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집 승리, 경제 위기, 여소야대 등 김대중 정부 때와 유사…‘공동정부 균열→정계개편’ 이어질 가능성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측이 취임을 앞두고 ‘DJ 공부 삼매경’에 빠졌다. 윤석열 정부를 둘러싼 환경이 1998년 출범한 김대중 정부 상황과 꼭 빼닮았다고 보고 벤치마킹에 나선 것이다.
특히 정무 파트에선 DJP(김대중·김종필)의 ‘전략적 동거’ 과정을 면밀히 분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안(윤석열·안철수) 공동정부 이후 정계개편까지 염두에 둔 사전포석이란 분석이 나온다. DJP 연합은 3년 만에 파국을 맞았다. 윤석열발 정계개편 시한도 2024년 제22대 국회의원 총선거(총선) 전후가 될 전망이다.
보수진영 인사들이 꼽은 윤석열 정부와 DJ 정부의 공통점은 △반집 싸움이었던 대선 결과 △단일화를 매개로 한 공동정부 구성 △정부 출범 초 여소야대 정국 △경제 위기 등 크게 네 가지다. 윤 당선인 측 한 관계자는 “윤석열 정부는 보수, DJ 정부는 진보라는 것만 빼면 많이 비슷하다”고 했다.
실제 그랬다. 20대 대선 전까지 헌정사상 역대 최소 득표 차는 DJ(40.3%)와 이회창(38.7%, 한나라당 후보)이 맞붙었던 15대 대선이었다. 양자의 격차는 1.6%포인트(p)였다. 지난 3·9 대선에서 맞붙은 윤 당선인(48.6%)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47.8%)의 격차는 15대 대선 1·2위 격차 절반 수준인 0.73%p에 불과했다. 국민의힘 한 의원은 “압승을 예상했는데 예상보다 적은 표차에 당혹했었다”며 “이겼지만 권력의 전횡은 안 된다는 민심의 준엄한 명령”이라고 했다.
윤안 단일화 효과를 둘러싼 논란에도 불구하고 윤 당선인 측이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구성부터 ‘공동정부 구성’을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윤 당선인 측 다른 관계자는 대선 직후 ‘안철수 국무총리론’이 부상하자, “호남에선 되레 단일화 역풍을 맞아서 최종 득표율이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다”며 “제 역할을 못 한 러닝메이트에게 국무총리를 주는 게 맞는지 의견이 분분하다”고 말했었다. 안철수 인수위원장 역시 국무총리를 맡는 것보단 측근들이 내각에 참여하는 게 낫다는 주변의 조언을 듣고 행정부 2인자 자리를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 1기 내각에서 안 위원장이 추천했던 인사들은 모두 배제됐다. 대통령실에 과학교육수석을 신설하는 안도 무산됐다. ‘공동정부 정신은 유효하다’는 양측의 입장에도 높은 수준의 연합 정부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건 이런 까닭에서다.
여소야대 정국도 판박이다. DJ는 1996년 총선(15대)을 앞두고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했지만, 고작 79석을 얻는 데 그쳤다. 퇴장 수순이 예상됐던 JP의 자유민주연합은 50석을 확보하면서 돌풍을 일으켰다. 당시 여당이었던 신한국당은 139석으로 제1당으로 우뚝 섰다. YS(김영삼) 정부 4년 차 때 치른 선거였지만, 개혁공천을 단행하면서 정국 위기를 돌파했다. ‘대쪽 판사’인 이회창을 선거대책위 의장으로 영입한 것이나, 민중당 소속의 이재오·김문수, 모래시계 검사 홍준표, 정의화·맹형규·김기춘을 영입한 것도 이때다.
1997년 대선에서 승리한 DJP 연합의 의석수는 129석(새정치국민회의 79석+자유민주연합 50석)으로, 신한국당보다 10석이 적었다. 통합민주당의 의석수를 합치면 표면적으로는 수적 우위를 점했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롯해 이기택·이부영(이상 전 의원)의 이른바 꼬마 민주당은 사실상 반DJ 성향을 가진 정당이었다. 실질적으로는 여소야대 정국인 셈이다.
현 정부 당청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을 임기 막판 밀어붙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여소야대를 맞는 윤석열 정부도 험로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여의도 정치권 한 관계자는 “168석의 민주당은 헌정사상 유례없는 공룡 정당이 아니냐”라며 “민주당이 반대하는 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게 윤석열 정부의 최대 아킬레스건”이라고 했다.
