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비대면 한시 허용 뒤 ‘살빠지는 주사’ 등 손쉽게 처방…인수위 110대 국정과제 포함돼 귀추
지난 3~4일 비대면 진료 플랫폼(애플리케이션)을 다운 설치해 직접 진료 및 처방을 시도해봤다. 어플을 설치한 후 간단한 회원가입 절차를 거쳐 실명 확인, 진료비 청구를 위한 신용카드 등록 등을 마치면 진료받을 준비가 끝난다.
어플 메인 화면에는 진료과별로 아이콘이 생성돼 있다. 탈모, 다이어트, 사후피임이 가장 먼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여드름·피부염, 코로나진료, 코로나후유증, 소아청소년과, 응급, 방광염·질염, 감기, 복통, 남성질환 등의 순으로 진료 과목이 나열돼 있다. ‘다이어트’ 아이콘을 누르니 현재 진료가 가능한 병원 리스트가 뜬다. 의사 약력, 진료시간, 공지사항, 진료 후기 등을 둘러보고 의사와 병원을 골랐다.
비대면 진료 요청을 누르고 나니 5분 후 의사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병원과 의사 이름 등을 고지한 후 전화로 진료가 이뤄졌다. 키와 몸무게, 과거에도 다이어트약을 복용한 적이 있는지, 현재 복용하는 약이 있는지 등을 확인하더니 의사는 “BMI(체질량)지수가 정상 범위라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수 있다. 약을 처방해주긴 할 텐데 가슴떨림, 손떨림, 구토, 감정기복 등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주사 형태로 처방되는 ‘삭센다’도 초진인데 처방 가능한지 묻자 “안전성과 효과는 삭센다가 (먹는 약보다) 훨씬 좋다”며 오히려 권했다. 직접 주사를 놓는 것이 어렵지 않냐 물었더니 “쉽게 할 수 있다. 아플까봐 주저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시작해보면 훨씬 좋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화가 걸려와 비대면 진료 후 처방전을 내주겠다는 얘길 듣고 전화를 끊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4분이었다.
다른 비대면 진료 어플을 통해서도 다이어트 목적의 진료·처방을 시도해봤다. 식욕억제제 등의 먹는 약과 주사제인 ‘삭센다’ 중 선택하라고 의사는 안내했다. 부작용에 대해선 “먹는 약은 속이 쓰리고 가슴 떨림 등이 있을 수 있다”고 간단히 안내했다.
비대면 진료는 현행법상 불법이다. 현행 의료법 제33조 제1항을 살펴보면 의료인은 의료기관을 개설하지 않고는 의료업을 할 수 없고 의료기관 내에서 의료업을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설령 원격 의료를 허용하더라도 제34조 1항에 따라 의료진 간 협진에만 한정하고 있어 일반 환자와 의료인 간 원격 의료는 금지돼 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는 2020년 12월 감염병 국가위기 경보 수준이 ‘심각’ 단계에는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기로 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국가 감염병 경보 수준은 2020년 2월부터 현재까지 ‘심각’ 단계를 유지하고 있다. 감염병예방법 제49조의 3이 신설되면서 감염의 위험에서 보호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유선, 무선, 화상통신, 컴퓨터 등을 활용해 의료기관 외부에 있는 환자에게 진료 및 처방이 가능해진 것이다.
