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투표법 개정 전 불가, 국민투표 요건 의문, 신임투표 성격 정치적 부담…일각 ‘지방선거에 이용’ 분석
장제원 대통령 당선인 비서실장은 4월 27일 통의동 인수위 사무실에서 “국회에서 일방적으로 의회 독재를 한다면 당연히 국민들께 직접 물어봐야 되는 것 아닌가”라며 “당선인 비서실은 ‘검수완박’과 관련해 국민투표하는 안을 윤 당선인에게 보고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윤 당선인 취임 뒤 6·1 지방선거에서 함께 국민투표를 부치면 된다는 내용이었다.
국민투표 실현 가능성을 놓고 여러 해석이 잇따랐다. 국민투표를 관할하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언론 등을 통해 “국민투표는 불가능하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를 두고 장제원 비서실장은 “정식으로 선관위에 안건 상정해 결론이 난 것도 아닌데, 사무처 직원이 그렇게 얘기하는 건 월권”이라며 “선관위는 합의제 기관이지 않나. 안건 상정해서 합의를 거쳤나 따져봐야 할 것”이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선관위가 불가능하다고 한 근거는 현행 국민투표법 14조 1항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이다. 이 조항에 따르면 국민투표를 한다고 공고한 시점에 국내 관할 구역 안에 주민등록을 해놓았거나 재외국민이더라도 국내 거소 신고가 돼있는 투표권자를 조사해 투표인 명부를 작성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국내 거소를 신고하지 않은 재외국인들은 국민투표권 행사가 제한돼왔다.
이 조항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2014년 재외국민의 투표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국민투표는 국민이 직접 국가의 정치에 참여하는 절차이므로 대한민국 국민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 반드시 투표권이 인정돼야 한다”며 “재외선거인 역시 국민이므로 이들의 의사는 국민투표에 반영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헌재는 2015년 말을 법 개정 시한으로 정했다. 그런데 국회가 이때까지 법을 개정하지 못해 2016년 1월 1일부로 해당 조항은 효력을 상실해 사문화됐다. 따라서 현재 상황에서는 국민투표 진행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게 선관위 입장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개헌을 추진하려다 이 조항에 발목이 잡힌 바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3월 ‘대통령 4년 1차 연임제, 수도 조항 명시, 지방분권 지향, 사법제도 개선’ 등을 골자로 한 정부개헌안을 공식 발의했다. 당시에도 6·13 지방선거와 개헌 동시 투표를 방안으로 내세웠다.
이를 위해 문재인 정부는 국회에 국민투표법의 조속한 개정을 촉구했다. 하지만 당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이 ‘드루킹 사건’에 대한 특별검사 도입을 국회 정상화 조건으로 내걸면서 4월 임시국회 파행이 길어졌고, 이에 따라 국민투표법 개정안 처리는 끝내 불발됐다.
이후 문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국민투표법이 원래 기간 안에 결정되지 않아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의 동시 실시가 무산되고 말았다”며 “이로써 이번 지방선거 때 개헌을 하겠다고 국민께 다짐했던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됐고, 국민께 매우 유감스럽고 안타깝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이후로도 국회는 ‘위헌’ 결정을 받은 조항에 대한 국민투표법 개정 입법을 하지 않고 사실상 방치했다. 국민의힘에서는 뒤늦게 국민투표법 개정안을 마련해 국회에 발의할 계획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민주당이 다수 의석을 점한 상황에서 개정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낮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이제 정치권은 지방선거 정국으로 전환될 것”이라며 “개정안을 처리할 여력이 없을 거라고 본다”고 했다.
이를 의식한 듯 윤 당선인 측에서도 민주당을 압박하고 나섰다. 장제원 비서실장은 앞서 “투표인 명부 문제만 정리하면 (국민투표법) 입법이 어려운 건 아니지 않느냐”며 “민주당이 통과시켜주지 않으면 국민투표가 두려운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의 협조로 개정안이 본회의에서 처리된다고 해도 6·1 지방선거와 함께 국민투표를 실시하기에는 물리적 시간이 불가능에 가깝다. 국민투표 투표인 명부는 공직선거법상 대선이나 비례대표 의원 선거 절차에 준해서 작성돼야 한다. 이를 따르자면 ‘재외국민등록(선거일 전 60일)→투표인 명부 작성(선거일 전 49일부터 10일간)→명부 열람·이의신청(선거일 전 39일부터 5일간)→명부확정(선거일 전 30일)’ 과정을 거쳐야 한다.
국민의힘이 개정안에서 이러한 투표인 명부 작성기간을 줄이더라도, 투표일 및 투표안 공고는 국민투표법에 따라 투표일 18일 전에 마쳐야 한다. 지방선거에 맞추려면 윤석열 정부 취임 닷새 만인 5월 14일이 마지노선이다. 또한 국민투표는 국무회의 심의도 거쳐야 하는데,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 인준 및 장관 후보자들의 임명이 난항을 겪고 있어 제대로 개의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그럼에도 윤 당선인 측이 국민투표를 주장한 것은 검수완박 문제를 지방선거까지 의제로 끌고 가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분석이다. 윤호중 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도 지난 4월 29일 비대위 회의에서 “(국민투표 추진이) 인사청문회 정국을 앞두고 인사 폭망에 대한 국민 분노를 돌리고, 지방선거에서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술책인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검수완박’ 법안이 국민투표에 올릴 사안인지에 대한 의문점도 제기된다. 헌법 제72조에 따르면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는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 안위에 관한 중요 정책을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 그런데 ‘검수완박’이 국가 안위에 관한 ‘기타’ 중요 정책에 해당하느냐는 지적이다.
민주당에서는 국민투표 제안에 “국회 입법권을 무시하는 처사” “국민들을 혹세무민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민주당 원내전략부대표를 맡고 있는 고민정 의원은 4월 27일 자신의 SNS(소셜미디어)에 “(국민투표를) 법도 무시하고 막무가내로 밀어붙이겠다면 NSC(국가안전보장회의)를 비롯한 각종 1급 보안문서들이 있어 국가 안위와 직접 연관되어 있는 청와대 이전부터 국민투표에 붙여줄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검수완박’을 두고 국민투표를 실시한다고 했을 때, 윤석열 당선인과 국민의힘에 실익이 있을지도 불투명하다. 기대와 다른 결과가 나오면 윤석열 정부 취임 초반 치명상을 입을 수도 있기 때문. 법조계 한 관계자의 설명이다.
“현행법상 국민투표에는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신임은 포함되지 않는다. 하지만 역대 국민투표를 보면 개헌 및 대통령에 대한 재신임을 묻는 정치적 의미를 가졌다. 이번 ‘검수완박’ 역시 마찬가지다. 국회 본회의 통과 전에 국민투표가 이뤄졌다면, 이를 동력으로 입법을 저지하고 여야 재논의 등이 가능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미 국무회의에서 공표까지 된 마당에, 국민에게 찬반을 묻는 것은 사실상 신임투표가 돼버린다. 민주당 일부에서 검수완박 국민투표를 하려면 대통령직을 걸라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윤 당선인 입장에서는 찬반이 팽팽히 갈리는 상황에서 국민투표를 강행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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