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차를 하고 휴양림으로 들어서는 순간, 가슴이 먼저 탁 트인다. 쉽게 보기 힘든 너른 잔디가 거침없이 펼쳐져 있다. 제주에는 말 방목지도 많고 목장을 위한 초원도 많지만 캠핑과 놀이를 위한 잔디가 이토록 넓게 펼쳐져 있는 일도 드물다. 너른 잔디만으로도 이국적인 정취가 풍긴다. 한없이 펼쳐진 너른 잔디를 바라보고 있으려니 문득 하지도 못하는 축구가 하고 싶고, 철모르게 뛰어놀고 싶다.
잔디 양 끝으로 캠핑 사이트가 나란하다. 오른 편엔 너른 데크가 늘어서 있고 초원을 가로질러 저쪽 끝 왼편엔 잔디 위에 바로 텐트를 칠 수 있게 밧줄로 선이 그어진 캠핑 사이트가 있다. 잔디 위 캠핑 사이트 가격은 놀랍게도 하룻밤에 단돈 2000원. ‘단돈’이라는 단어가 딱 어울리는 가격이다. 편의점 음료수 한 병 값으로 이국적인 하루를 누릴 수 있다.

무엇보다 교래자연휴양림이 이국적인 정취를 풍기는 이유는 곶자왈 때문이다. 곶자왈이란 제주 방언 ‘곶’과 ‘자왈’의 합성어로 곶은 숲을 뜻하고, 자왈은 덤불이나 가시밭같이 어수선하게 엉클어진 수풀을 말한다. 즉, 화산암인 현무암질 용암류 암괴들이 불규칙하게 널려 있는 지대에 형성된 용암숲이다. 제주어 사전에는 ‘나무와 덩굴 따위가 마구 엉클어져 수풀과 같이 어수선하게 된 곳’으로 정의되어 있다.
곶자왈 지대에 조성된 교래자연휴양림, 그래서인지 남태평양 화산섬의 숲속에 와 있는 듯한 이국적인 느낌이 든다. 특히 곶자왈을 제대로 느껴볼 수 있는 생태관찰로에 들어서면 손가락 같은 잎사귀를 활짝 펼친 고사리가 모양도 조금씩 다르게 종류 별로 지천에 널려 있고 초록의 이끼 낀 돌들은 저마다 연륜을 과시한다. 여린 나무들의 가지가 사방으로 뻗치며 봄을 기다린 듯 마구 웃자란 풀들과 엉켜 덤불을 이루고, 울창한 숲속의 틈을 비집고 겨우 파고든 햇빛은 연둣빛으로 발산한다. 신선이 산다면 이런 곳에 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숲은 깊고 울창하다.

난대림과 온대림을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숲을 형성하고 있어 보존가치 높은 동식물이 공존하는 곶자왈은 곶자왈만의 독특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식물종도 일반 숲보다 더 다양해 600종 이상의 식물을 품고 있다. 제주 안에는 크게 애월 지대, 조천-함덕 지대, 한경-안덕 지대, 구좌-성산 지대 등 4개 지대의 곶자왈이 있다.
고사리 군락과 이끼 낀 돌들이 장식된 정글 같은 곶자왈 숲은 화산활동으로 생긴 뉴질랜드의 어느 숲과도 꽤 비슷한 느낌이다. 마주쳐 지나는 한국 사람의 얼굴이 갑자기 신기해질 정도다. 숲은 정글 같아도 사람이 다닐 수 있는 산책로는 말끔하게 단장돼 있어 걱정할 필요는 없다. 휴양림에선 주로 정돈된 야생을 느낀다. 간혹 야생을 갈망하면서도 정작 벌레는 무서워하는 도시인에게 딱 맞는 콘셉트다.

낮에는 원시의 자연이 살아 있는 곶자왈을 원 없이 걷고, 밤에는 원두막에서 코펠로 냄비 밥을 지어 먹자니 어쩐지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나도 모르게 과거로 들어와 버린 것만 같다. ‘쥬라기공원’까지는 아니더라도 한참 과거로 넘어온 것 같은 생경한 느낌이 텐트 안을 가득 채우는 밤, 곶자왈이 뿜어주는 산소로 공기마저 달콤하다.
제주=이송이 기자 runaindi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