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2년여간 비대면 진료 누적 건수는 약 440만 건이다. 이는 코로나19 재택치료자의 이용 건수를 제외한 수치로 코로나19가 아닌 일반 질환의 비대면 진료 수요가 그만큼 많았다는 얘기다. 이들 중에는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자가격리 중 기저질환 약 처방을 위해 비대면 진료를 이용한 경우가 물론 많았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지난 1월 공개한 ‘한시적 비대면 진료 시행에 따른 효과 평가 연구’ 자료에 따르면 비대면 진료로 가장 많이 처방된 약은 혈압강하제였다. 한시적 비대면 진료 허용 정책 시행 후 전화상담·처방 이용 환자 96만 6918명 가운데 63.4%인 61만 3402명이 약을 처방 받았고, 혈압강하제 처방은 21만 8291명으로 35.6%의 비중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동맥경화용제 33.6%, 소화성궤양용제가 31.3%로 뒤를 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서 말한 사례처럼 다이어트, 사후피임약, 탈모약 등과 관련한 진료와 처방을 전면에 내놓고 비대면 진료 플랫폼들이 홍보하고 있는 등 취지와 달리 활용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최근 비대면 진료 어플을 통해 다이어트 약을 처방 받아 복용 중이라는 40대 여성 A 씨는 “다이어트 약은 왠지 모르게 처방 받으러 가기 쑥스럽고 좀 민망하기도 해서 선뜻 병원에 가기 번거로웠는데, 얼굴을 보지 않고 전화로만 진료 보고 처방 받을 수 있다고 해서 솔깃했다”며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훨씬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흐름에 대해 전문가들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박수현 대한의사협회(의협) 대변인은 “비만 진료를 비대면으로 할 경우 전화 통화로 키와 몸무게 등만 듣고 가늠해 처방이 이뤄지는데 정확한 진료가 이뤄지기 어렵다”며 “마른 환자가 거짓으로 처방을 받아 불법적으로 되팔 수도 있는 거고 정신과적 강박 등의 문제로 처방을 받아 거식증 등으로 사망할 수도 있는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비단 비만 약제뿐 아니라 항생제 같은 전문의약품 남용도 우려가 된다”고 덧붙였다. 박 대변인은 또 “현재 같은 흐름으로 비대면 진료가 이뤄진다면 진료라기보다 ‘의료쇼핑’이 될 수 있다”며 “이 병원, 저 병원 선택해서 약을 먹다보면 진료의 연속성도 해칠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비대면 진료는 코로나19로 한시적 허용 시기를 거치면서 법제화까지 논의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3일 새 정부 출범을 일 주일 앞두고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새 정부에서 중점적으로 추진할 110대 국정과제를 발표했는데, 이 중 예방적 건강관리의 일환으로 비대면 진료를 제도화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환자와 의료진 간 접촉·상시적 관리를 더욱 용이하게 함으로써 질병을 예방하겠다는 취지다.
국민들도 비대면 진료 상시 허용에 대한 찬성 여론이 반대 의견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지난 1월 13~24일 비대면 진료 도입에 대한 대국민 설문조사를 진행한 내용을 살펴보면 조사 대상 1756명 중 1337명인 76.13%가 비대면 진료 도입에 찬성했다.
지난 3월 31일 열린 한국원격의료학회 심포지엄에서 백남종 분당서울대병원 원장은 “원격의료는 환자 입장에서 높은 만족도에도 불구하고 의사 입장에선 아직 오진과 의료사고 등 법적 리스크를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이미 대학병원과 개원가에서도 원격의료에 대한 수요가 높은 상황이다. 그렇다면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면서 “산업적 접근보단 환자 편의성과 미래의학으로 접근하면서 영리화 우려를 해소하고 취약계층부터, 만성질환 모니터링, 단순처방, 정신건강, 공공의료 순으로 쉬운 것부터 시작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제시했다.
본격적인 원격의료 도입을 위한 법률적 개선도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같은 자리에서 비대면 진료 플랫폼 ‘닥터나우’의 장지호 대표는 “본인 확인과 개인정보 보호 등을 위해 정보보안 솔루션을 기업 입장에서 잘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법률적 뒷받침이 없다면 원만한 원격의료 도입이 어렵다”며 “의료법과 약사법 개정을 통해 의사의 책임을 경감시켜주는 대안이 필요하다. 필요에 따라 비대면 진료가 불가능하다면 진료를 거부하고 대면진료를 권유할 수 있도록 하는 법률적 토대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수현 의협 대변인은 “비대면 진료는 보조적인 수단으로 사용해야 한다. 만성질환자 경우 부득이하게 병원을 못 가는 경우는 비대면으로 처방이 가능하게 하는 방식 등이 어떨까 싶다”며 “제도화가 되기 전에 어느 분야에 어떻게 확대해야 하는지 현장과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정아 기자 ja.kim@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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