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디네영화제는 인구 10만 내외의 이탈리아 동북부 작은 도시 우디네에서 열린다. 이 영화제에선 한국, 일본, 중국, 대만, 홍콩,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영화를 소개한다. 유서 깊은 영화제다. 이런 영화제에 초청받은 것 자체도 영광인데 더욱 감사하게도 제작한 작품이 폐막작으로 선정돼 떨리는 마음으로 이탈리아 관객을 만나러 가게 됐다. 감독과 함께.
다 아는 것처럼 전 세계 영화계는 2020년 시작된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대유행)으로 인해 역사상 가장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우리나라만 해도 2020년과 2021년 영화관은 80% 가까운 관객 감소를 기록했다. 많은 영화가 개봉을 미루고 새로운 신작 영화 제작에도 들어갈 수 없는 고난의 시간을 보냈다.
이제 펜데믹이 엔데믹(Endemic·풍토병)으로 바뀌고 있다. 그러면서 많은 영화인과 극장 관계자가 영화 산업 부활을 기대하고 있다. 많은 관객이 가족, 친구, 연인과 함께 극장을 찾기를 고대하고 있다. 지난 4월의 마지막 날 나는 ‘재심’ 영화감독과 함께 이탈리아 우디네영화제 폐막작이 상영되는 ‘누오보 극장(TEATRO NUOVO)’을 찾았다.
누오보 극장은 4층 규모로 1200석을 수용하는 거대한 상영관이다. 영화는 물론 각종 공연도 가능한 복합극장이었다. 현재 한국에서의 상업영화관은 600석 정도가 가장 큰 극장이기에 1200석의 극장은 어마어마한 규모로 느껴졌다. 게다가 1200석 좌석이 가득 찬 극장의 위용, 극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이 보여준 열기는 더욱 압도적이었다. 오랜만에 극장에서 관객을 만나는 나와 감독에겐 잊을 수 없는 감동과 환희의 순간이었다.
상영이 끝나고 핀조명이 객석에서 같이 영화를 관람한 나와 감독에게 비춰졌다. 관객은 5분이 넘는 시간 동안 우리에게 환호와 박수갈채를 안겨줬다. 눈물이 났다. 관객이 우리 영화를 환호해 주어서도 그랬겠지만, 무엇보다도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같이 어울려 영화를 보고 응원하고 격려하는 이 순간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지난 2년간 수많은 영화인은 절망과 고통 속에서 흘러가는 시간을 바라만 봐야 했다. 코로나19로 영화계는 사상초유의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국내 OTT는 물론 글로벌 OTT를 통해 한국 콘텐츠들이 세계 시청자들을 만났다. 그 사이 한국 콘텐츠 위상과 매력이 세계 각국 시청자들에게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 그간 영화만 만들던 영화인들과 스태프들이 현실의 어려움을 타파하고자, 혹은 새로운 기회를 얻으려 드라마 제작을 하고 관련 분야에서 일했다.
그래도 영화인들은 자신들의 작품이 극장을 통해 관객을 만나게 되기를 갈망하고 있었다. 유럽의 작은 도시 우디네에서 수많은 관객과 작품을 함께 보게 되는 기회가 있을 거라고 생각도 못했다. 그런데 내가 제작한 영화가 최초의 관객을 이탈리아 우디네에서 만나게 되니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돌이켜보니 눈물이 흘릴 이유가 많았다.
내가 처음으로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영화를 본 것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초등학생 때 아버지는 나와 형제들을 데리고 ‘메리포핀스’라는 영화를 보여주셨다. 어린 나에게 거대한 스크린에서 펼쳐지는 노래와 춤 그리고 연기자들의 모습은 완전한 신세계였다. 쩌렁쩌렁 울리는 사운드와 스크린에서 펼쳐지는 모습에 같이 박수 보내고 열광하는 관객의 모습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영화를 꿈의 공장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가족의 손을 잡고 친구와 어깨동무를 하고 연인과 추억을 나누면서 감정을 공유하고 감동을 나누고 친밀함을 확인하는 극장은 우리 인생에 결코 지울 수 없으며, 대체될 수 없는 소중한 공간이고 지켜져야 할 장소라고 생각한다.
이제 2년 반이 넘는 코로나19 팬데믹이 진정되는 것 같다. 아니 꼭 진정되기를 기도하고 또 기도한다. 그간 많은 사람들이 일상을 잃었고 고통을 겪었고 지금도 어려움에 처해 있다. 난 그런 사람들이 일상에 지치고 현실이 어렵고 미래가 암울해 하루하루가 고통 속에 있을 때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과 극장을 찾아서 위로받고 감동을 공유하기를 기대한다.
내가 영화를 만드는 이유는 수만 가지일 것이다. 그중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하나를 말하라 한다면 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여러분 너무나 수고가 많아요. 두 시간 동안 저희가 만든 영화를 보면서 위로를 받으시고 시름을 잊고 잠시나마 행복해지셨으면 해요”라고.
자, 이제 우리 일상으로 돌아가서 모두들 열심히 살며 가끔은 극장에서 휴식 시간을 갖게 되길 바란다. 극장은 계속되고 영화는 영원할 것이다.
※외부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원동연 영화제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