룹은 솔루스첨단소재를 욕심내기는 했지만 너무 비싸다는 판단에 따라 2900억 원만 투자한 것”이라면서도 “비싸더라도 차라리 인수했어야 2차전지 사업 등 신사업을 구체화할 수 있었을 것이고, 지금은 단순 투자만 해놓은 상황이라 오히려 주가 하락으로 인한 평가손실만 입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롯데정밀화학은 올해 1분기 깜짝 실적을 거뒀지만 정작 벌어들인 순이익은 296억 원으로 지난해 1분기(405억 원)에 비해 감소했다. 솔루스첨단소재의 주가 하락으로 약 1400억 원의 평가금융손실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롯데정밀화학 관계자는 “신사업은 지속적으로 검토하고 있지만 세부 내용이나 인수합병(M&A) 등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끊이지 않는 롯데케미칼과의 합병설도 롯데정밀화학에는 부담이 가는 부문이다. 롯데케미칼이 보유한 롯데정밀화학 지분은 35.50%에 불과하다. 롯데지주의 롯데케미칼 지분율 또한 25.59%로 상대적으로 낮다. 롯데지주는 롯데정밀화학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 않으므로 두 회사가 합병할 경우 롯데지주가 보유한 합병법인의 지분도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롯데케미칼의 가치가 롯데정밀화학에 비해 높을수록 롯데그룹에게 유리하다. 반면 롯데정밀화학의 가치가 높을수록 불리하다. 다만 롯데그룹 측은 양사 합병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며 선을 긋고 있다.
민영훈 언론인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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