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혜의 자연을 품은 영남 알프스 중에서도 명산으로 꼽히는 울산의 신불산. '신령이 불도를 닦는 산'이라는 이름답게 그 안에는 혜암 스님이 참선 중인 도선사가 있다.
이곳에선 매주 법회날만 되면 보기 드문 진풍경이 펼쳐진다. 기도가 한창인 법당 안을 내 집 안방마냥 헤집고 다니며 수행(?) 중인 '강아지 보살' 로이스와 로또, 그리고 법당 문앞을 호위무사처럼 지키고 있는 월광이, 도선이, 이글이 때문이다.
예불 드리는 스님 앞에 벌러덩 드러눕는가 하면 기도 중인 신도들 사이에서 간식을 받아먹느라 정신이 없다.
하지만 이 견(犬)보살들을 위해서라면 스님은 전기톱을 들고 밥그릇을 만들고 녀석들의 애정표현 때문에 찢어진 승복을 꿰매는 삯바느질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산중 수행을 하다 말고 스님은 정육점을 찾는데 대체 무슨 볼일이 있는 걸까.
혜암 스님이 불교와 연을 맺은 건 7살, 이유를 알 수 없는 병으로 죽다 살아난 아들을 살리기 위한 부모님의 결정이었다. 학교를 다니며 방학 때마다 사찰로 들어가 불교의 가르침을 배우던 스님은 군 제대 후 신불산의 작은 암자에 들어와 오늘날의 도선사를 만들었다.
무려 58년 동안 이어진 외롭고 또 외로운 수행의 길. 그때 스님의 곁을 지켜준 건 저마다 사연을 품고 사찰로 들어온 강아지 보살들이었다. 그중에서도 스님의 곁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단짝은 단연 로이스다. 녀석이 귀하게 크면 좋겠다는 마음에 이름도 특별히 고급자동차 브랜드로 지어주셨다.
흐드러진 꽃들 사이에서 둘만의 취미를 즐기다 보면,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는 스님. 마음으로 통(通)하는 로이스와 혜암 스님만의 취미는 무엇일까?
한편 도선사 입구에는 특별한 공간이 있다. 개들을 위한 참선 도량인 '견불암'이다. 그 안에선 또 다른 강아지 보살인 달이와 별이, 샤넬, 루이, 사라가 특별 수행을 하고 있다.
터널 통과 훈련부터 스님과의 기도로 도를 닦느라 여념이 없는 말썽꾸러기들. 이 녀석들의 수행 목적은 단 하나 견불암에서 나와 마당 견으로 신분 상승하는 것이다. 견불암 견 보살들은 과연 수행에 성공해 성불할 수 있을까.
하루 24시간이 모자란 혜암 스님이 모처럼 소풍을 나섰다. 초록빛으로 물든 신불산 계곡에서 마음껏 물놀이 하는 강아지들을 바라보며 합장하는 스님. 견 보살들이 다음 생에는 꼭 사람으로 태어나 다시 만날 수 있길 바라는 그의 기도가 봄처럼 따뜻하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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