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 함안군 골짜기에는 '나물 할매'가 산다. 이름은 오두심. 올해 연세 98세가 되셨다. 허리가 기역( ㄱ)으로 굽어서도 산나물 뜯어 장에 파는 억척 어머니다.
"이제 그만 쉬시라"고 자식들은 만류하지만 어머니는 오히려 "사람이 나무도 아닌데 어찌 마냥 가만히 있을 수 있냐"고 되묻는다.
가족과 자식을 위해 억척스럽게 살림을 일구고 그렇게 살아온 삶이 곧 자신이 되어 오늘을 살고 있는 나물 할매 이야기를 배우 김영옥의 내레이션으로 만나본다.
오두심 할매(98세)는 봄부터 가을까지 산과 들을 종횡무진 누비며 나물을 뜯고, 두릅을 꺾고, 장에 내다 팔 진달래꽃을 딴다. 아들딸과 함께 모처럼 나선 벚꽃놀이에서도 할매의 눈길은 나뭇가지의 꽃이 아니라 바닥을 덮은 쑥이며 원추리 같은 나물에 꽂힌다.
심지어 집에서도 내내 나물 바구니를 끼고 있다가 딸들에게 잔소리를 듣기 일쑤다.
하지만 두심 할매의 이런 ‘나물 집착증’에는 뿌리 깊은 이유가 있다. 방이 없어서 시어머니와 신혼부부가 함께 자야 했을 만큼 가난한 집에 시집온 할매가 나물로 집안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자식들은 나같이 살지 않기를' 바랐던 할매는 나물 뜯어서 자식들을 가르치고 막내딸을 '동네 1호 여대생'으로 만들었다. 나물은 자식들을 향한 어머니의 사랑이고 자랑이다.
오두심 할매는 매주 토요일이면 마산역 번개시장에, 5자와 0자 드는 날이면 함안 가야 오일장에 간다. 악착같이 뜯어서 살뜰하게 다듬은 나물을 바리바리 들고서 말이다.
오래전 집 앞의 원북역이 폐역될 때 자식들은 쾌재를 불렀다. 이제는 어머니가 장에 가지 않겠다 싶었단다. 자식들 다 유복하게 먹고사는데 제발 나물 좀 그만 뜯으시라 성화를 댄 지가 한참이던 때였다.
하지만 그것은 자식들의 오산이었다. 두심 할매는 택시를 불러 타고 근처의 군북역에 가서 다시 기차를 타고 마산역 번개시장에 가는 '모험'을 불사하기 시작했다. 그러니 버스로 한 시간 넘는 거리의 함안 오일장에 가는 일은 문제도 아니다.
물론 오두심 할매가 시장에 가는 이유는 꼭 돈 벌러만 가는 것은 아니다. 시장에는 할매의 친구가 있고, 손님이 있고, 존재 이유가 있다. 직접 뜯은 나물을 판 돈으로 시장 반찬가게에서 게장도 사고, 전복도 사고, 뻥튀기도 사는 즐거움이다.
할매 보러 찾아오는 단골손님들에게 달래 한 주먹 덤으로 얹어주는 기쁨도 있다. 그것이 두심 할매가 60년 넘도록 '평생직장, 시장'을 오가는 이유다.
오두심 할매 곁을 지키는 두 아들과 세 딸은 어머니 맘을 잘 아는 효자 효녀들이다. 멀지 않은 곳에 사는 세 딸은 수시로 어머니 댁을 찾아와 집 안팎을 세심하게 살피고 첫째 아들은 퇴직한 뒤 아예 고향으로 내려와 다시 취직했다. 어머니 혼자 계시는 것이 불안해서 그렇단다.
하지만 두심 할매는 같이 늙어가는 60, 70대의 자녀들에게 오히려 용돈을 준다. 자식들이 사양이라도 할라치면 '어미가 주는 돈을 안 받느냐'며 호통친다. 허리가 휘도록 평생을 먹이고 입히고 가르쳤지만 주고 또 줘도 여전히 더 주고 싶은 마음. 그게 어머니 맘이란다.
이게 다 평소에 나물 뜯어 마련해둔 쌈짓돈 덕분이다. 그러니 두심 할매가 어찌 나물을 포기하겠는가. 자식들도 이제는 안다. 98세의 어머니가 아직도 나물 뜯으러 나가시는 게 걱정은 되지만 만류하는 것보다는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것을 지지하는 게 진짜 효도라는 걸 깨닫는 중이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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