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김준기 동부 회장, 현정은 현대 회장. |
최근 현대그룹 계열사들이 잇달아 이사회를 열고 제4이동통신사업에 참여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계열사별로 구체적인 출자 액수까지 정해진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한 계열사의 경우 지난 10월 초 ‘제4이동통신사업 관련 IST컨소시엄 참여(안)’라는 단독 안건으로 이사회를 개최했다. 이사회에서는 ‘유망산업 투자를 통한 수익구조 다변화’를 목적으로 ‘4G 전국망 상용서비스’ 사업을 위해 ‘IST 컨소시엄 참여’를 가결했다. 이 회사의 지분출자 예정과 한도는 수백억 원대였다.
현대그룹이 IST컨소시엄에 참여할 것이라는 얘기와 언론보도는 진작 나온 상태. 그러나 이에 대해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불같이 화를 내며 내부 임직원들에게 제4이동통신사업에 대해 ‘함구령’을 내렸다고 한다.
이 때문인지 현대그룹 측은 공식적으로 이사회를 연 사실만 인정할 뿐 “어떤 것도 결정된 바 없다”는 입장만 반복하고 있다. 현대그룹의 이러한 ‘과보호’는 되레 의문과 추측을 증폭시키고 있다. 그 까닭을 유추하기 위해서는 제4이동통신 진행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난 13일 주파수 할당 계획을 의결한 방송통신위원회는 올해 말까지 사업자를 선정, 내년부터 제4이동통신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다. 방송통신위원회 전파정책기획과 송영식 사무관은 “의결하고 4일 후 정식으로 공고하며 정식 공고일부터 한 달 정도를 사업신청서 접수 기간으로 보면 된다”고 밝혔다.
송 사무관은 또 “경매 절차와 관련해서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면서 “기존 사업자들에게도 제한을 두지 않기 때문에 허가 심사에 따라 허가 대상 법인이 선정되면 경매 방식과 절차도 자연스레 결정된다”고 밝혔다. 이는 일부에서 제기된 ‘허가 심사에서 대상 법인을 한 곳 선정해 경매에 참여시키고 최저가에 주파수를 할당할 것’이라는 예측과 빗나가는 얘기다.
현재 사업신청서를 제출한 곳은 KMI 한 곳뿐이다. 이미 8월 말 사업신청서를 제출한 KMI는 방송통신위원회의 주파수 할당 공고가 당초 예상했던 9월보다 늦어진 까닭을 주주 구성에 어려움을 겪는 IST에 시간을 주기 위한 의도라며 비난한 바 있다.
세 번째 도전하고 있는 KMI는 이번에는 기필코 사업권을 따내겠다는 각오를 내비치고 있다. 방석현 전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원장을 대표로 영입한 KMI는 동부그룹도 사업파트너로 삼는 데 성공했다. 대기업을 주주로 참여시킴으로써 재무적 리스크라는 단점을 극복해냈다.
이에 대해 동부그룹 측은 “오래전부터 그룹 차원에서 통신사업에 관심을 가져왔다. 이번에 기회가 된 것”이라면서도 “주주로서 참여한 상태일 뿐 투자 금액과 주력 기업은 사업자로 선정된 다음에 결정할 일”이라고 밝혔다. 동부그룹 관계자는 내내 “우리가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엔분의 일(N분의 1, 즉 여러 주주 중 하나)로 참여할 뿐”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동부그룹은 IT 용역·서비스 계열사인 동부CNI가 사업을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동부CNI는 IT 서비스부문에서 국내 시장점유율 10위권에 위치해 있다.
KMI에 동부그룹이 있다면 양승택 전 정보통신부 장관을 앞세운 IST에는 현대그룹이 있다. 현대그룹 역시 IT 계열사인 현대U&I가 사업의 중심에 설 전망이다.
이처럼 제4이동통신사업에 대기업들이 참여함으로써 큰 관심거리가 됐다. 일각에서는 제4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을 현대그룹과 동부그룹이라는 대기업 간 결전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사실 제4이동통신을 비롯해 저가통신사업은 지금까지 철저히 외면당해왔다. 기존 사업자들과 마케팅 경쟁에서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큰 이유였지만 품질과 콘텐츠 활용, 브랜드 가치에서 차이가 나는 현실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러나 KMI와 IST는 제4이동통신사업에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확신하는 듯하다. 이들은 내년부터 시작될 제4이동통신 사업이 기존 사업자들과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통화 품질이나 데이터 전송 속도 등에서 기존 사업자들의 그것과 비교해 손색이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오히려 저렴한 요금으로 훨씬 빠른 서비스를 장담하고 있다. 연간 수조 원이 소요되는 마케팅 싸움을 어떻게 견뎌내느냐가 관건이다.
제4이동통신은 휴대인터넷 와이브로(WiBro)를 기반으로 한다. 와이브로는 글로벌 통신시장을 주도하겠다며 야심차게 출발했던 국책사업이었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외면당하면서 사장될 위기에 처했다. 국가적 낭비를 없애기 위해 와이브로를 활용하는 제4이동통신을 출범시켜야 한다는 이야기는 꾸준히 나온 터였다.
그럼에도 주목받지 못한 것은 우리나라만 쓰는 기술이어서 글로벌 로밍이 불가능하고 단말기 제조사들이 와이브로용 단말기를 생산하는 데 적극적이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었다. KMI와 IST는 이 같은 단점을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여기고 있다.
