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구교환의 해’ 보내고 2023년까지 순풍…“강점 의도하지 않는 게 제 강점”
“촬영 현장에 갔을 때 지금 많이 알려진 작품이 아니라 제가 작업한 단편이나 제 독립영화를 잘 봤다고 말씀해주시는 제작진과 동료 분들 코멘트를 들으면 기분이 정말 좋아요. 그런데 그게 인기로 느껴진다기보다는 그냥 신기한 일처럼 느껴져요(웃음). 사실 제가 먼저 그분들의 팬이었고, 스크린과 브라운관에서 계속 봐온 분들인데 그분들이 저를 안다고? 하면서요. 제가 알아도 10년은 먼저 알았을걸요(웃음). 저를 연예인의 연예인이라고 하신다면 그분들은 연예인의 연예인의 연예인 느낌이죠.”
함께하는 동료들까지 매료시킨 구교환의 2022년 첫 작품은 ‘부산행’ ‘반도’의 연상호 감독이 작가로 참여한 오컬트 미스터리 장르의 ‘괴이’다. 전대미문의 괴이한 사건을 쫓는 괴짜 고고학자이자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지키지 못했다는 괴로움을 간직한 남자 정기훈 박사 역을 맡은 구교환은 다소 산만한 스토리와 정돈되지 못한 캐릭터들의 감정선 사이에서도 그만의 존재감을 꿋꿋하게 드러냈다는 호평을 받았다.
“사실 제가 오컬트 장르를 이번에 처음 해본 게 아니에요. 비슷한 결의 제 영화 ‘사탄의 브이로그’라고 있거든요. 시간 되시면 시청 부탁드립니다. (러닝 타임이) 1분 50초밖에 안 해요(웃음). 저는 장르를 딱히 가리지 않고 다 좋아하는 것 같아요. 어떤 장르든 다 즐겨보고요. 이번에 ‘괴이’를 선택하게 된 데엔 함께하는 동료들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는 이유가 있어요. 팀플레이가 중요한 작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동료 배우 분들로부터 느끼는 설렘이 제겐 가장 중요했거든요.”
눈을 보는 자에게 영겁의 지옥 속을 살도록 하는 저주를 내리는 귀불에 대항하는 주요 캐릭터이긴 하지만 정기훈의 전투력은 ‘0’이다. 미지의 존재에 맞서야 하는데도 극 중 등장하는 고등학생만도 못한 체력을 보여주는 모습을 두고 팬들은 이제까지 구교환이 연기한 상업작품 속 캐릭터 가운데 정기훈을 최약체로 꼽을 정도다. ‘반도’의 631부대 지휘관 서상훈 대위, ‘모가디슈’의 태준기 참사관, ‘킹덤: 아신전’의 부족장 아이다간, ‘D.P.’의 한호열 상병까지 어느 정도의 전투력과 ‘말빨’ 가운데 하나는 갖추고 있던 캐릭터였지만 ‘괴이’의 정기훈은 샌님 같은 면이 더 돋보였다는 것. 이에 대해 구교환은 “기훈이야말로 정말 강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누군가의 남편만큼 전투력이 센 사람이 있을까요? 남편이라면 누구나 전투력이 세지만, 수진의 남편인 기훈은 전투력이 정말 강한 인물이라고 생각해요. 수진이를 깨웠잖아요? 그건 정말 초능력 같은 일이죠(웃음). 서로 다른 그 둘이 어떻게 만나서 결혼까지 하게 됐을까 생각하면 누군가와 신뢰를 나누게 되는 순간을, 그 사람에게 반하게 되는 순간을 어떤 점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 싶어요. 오늘 어떤 두 사람의 시간들이 쌓여서 만들어진 결과가 그것이지 않을까….”
‘터무니없는’ 상황에서도 ‘있을 법한’ 연기를 하는 것이 구교환이다. ‘괴이’ 역시 비현실적인 판타지 세계관에서 구교환의 정기훈은 현실에 발을 디딘 연기로 시청자들을 안심시켰다. 그가 일상보다 더 일상처럼 느껴지는 대사를 치는 것을 보고 있을 때면 어디까지가 대본이고 어디까지가 애드리브인지 궁금해진다. 다만 구교환은 즉흥성을 띠는 연기에 ‘애드리브’라는 거창한 말을 덧붙이고 싶어하지 않았다.
“애드리브라고 하기보단 어미 처리나 그 사이의 문장을 연결하는 데 있어서 그 ‘이음’을 조금 더 일상적으로 했어요. 사실 애드리브가 없었거든요(웃음). 현장에서 추가하고 싶은 대사가 있을 때, 예를 들어서 기훈이가 민 교수와 처음 만나서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는 말을 듣고 ‘형, 나 죽었어’ 하는 대사도 감독님께 먼저 ‘기훈이가 이런 말을 하면 어떨까요?’라고 말씀 드렸는데 감독님도 흔쾌히 그렇게 표현해도 좋겠다고 말씀해주셔서 들어간 대사예요. 대본에 없는 애드리브라기보단 그날의 새로운 약속이라고 하는 정도가 좋지 않을까요?”
현장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이번 ‘괴이’에서 부부로 첫 호흡을 맞춘 수진 역의 신현빈에 대해 구교환은 “개그 코드가 너무 잘 맞는다”며 칭찬을 쏟아냈었다. 다소 독특한 유머감각을 가진 그와 통했다는 점에서 신현빈의 감각에도 살짝 의문이 들던 차에 구교환은 “제가 유머에 활짝 열려 있는 사람이라서 그렇다”며 강조했다.
“저는 유머에 굉장히 너그럽고 관용도가 넓은 편이거든요. 기자님들도 너무 부담스러워 하지 마시고 지금이라도 유머를 해 주셔도 됩니다(웃음). 그런데 현빈 씨한테 개그 코드라는 게, 사실 뭐가 있나요? 개그 코드보다는 현빈 씨가 가진 사람에 대한 이해와 편안함이 있었던 것 같아요.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그런 능력을 가진 굉장히 따뜻한 사람이거든요. 보기만 해도 절로 웃음이 나오는, 배려심이 정말 좋은 사람이죠.”
웃음이 터지는 포인트가 비슷한 동료를 만나서 행복했던 ‘괴이’를 뒤로하고 구교환은 2022년도 바쁘게 보낼 참이다. 공식석상에서 그를 향해 “꼭 같이 연기하고 싶다”며 첫 러브콜을 보낸 배우 이제훈의 바람이 결국 성취되고 만 영화 ‘탈주’부터 전도연·설경구와 함께 하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길복순’도 촬영이 현재 한창이다. 여기에 웹툰 원작 영화 ‘신인류 전쟁: 부활남’의 주연이 확정돼 2023년까지 그의 스케줄엔 빈틈이 없다. 많은 이들이 그와의 작업을 소망하고 있는 지금, 그런 ‘매료’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인지를 물었다.
“강점을 의도하지 않는 게 저의 강점인 것 같아요. ‘나는 이런 걸 잘해요’ 하고 과시하거나 함몰되지 않는 것, 강점을 모르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죠. 제 자신의 강점을 생각하지 않고 그저 배우로서만 작품에 다가가는 거예요. 제가 영화 ‘아이들’(2008)로 데뷔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 전부터도 저는 계속 뭔가를 찍고 있었고, 뭔가에 찍히고 있었거든요. (인기를 얻고) 그 이후로도 저는 달라진 게 없어요. 달라진 것을 꼽자면 더 많이 응원과 기대를 받고 있다는 거죠. 그게 기분이 좋아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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