윤석열발 정계개편론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 것도 이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정계개편 시점은 22대 총선(2024년 4월 10일) 전후가 유력하다. 이때는 공동정부가 출범한 지 2년을 갓 지나는 시점이다. 경우에 따라 양당(국민의힘과 민주당) 체제인 한국 정치 지형이 다당제로 분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보수 재편 촉매제는 ‘총선 공천’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인수위 기간, 공동정부 실험은 60일간의 일촉즉발이었다. 국무총리를 비롯한 내각 조각 명단에 안철수계가 전면 배제되자 양측의 긴장도는 최고조에 달했다. 앞서 여의도 안팎에선 최소 4∼5곳은 윤 당선인 측이 양보할 것이란 관측이 나왔지만, 결과는 ‘안철수계 패싱’이었다. 이 과정에서 안철수계는 ‘보이콧’도 불사하며 비공개회의를 열었지만 일부 측근들이 “인수위까지는 마무리하자”고 건의, 안 위원장이 파국을 선택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총선 공천은 내각 조각과는 달리 양측이 결별을 감수할 ‘최대 화약고’다. 2년 후 총선 공천 과정에서 윤핵관들이 ‘자리 독식’을 한다는 것은 일종의 ‘안철수계 죽이기’를 위한 선전포고이기 때문이다. 민주당 한 인사는 공동정부 운명에 대해 “순조롭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 이유로 윤안 단일화가 DJP 연합 대비 ‘구속력이 약한 공동정부’라는 점을 꼽았다. 두 정부 모두 단일화를 통한 후보 선출이었지만 1997년 11월 3일 합의된 DJP 연합은 1년간 치열한 물밑 협상 끝에 얻어낸 결과물이었다. DJP는 당시 책임총리로 JP 임명, 1999년까지 의원내각제 완료, 각료 균등 배분 등을 약속했다.
동교동계 한 인사는 “DJP 연합은 합의문을 통한 약속인 만큼 구속력이 강했다”고 말했다. 초유의 외환위기 극복 과정에서 ‘구조조정의 달인’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등을 추천한 것도 JP였다. 당시 인사들은 “경제 수장 인선은 JP가 진두지휘했다”고 했다. 이 전 부총리는 임명 직후 대기업 구조조정을 비롯해 금융·노동·공동 등 4대 분야의 개혁을 단행했다. 이 과정에서 “헐값에 국내 대기업을 외국계 기업에 팔아넘겼다”는 비판도 나왔지만, DJ 정부 출범 3년 차인 2001년 8월 국제통화기금(IMF) 차입금을 전액 상환했다. 당시 정부 인사들이 예상한 기간보다 3년여를 앞당긴 것이다.
문제는 구속력이 강했던 DJP연합도 오래가지 못했다는 점이다. 정부 출범 1년 5개월 만인 1999년 7월, DJ는 의원내각제를 포기했다. 표면적으로는 여소야대 정국에서 개헌 정족수(재적 의원 3분의 2 찬성)를 채울 수 없다는 이유였다. 앞서 DJ 측은 정부 출범 직후부터 “의원내각제로 개헌은 어렵다”는 시그널을 지속적으로 내보냈다. 진보의 DJ와 보수의 JP는 대북 정책에서도 충돌했다. 급기야 JP의 자민련이 2000년 총선(16대)에서 고작 17석을 얻는 데 그치자 양측의 갈등은 한층 노골화됐다. 이듬해 9월 통일부 장관(임동원) 해임안에 자민련 측이 동조, DJP 연합은 2001년 붕괴됐다.
윤안 공동정부는 문서로 합의문을 쓴 DJP 연합과는 달리, 구두 합의에 불과하다. 윤 당선인은 단일화 직전 안 위원장에게 “종이 쪼가리 말고 나를 믿어 달라”고 했다. 1년간 장기간 협상을 한 것도 아니다. 윤안 단일화 성사는 안 위원장이 여론조사를 통한 단일화 방식을 제안한 지 18일 만에 성사된 ‘급조물’에 가깝다. 향후 윤석열 정부 2기 내각 때도 총선 공천권도 담보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실세 총리였던 JP는 연합정부 파기 직전 “대통령에 당선되면 후보 때 한 얘기는 다 무효”라고 측근들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관전 포인트는 ‘인위적 정계개편이냐, 질서 있는 재편이냐’다. 보수진영 복수 인사들은 후자라고 입을 모았다. 윤 당선인 측근인 김한길 인수위 국민통합위원장도 지난 4월 7일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정계개편은 누가 인위적으로 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라며 “정계개편을 제가 시도하거나 계획하고 있는 것이 전혀 없다”고 했다. 인위적 정계개편은 없다고 단언할 수 있느냐고 묻자, “네. 없다”고 잘라 말했다. 다만 “무르익은 상태가 되면 여러 가지 변화의 가능성이 열리는 것”이라고 했다.
‘무르익은 상태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몇 가지 시나리오를 가정할 수 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이 압승할 경우 포스트 정국에서 민주당 일부 인사가 이탈, 국민의힘에 합류할 수도 있다. 국민의힘을 목적지로 택하지 않더라도 신당 창당을 통한 다당제 체제로 재편을 노리는 시나리오도 가능하다. DJP 연합처럼 윤-안 측이 초중반 충돌할 경우 보수 재편을 중심으로 한 정계개편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여의도 한 분석가는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의 행보에 답이 있다”고 했다. 대통령 비서실장 1순위였던 장 의원은 여의도행을 택했는데, 부산·울산·경남(PK) 구심점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일각에선 “문재인 정부의 실세가 부산 친노였다면, 윤석열 정부에선 ‘장 의원을 중심으로 한 PK 세력’이 될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 밖에도 윤 당선인 측근인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강원’, 정진석 의원은 ‘충청’,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는 ‘제주’ 등에서 각각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다. 한 민주당 인사도 “윤핵관들의 지역 소맹주 등장 자체가 보수 정계개편을 촉발할 수 있다”고 했다.
윤지상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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