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는 지난해 12월 ‘잠실 스포츠·MICE 복합공간 조성 민간투자사업(잠실 민자사업)’ 우선협상대상자로 한화건설 컨소시엄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잠실 민자사업은 서울시 송파구 잠실종합운동장 일대 약 35만㎡(약 10만 5875평) 부지에 전시·컨벤션 및 야구장 등 스포츠·문화시설과 이를 지원하는 업무·숙박·상업시설 등을 조성하는 사업이다. 해당 사업은 BTO(민간투자사업·Build Transfer Operate) 방식으로 진행된다. 한화건설 컨소시엄이 직접 시설을 조성한 후 40년 동안 운영할 권리를 갖고, 그 후에는 서울시에 기부채납하는 방식이다(관련기사 서울시, 잠실 스포츠·MICE 복합공간 조성 우선협상대상자에 한화건설 지정).
한화건설은 이번 사업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최광호 한화건설 부회장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될 당시 “잠실 MICE를 서울의 새로운 중심이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미래지향적 복합공간으로 조성해 나가겠다”며 “서울시와 협력해 차질 없는 추진을 통해 국가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화건설은 지난 4월 29일에도 보도자료를 통해 “잠실 민자사업은 이르면 2023년 말 착공된다”며 “총 사업비는 약 2조 1600억 원 규모로 복합시설로는 국내 최대 민간투자사업”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잠실 민자사업에 변수가 발생했다. 허구연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는 최근 오세훈 서울시장을 만나 돔구장 건설을 건의했다. 오세훈 시장은 지난 4월 29일 KBS ‘사사건건’에 출연해 “괜찮은 실내공연장이 없어서 돔구장을 만들면 활용도가 높을 수 있겠다”며 “투자한 만큼 회수할 수 있겠다는 판단으로 논의 중”이라고 전했다.
한화건설 컨소시엄은 지난해 개방형 야구장을 짓겠다고 서울시에 제시했다. 잠실에 돔구장을 짓기 위해서는 한화건설 컨소시엄의 당초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 한다. 돔구장 건설에는 1500억~2000억 원가량의 추가 비용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건설 컨소시엄 입장에서는 부담이 될 수 있는 금액이다.
한화건설 컨소시엄이 돔구장에 부담을 느껴 잠실 민자사업을 포기하기도 쉽지 않다. 한화건설은 그간 잠실 민자사업을 대대적으로 홍보해왔기 때문에 대외적인 이미지 하락을 무시할 수 없다. 만에 하나 생길 수 있는 정치적인 부담도 고려해야 한다.
돔구장의 수익성을 두고는 전망이 엇갈린다. 서울시설관리공단에 따르면 고척스카이돔은 2020년과 2021년에는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대유행) 영향으로 각각 15억 9600만 원과 7억 9800만 원의 적자를 냈지만 그 전인 2016년부터 2019년까지 매년 수십억 원 규모의 흑자를 기록했다. 돔구장은 야구 경기 외에 공연 관련 수익도 상당하다. 2019년 고척스카이돔의 야구 경기 관련 수익은 21억 300만 원이었지만 공연 관련 수익은 그보다 많은 22억 6200만 원이었다.
돔구장이 늘어나는 것도 우려 요인이다. 신세계그룹은 인천 청라국제도시에 돔구장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부산광역시도 돔구장 건설을 논의하고 있다. 비단 돔구장이 아니더라도 대형 공연장은 하나둘 늘어나고 있다. CJ그룹은 경기도 고양시에 대형 공연장 ‘CJ라이브시티 아레나’를 건설 중이고, 카카오도 서울시 도봉구에 ‘서울아레나’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경쟁이 치열해지면 수익성이 예전과 같지 않을 수밖에 없다.
오는 6월 전국동시지방선거도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오세훈 시장이 낙선하면 돔구장 관련 논의도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는 아직 돔구장과 관련해 특별한 입장을 발표하지 않았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오 시장이 당선되더라도 돔구장 건설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으로 전망한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야구 인기가 영원할 것이라는 보장도 없는데 야구팬들을 위해 수천억 원의 공사비를 더 내라고 하면 그게 설득력이 있겠는가”라고 반문하며 “돔구장을 지으면 사용료나 입장료도 상승할 것이고, 돔구장을 이용하는 구단들의 부담도 늘어나는 등 이해관계가 복잡해 이제 와서 계획을 바꾸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한화건설 측은 서울시와 협상을 진행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세부적인 계획이나 입장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있다. 한화건설 관계자는 “서울시와 요구사항을 서로 반영해 최대한 성심성의껏 협의하겠다”고 전했다.
대전 야구장 사업은 사정이 다르다?
대전광역시는 새로운 야구장 ‘베이스볼 드림파크’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대전시는 지난 1월 베이스볼 드림파크 시공사로 계룡건설산업 컨소시엄을 선정했다. 해당 컨소시엄은 계룡건설산업(지분 40%), 한화건설(20%), 금성백조(15%) 등으로 구성돼 있다.
대전시는 한밭종합운동장 주경기장을 철거한 후 이곳에 베이스볼 드림파크를 건설할 계획이다. 한밭종합운동장 주경기장은 현재 축구장과 육상 경기 훈련장으로 사용 중이다. 대전시 계획에 따라 대전 한국철도 축구단은 홈구장을 한밭종합운동장 주경기장에서 대전월드컵경기장 보조경기장으로 이동했다. 또 육상 훈련은 대전 서남부종합스포츠타운이 조성되기 전까지 충남대학교 육상경기장과 대전대학교 육상경기훈련장에서 이뤄질 예정이다. 대전시 관계자는 “현재 전기나 통신 등의 이설 작업을 하고 있고, 본격적인 경기장 철거 관련해서는 행정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정치권의 최근 움직임이 베이스볼 드림파크 사업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이장우 국민의힘 대전시장 후보는 지난 2월 9일 SNS(소셜미디어)를 통해 “새 한밭종합운동장 건립을 위한 대책이 부실하다”며 “한밭종합운동장 실종 대책 마련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전했다. 베이스볼 드림파크 건설 이전에 서남부종합스포츠타운 건설 계획부터 확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전시는 지난 3월 서남부종합스포츠타운 조성 사업이 중앙투자심사를 통과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개발제한구역 해제 등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
잠실 민자사업은 민간이 투자하는 사업이지만 베이스볼 드림파크는 대전시가 발주하는 사업이다. 따라서 자치단체의 결정으로 베이스볼 드림파크 공사가 지연·중단되면 대전시가 그 부담을 감당해야 한다. 잠실 민자사업과 달리 세금이 직접적으로 투입되는 만큼 대전시도 신중하게 접근할 수밖에 없다. 반면 시공사는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하다. 계룡건설산업 관계자는 “현 상황에서 공사가 취소되면 설계비용 등을 돌려받을 수 있다”며 “대전시 사정으로 공사가 중단되면 그 기간 동안 세워놓은 장비나 인력 관련 비용 청구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