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일 없으면 일요일 오후 몇 달 동안을 나는 한 무대와 그 무대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을 바라보며 지냈다. 이름 하여 청춘합창단! 나이 든 청춘들이 노래 두 곡 합창하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그것은 어쩌면 사소하고도 시시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홀린 듯이 김태원과 그 합창단에 몰입했고 문득문득 미소를 짓고 있었다. 거기서 나는 “위대는 평범이외다”라고 했던 어떤 작가의 심정을, 평범함 속에 빛나는 성숙한 삶의 태도를 배우고 있었던 것이다.
오디션 과정부터 눈길을 끌었다. 기꺼이 노래하기 위해 모인 합창단인데, 노래실력은 뒷전이고 오히려 함께 꿈을 꿀 수 있는가가 심사기준인 듯했다. 차갑고 공정한 심사라기보다는 따뜻하고도 아름다운 인연을 찾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신선했다.
평균나이 63세, 그 나이에 마음을 열고 보면 자신만의 허물이라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자신만의 독특한 삶의 무늬였음을 알게 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그런지 “모든 순간에 이유가 있었으니”라는 노랫말에 힘이 실리고, “세월아, 가려무나, 아름답게” 라는 노랫말은 바람이 전하는 말 같다.
“다가오라, 지나온 시간처럼” 피날레가 여운이 길다. 그 여운을 느끼며 내가 내게 묻는다. ‘너는 그렇게 고백할 수 있니?’ 아직, 아니다. 그렇지만 알 것도 같다. 그렇게 고백할 수 있는 자는 다가올 시간도 평온한 사랑의 시선으로 맞이할 수 있는 생의 고수임을.
지휘자 김태원은 삶, 사람, 사랑, 이 세 단어가 만나면 노래가 되고 의미가 되는 것을 아는 사람 같다. 그는 84세의 청춘(?) 노강진 할머니를 내세워 피날레를 장식케 했다. 기술로 전해지는 노래보다 생으로 전해지는 노래가 훨씬 감동적인 노래임을 그보다 아름답게 전할 수 있을까.
이제 청춘합창단의 합창은 끝났다. 동시에 그들의 아름답고 화려했던 여름도 끝이 났다. 목청껏 노래하면서 그들은 세월에 쓸려 잊고 있었던 꿈을 만나고 열정을 만났을 것이다. 열정을 만나 열정을 쏟고 꿈을 만나 꿈을 꾸면서 다시 한 번 반짝거리게 된 자신의 눈빛을 사랑하게 되지 않았을까.
마지막이라는 사실이 섭섭하면서도 함께했던 날들이 기쁘고 감사하다는 단원들, 마음을 다해 노래를 불렀던 그들은 마음을 다해 사는 방법을 배우지 않았을까. 열정의 시간을 거쳐 온 그들은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었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건 나이도 병마도 은퇴도 가족도 아니었음을. 나이 뒤에 숨어, 체면 뒤에 숨어, 병마 뒤에 숨어, 무기력증 뒤에 숨어 화석처럼 굳어진 마음이었음을.
지나놓고 보면 꿈과 다를 바 없는 화려한 날들이 있다. 우리는 그런 날들을 통해 생이란 어쩌면 한 여름 밤의 꿈과 같은 한 순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믿음을 갖게 되는 것 같다. 그 순간들이 없었던들 우리가 그리움을 알게 되었을까. 그 그리움이야말로 생명이 있어 설레는 모든 존재를 축복하게 되는 에너지인데.
수원대 교수 이주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