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현악기, 판소리의 흥과 노래를 덧입다
가야금은 12개의 줄과 기둥, 공명판 등으로 구성된 우리나라 고유의 현악기다. 가야금을 글자 그대로 풀어보면 ‘가야’라는 나라 이름과 현악기라는 뜻을 가진 ‘금’(琴)이 합쳐진 말로, ‘가야’에 순 우리 옛말인 ‘고’를 붙여 ‘가야고’ ‘가얏고’ 등의 용어로 불리기도 한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약 1300년 전쯤 음악을 사랑했던 가야국의 가실왕이 가야금을 만들었으며, 우륵에게 명을 내려 12곡을 지어 연주하도록 했다고 전해진다. 훗날 우륵이 신라에 망명하면서 가야금이 널리 퍼지게 되었고, 고려와 조선 시대에도 궁중과 민간에서 널리 사랑받게 되었다.
국보인 ‘신윤복 필 풍속화첩’ 중 ‘청금상련’(聽琴賞蓮, 가야금을 들으면서 연꽃을 감상한다는 뜻)에는 가야금을 타는 기녀의 모습이 그려져 있어 조선 후기의 풍속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가야금이 여성의 전유물이었던 것은 아니다. 조선 중기의 시인 윤선도는 자신의 시 ‘고금영’(古琴詠)에서 “버렸던 가얏고 줄 얹어 놀아보니 청아한 옛 소리 반가이 나는구나…”라고 노래해 가야금이 선비들도 즐겨 연주했던 악기였음을 짐작케 해준다.
그런데 광주광역시 신창동과 경산 임당동의 주거지 유적에서 가야금의 원형으로 보이는 목제 현악기(BC 1세기경 추정)가 출토된 것으로 미루어 보아 우리 전통 현악기의 역사는 적어도 2000년 이상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 유구한 내력을 지닌 현악기, 가야금이 가장 잘 어울리는 국악 장르 중 하나가 바로 ‘산조’(散調)다.
산조란 장구 반주에 맞추어 다른 악기를 독주 형태로 연주하는 것, 또는 그 곡을 뜻한다. 산조는 전라도를 비롯해 충청도, 경기도 남부에서 발전했는데, 대체로 4~6개의 악장을 구분하여 느린 장단에서 차츰 빠른 장단의 순서로 연주되는 것이 특징이다. 이 산조를 가야금으로 연주하는 것이 ‘가야금산조’이고, 직접 가야금을 타면서 노래(창)를 부르면 ‘가야금병창(倂唱)’이 된다.
가야금산조는 조선 말기에 모든 악기 연주에 능했던 김창조 명인이 ‘시나위’를 토대로 판소리 선율과 장단을 도입하고 다양한 연주기법을 개발해 그 기틀을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시나위란 무속음악에 뿌리를 둔 즉흥적인 음악이다. 가야금산조는 판소리를 기반으로 하는 우리 고유의 4~6개 장단 구조로 짜인다. 그중 ‘진양조’는 아주 느리고 서정적이며, 이보다 조금 빠른 ‘중모리’는 안정적으로 다가온다. 또한 ‘중중모리’는 흥취를 돋우며, ‘자진모리’는 밝고 경쾌하다. 이처럼 각각 특색 있는 장단을 느린 장단에서 빠른 장단으로 엮어 연주하는데, 서서히 몰아치는 박자가 듣는 사람을 점점 긴장시키며 흥겨움을 끌어올린다. 명인들에 의해 각기 고유한 가락이 만들어지고 제자들에게 그것이 전승되면서 가야금산조와 연관된 다양한 음악 유파가 형성되었다.
가야금 연주에 노래를 입힌 형태라 할 수 있는 ‘가야금병창’은 판소리를 근간으로 파생된 것으로 여겨진다. 그 시기는 19세기 후반, 가야금산조가 발생한 때와 비슷한 것으로 전해진다. 국악 전문가들은 가야금병창이 처음에는 판소리를 부르는 창자가 소리의 한 대목을 가야금 반주에 맞춰 부른 데서 시작되었으며, 이것이 다른 곡목에까지 파급되어 지금과 같은 형식의 가야금병창이 자리 잡게 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실제로 가야금병창에서는 주로 단가나 판소리 중 한 대목을 따다가 가야금 반주를 얹어 부른다. 원래 가야금산조의 명인들이 가야금병창도 불렀지만, 오늘날에는 산조와 병창의 연주자가 분리되는 추세다. 원곡이 따로 있는 노래를 가야금병창으로 부를 때에는 가야금 특유의 선율로 인해 본래의 곡과 다른 맛이 나고 연주자의 독특한 개성이 잘 표현된다. 가야금병창으로 유명한 대목으로는 판소리 흥보가 중 ‘제비노정기’, 춘향가 중 ‘사랑가’, 심청가 중 ‘심봉사 황성 가는 대목’ 등을 꼽을 수 있다.
가야금병창은 조선 말기에 판소리 명창들과 가야금 명인들에 의해 발전했다. 특히 빼어난 연주 실력과 풍부한 성량, 특유의 너름새(극의 전개를 돕기 위한 몸짓이나 손짓)로 유명했던 오태석 명인은 가야금병창이 활성화되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전해진다. 일제강점기에도 이들 명인들과 그 후예는 가야금병창 음반을 남기는 등 우리 가락의 맥이 이어지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가야금에 우리 가락과 선율을 담고 노래하는 데 평생을 바쳐온 명인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아 1968년 마침내 ‘가야금산조 및 병창’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현재는 그 맥을 이어 이영희(산조) 안숙선(병창) 강정숙(병창) 강정열(병창) 문재숙(산조) 양승희(산조) ‘가야금산조 및 병창’ 예능보유자가 우리 국악을 알리고 후학을 키우는 데 힘쓰고 있다.
자료 협조=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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