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은 적자 줄일 기회지만 코레일처럼 공공부문이 적자 감당 땐 수익 악화, 소비자 부담…한전 “민영화 연결 섣불러”
PPA를 이해하려면 한전의 전력 거래 방식부터 이해해야 한다. 한전은 남동·남부·중부·서부·동서발전·한국수력원자력 등 6개 발전자회사를 포함해 민간 발전사업자들이 운영하는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를 SMP(전기도매가격)로 사들인다. 그리고 SMP로 사들인 전기를 변압을 한 후 송전망을 거쳐 전력 소비자들에게 소매가로 배전하는 게 지금 한전의 전력 거래 방식이다. 당연히 소비자들에게 판매할 때는 여기저기서 생산된 전기가 뒤섞인다.
PPA는 소비자가 특정 발전사업자가 생산한 전기를 따로 구매할 수 있는 방식이다. 원래는 한전이 판매를 독점하지만 지난해 정부가 PPA를 첫 도입하면서 재생에너지 공급사업자에 한해 소비자에게 직접 전기를 공급하도록 허용했다. RE100(기업에서 생산하는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대체) 실천을 요구받는 기업들이 ‘청정에너지’만 구매할 수 있게끔 길을 열어준 것이다. 즉 발전사업자의 수익성보다는 석탄화력발전 비중을 낮추고 재생에너지 비중을 확대해 탄소중립을 달성하려 만들어진 제도다.
인수위에서는 이 PPA를 확대하겠다고 한 것이다. 적극적으로 민간사업자들에게 혜택을 줄 경우 다양한 신생벤처와 스타트업 등이 등장해 전력판매를 중개하는 시장이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이 인수위의 시각이다. 이와 관련, 박주헌 인수위 경제2분과 전문위원(동덕여대 경제학과 교수)은 “앞으로도 세계적인 추세에 따라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과 기업들의 RE100 수요가 늘어날 텐데 지금의 PPA는 너무 초보적인 수준이라 거래실적이 낮은 게 문제”라며 “PPA를 확대 실시해 한전의 독점 판매 구조가 깨지면 재생에너지가 갖고 있는 변동성을 완화해주는 다양한 에너지 서비스 사업자가 많이 등장할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우선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에 국한된 PPA가 확대되면 적자 사업 중인 한전에도 이익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재생에너지 단가가 워낙 높기 때문이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지난해 발간한 ‘발전원가 기준 에너지 효율성 분석’ 자료에 따르면 2020년 신·재생에너지 발전원가는 kWh당 264.6원으로 나타났다. 발전단가가 54원 수준인 원전, 83.3원인 석탄발전, 126원인 가스복합발전보다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한전은 지난해 6조 원 가까이 적자를 냈다. 올해 적자폭은 최대 20조 원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상태다. 소매가격이 묶여있는 한전 입장에서는 단가가 높은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가 기업과 직거래를 하게 된다면 환영할 만하다.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비율(RPS)을 맞추기 위해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에게 구매해야 하는 부담도 한결 줄어들 수 있다. 한전 측은 지난해 RPS 비율이 7%에서 9%로 상향된 것을 적자의 주요 원인으로 꼽은 바 있다.
조영탁 한밭대 경제학과 교수는 “원가도 못 챙기는 구매할당량이 빠져나간다면 한전 입장에서는 적자를 줄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성수 한국공학대 에너지전기공학과 교수 또한 “기업들이 직접 PPA로 구매하게 되면 한전도 매출이 낮아지니까 마냥 좋진 않겠지만 PPA로 인해 수익이 나빠질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굉장히 낮아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 입장에서는 큰 메리트가 없는 시장이다. 현재 도매가격인 SMP가 kWh당 200원 언저리를 웃돌고 있어 kWh당 60~80원 수준인 산업용 전기요금(소매가)보다 훨씬 높다. 발전사업자 입장에서는 소매가격으로 기업에 전기를 직접 판매하는 것보다는 도매가로 한전에 판매하는 것이 훨씬 이득인 데다가 인수위 방침인 PPA 확대로 기업과 직거래할 경우 송전망을 독점 중인 한전에 상당한 망 사용료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6월 PPA를 도입했는데도 올해 들어서야 단 2건의 계약만 겨우 성사된 이유다.
조영탁 교수는 “지금은 아무도 들어오려 하지 않을 것”이라며 “그나마 지금의 SMP 가격이 우크라이나 사태 때문에 워낙 올라갔다는 점을 염두에 둔 발전사업자가 가격 하락을 염두에 두고 특정 기업과 일정 가격으로 장기적인 거래관계를 구축하겠다고 한다면 시장에 진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PPA 확대가 한전에 악재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차기 정부가 PPA계약을 맺을 수 있는 발전사업자를 재생에너지 사업자에 국한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지금의 PPA는 재생에너지에 국한돼 있지만 다른 발전원까지 PPA를 확대하면 결국 저렴한 발전원으로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사와 대규모 전력 수용가와의 직거래가 성사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전이 저렴한 발전원과 우량 고객을 동시에 잃게 될 경우 비용은 증가하고 수익은 악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PPA 대상이 되는 발전사업자 범위를 확대해 전력 판매 시장을 실질적으로 민영화할 경우 민간 부문이 수익이 나는 부분을 가져가고 공공부문이 적자를 감당하게 될 수 있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의 사례도 거론된다. 2013년 박근혜 정부의 철도 민영화 정책에 따라 운행을 시작한 SRT는 코레일의 ‘알짜’ 노선을 가져가 마진을 남겼다. 반면 무궁화호, 비둘기호 등을 통해 산간벽지의 통행을 담보하던 코레일은 KTX 운영에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면서 적자를 보기 시작했다. 적자가 커지자 결국 코레일은 지난해 수요가 적은 노선 운행을 대폭 축소됐다.
유승훈 교수는 “민간이 개입해 수익을 챙겨가기 시작하면 결국 경쟁력에서 밀린 공공의 공적 역할 축소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며 “따라서 PPA 확대 등 전력판매시장의 개방으로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하게 초래될 경우 일반 국민이나 소상공인 등 상대적으로 취약한 계층의 전력 사용 실태가 현재보다 나빠질 수 있다는 부분이 제일 우려되는 지점”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한전 관계자는 “일각에서는 민영화 얘기가 나오고 있지만 내부에서는 PPA 확대와 민영화를 연결하는 게 섣부르다고 보고 있다”며 “다만 민간의 참여가 대폭 확대되고 대규모 발전사업자가 판매시장에 진입하면 한전의 수익이 악화될 우려는 있다”고 말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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