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D 사업부 워크숍 두고 설왕설래, 물적분할 방식 땐 주주 반발 불가피…사측 “사실무근”
SK하이닉스 관계자 등에 따르면 최근 SSD 사업부가 워크숍을 개최했다. 이를 두고 사내 일각에서는 분사 수순을 밟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앞서 3월부터 SSD 사업부 팀장급들은 분사를 인지하고 있었다는 내부 관계자의 증언도 나왔다. 소문은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구체적으로 명시되면서 확산되기 시작했다.
이에 지난 5월 6일 SK하이닉스 기술사무직 노조가 사측에 분사에 대한 입장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이에 대해 5월 11일 SK하이닉스는 “낸드/SSD 사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여러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며, 방안이 구체화되면 가장 먼저 구성원과 적극적으로 소통할 예정”이라고 대답했다. '사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여러 방안'에 분사가 포함되는 것 아니냐는 것이 일부 직원들의 우려다.
사실 SK하이닉스 안팎에서 낸드사업부 분사 가능성이 제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4분기 ‘All Hands Meeting’에서 당시 이석희 SK하이닉스 사장은 임직원들에게 분사와 관련해 “절대 없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이석희 사장은 현재 솔리다임의 의장으로 자리를 옮긴 상황이다.
사측의 부인에도 분사 관련 소문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는 것은 외부 환경의 영향이 크다. 실제 경쟁사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지난 4월 미국 웨스턴디지털과 일본 키옥시아가 합작해 10조 원 규모로 일본 북부 이와테현에 낸드플래시 제조 시설을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양사의 합병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양사의 합병은 세계 낸드플래시 시장 판도를 뒤집을 수 있는 변수로 꼽히기도 했다. 중국 최대 메모리 반도체 기업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도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지난해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용 128단 3D 낸드플래시 제품 양산을 시작했다. 삼성전자가 2019년 8월, SK하이닉스가 지난해 2분기 각각 양산에 들어간 제품이다. 올해 들어서는 애플이 YMTC의 낸드플래시 메모리칩 샘플을 시험 중이며 납품을 논의 중이라고 알려지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SK하이닉스 SSD 사업부와 솔리다움을 하나로 합친다면 경쟁력을 제고하는 장점이 있다. 규모의 경제를 활용해 공격적인 투자와 생산이 가능하다. SK하이닉스는 2018년 4분기부터 11분기 연속 낸드플래시 사업에서 적자를 내다 지난해 3분기에야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올해는 서버용 SSD를 중심으로 출하량을 공격적으로 확대해 낸드시장 점유율을 늘리겠다는 목표를 제시하기도 했다.
SK하이닉스와 솔리다임 점유율을 합치면 일본 키옥시아를 제치고 업계 2위로 올라선다.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2021년 4분기 전 세계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점유율 33.1%를 기록하며 1위 자리를 20년째 수성 중이다. 그 뒤를 일본 키옥시아(19.2%), 미국 웨스턴디지털(14.2%), SK하이닉스(14.1%), 마이크론(10.2%), 인텔(5.4%) 등 5개 기업이 경쟁하고 있다. 3강 구도(삼성전자, SK하이닉스, 미국 마이크론)가 굳어진 D램과 달리 낸드플래시 시장 경쟁은 치열한 상황인 셈이다.
이와 관련, 반도체업계 한 관계자는 “SK하이닉스가 낸드를 중심으로 하는 메모리반도체 사업부를 솔리다임과 합칠 가능성이 있다”며 “사업 규모가 작은 곳이 따로 사업을 하는 것보다 하나로 합쳐서 관리한다면 효율성과 사업 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설령 분사가 현실화된다고 해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우선 내부 직원들의 반발이 예상된다. 그간 D램(71%)에 편중된 사업 구조는 SK하이닉스의 약점으로 지적돼 왔다. 낸드플래시는 비중은 25%에 불과하다. 2020년 10월 SK하이닉스가 90억 달러(약 10조 3000억 원)에 인텔 낸드 부문 및 SSD 사업 부문(중국 다롄 공장) 인수를 결정한 배경이기도 하다.
SK하이닉스는 솔리다임 인수 효과 등에 힘입어 올해 1분기에 매출 12조 원이 넘는 사상 최대 실적을 거뒀다. 반도체 업황이 녹록지 않은 가운데서도 솔리다임이 실적을 견인했다. 올해 1분기 SK하이닉스의 낸드 평균판매가격(ASP)은 기업용 SSD 비중이 큰 솔리다임 실적이 반영된 덕분에 상승세를 기록했다. 낸드플래시 출하량도 전 분기 대비 약 10% 후반의 증가세를 보였다.
SK하이닉스 한 직원은 “현재는 모든 사업부가 성과급을 동일하게 받지만, 낸드 사업부가 분사된다면 사업부별 업황에 따라 처우가 달라질 수 있다”며 “특히 10조 원을 투자한 효과는 임직원들에게 전혀 반영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적분할 뒤 상장 정차를 밟는다면 시장의 비난도 감수해야 한다. 특히 SK하이닉스가 물적분할 방식으로 분사한다면 주주 반발이 불가피하다. 분할된 회사가 상장될 경우도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시장에선 ‘모회사-자회사’ 동시상장 시 두 회사의 기업가치가 모두 하락하는 경향이 나타나는 만큼 동시상장 시 주주보호 요건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그간 SK그룹은 분사와 물적분할 등을 통해 몸집을 키워왔다. 지난해 SK이노베이션의 소재사업이 물적분할한 SK아이테크놀로지, SK케미칼의 백신사업이 물적분할한 SK바이오사이언스가 성공적으로 증시에 데뷔했다. 같은 해 SK이노베이션에서 물적분할한 배터리 사업 자회사 SK온이 공식 출범하며 IPO를 준비하고 있다.
한편 분사를 통해 SK하이닉스 몸값이 떨어지면 지배구조 개편에는 도움이 될 것으로 분석도 나온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남은 숙제는 지배구조 개편이다. SK그룹의 지배구조는 ‘오너 일가→SK(주)→SK스퀘어→SK하이닉스’로 이어진다. 문제는 그룹 내 핵심 기업인 SK하이닉스의 활용 방안이다. SK하이닉스는 SK(주)의 손자회사라 공정거래법상 인수합병(M&A)에 나서려면 그 회사의 주식 100%를 소유해야 한다. SK(주)가 SK스퀘어와 합병해 SK하이닉스를 자회사로 둘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SK(주) 입장에선 SK하이닉스 몸값을 낮춘다면 합병을 추진하는 데 부담을 덜 수 있다.
이와 관련, SK하이닉스 관계자는 “기술사무직 노조와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서 시작된 루머에 불과하다”며 “내부적으로 확인할 결과 전혀 사실무근이고, 내부적으로도 논의한 바 없다”고 말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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