하지만 꼼꼼히 들여다보면 제4이동통신의 단점은 딴 데 있다고 지적하는 전문가가 적지 않다. 그들이 지적하는 것은 다름 아닌 속도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LTE보다 빠르다고 얘기하는 와이브로 속도는 어디까지나 ‘현재’에 국한해 보는 것이다”라고 꼬집었다. 다시 말해 현재까지는 그렇지만 제4이동통신이 본격적으로 전개될 내년이면 LTE 속도가 제4이동통신의 와이브로 속도를 앞지를 것이라는 의미다.
게다가 시간이 갈수록 속도 차이가 점점 벌어져 LTE가 결국 와이브로를 압도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앞서의 통신업계 관계자는 “와이브로 속도가 LTE보다 내내 빠르다면 기존 사업자들이 그렇게 쉽게 포기할 리 있겠느냐”면서 “단순히 글로벌 로밍이 안 되고 단말기가 부족할 것이라는 이유는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제4이동통신사업에 참여하기를 희망하는 대기업들 역시 이 같은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게다가 동부그룹과 현대그룹의 재무 상태는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대기업들은 왜 사업 참여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거나 희망하고 있는 것일까. 우선 제4이동통신사업의 수익이나 성패와 상관없이 현대U&I와 동부CNI 같은 참여 대기업들의 IT 계열사의 매출이 보장된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다.
업계에서는 제4이동통신 사업자가 선정되고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통신망 구축 등 설비 투자가 이뤄지면 참여 대기업의 IT 계열사가 이와 관련해서만 연간 2000억~3000억 원의 매출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설비 구축 사업을 주요 주주에 줄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 기간도 5년 정도 유지될 것으로 보고 있다. 즉 5년 동안 연간 2000억~3000억 원의 안정적 매출처를 확보할 수 있다는 얘기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매출이 올라가면 영업이익과 순이익 또한 상승할 확률이 높다. 이익이 증대되면 배당액 역시 많아진다. 현대U&I와 동부CNI 주주들은 두둑한 배당액을 챙길 수 있게 된다.
지난 2005년 설립된 현대U&I(비상장)는 현정은 회장이 68%, 현대상선이 23%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지난 9월 결혼한 현정은 회장의 장녀 정지이 현대U&I 전무도 9.1%를 보유하고 있다.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인 동부CNI의 최대주주는 김남호 동부제철 차장으로 18.64%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김 차장은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의 아들이다. 동부CNI의 2대주주는 13.02%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김 회장이며, 김 회장의 딸 주원 씨가 10.68%를 보유해 3대주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김 회장과 아들, 딸의 지분을 합하면 42.34%. 여기에 특수관계인 지분까지 합하면 50.88%가 된다.
두 회사 모두 오너 일가의 지분이 많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회사가 이익을 내면 낼수록 오너들이 배당받는 돈이 많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두 회사 모두 ‘오너 일가가 소규모 자본으로 쉽게 설립할 수 있는 시스템통합(SI) 업체를 만들어 계열사들이 일감을 몰아주는 형태로 덩치를 키운 후 경영권 승계에 활용한다’는 공식에 부합하는 회사들로 평가된다.
즉 두 회사는 ‘오너 일가의 소규모 자본으로 SI 혹은 IT업체 설립→오너 일가 지분율 높이기(증자 등)→계열사들의 IT 물량 몰아주기→매출 증대와 회사 가치 상승→지분 가치 상승 및 상장차익이나 배당 등으로 현금 확보→확보한 현금으로 계열사 지분 확보’라는 전형적인 과정을 밟아가고 있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지적에도 현대그룹과 동부그룹은 마치 입이라도 맞춘 듯 제4이동통신사업과 관련해 속 시원하게 답변하지 않고 있다. “결정된 바 없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다. 이들이 말을 아끼는 이유가 혹시 이 같은 전망들과 관련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
하룻강아지? 콘텐츠·유통망 막강
▲ 지난 10월 12일 KT와 CJ헬로비전은 MVNO 사업협정을 맺었다. 표현명 KT 개인고객부문 사장(왼쪽)과 변동식 CJ헬로비전 대표가 협정 후 악수를 하고 있다. |
CJ의 이동통신사업은 시장에 큰 기대감을 주고 있다. CJ가 보유하고 있는 온·오프라인 콘텐츠가 워낙 다양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CJ의 유통망을 활용한다면 기존 사업자들이 절대 무시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다. CGV 빕스 뚜레쥬르 등 CJ의 자체 브랜드와 콘텐츠 등을 연계한다면 가입자들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이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증권가에서는 CJ의 저가통신사업 진출이 기존 사업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경쟁 구도는 만들 수 있을지언정 기존 구도를 뒤흔들 정도는 아니라는 것. 또 4G(세대) LTE 시대로 가는 시대에 남의 통신망을 빌려 고객을 많이 확보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관측도 있다. 지난 7월 태광그룹도 한국케이블텔레콤을 통해 저가통신사업에 진출했지만 아직까지 가입자가 2700여 명에 머물면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통화 품질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남의 망을 빌려 쓰면 아무래도 불완전하거나 끊기는 등 통화 품질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그 부분은 망을 빌려주는 KT가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존 사업자들도 크게 신경 쓰고 있지는 않은 모습이다. SK텔레콤 관계자는 “CJ가 온·오프라인 콘텐츠 장점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경쟁 요소는 그것만이 아니다”라며 “좀 더 지켜볼 것”이라고 밝혔다. 무수한 콘텐츠와 혜택으로 무장한 CJ가 높기로 유명한 통신시장의 벽을 뛰어넘을 수 있을지 관심을 끌고 있다. [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