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호, 오승환 등 여러 형들이 따뜻하게 대해줘 야구에만 집중”
KBO 기록통계업체 스포츠투아이에 따르면 김태군은 올 시즌 대체선수대비승리기여도(WAR) 1.26을 기록했다(5월 10일 기준). 삼성 팀 내에선 외국인타자 호세 피렐라(2.04)에 이은 2위이고, 리그 전체 15위다. 10개 구단 포수 중에선 당당히 1위에 이름을 올렸다. 팀 성적도 상승세를 타고 있다. 시즌 초반 하위권을 맴돌던 삼성은 최근 연승 행진을 달리며 4위 롯데를 1경기 차로 쫓고 있다.
안정된 투수 리드와 공격에서 만점에 가까운 활약을 펼치며 성공한 트레이드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김태군을 5월 12일 삼성 라이온즈파크에서 만났다.
―오늘 보니까 파란색 훈련복이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나도 몰랐는데 삼성 와서 파란색과 함께하다 보니 이 색깔이 익숙해졌다. 트레이드되고 5개월가량 지났다. 야구하면서 행복하다고 느낀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체중 감량을 많이 한 건가.
“지난 2년 동안 순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줘야 하다 보니 몸 만들기에 좀 더 집중했던 것 같다. 출전 기회가 주어지면 안타를 쳐야 하고, 그런 안타가 나와야 계속 기회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잘할 수 있을지, 잘 버틸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또 고민하다 보니 살이 절로 빠지더라.”
―5월 11일 SSG와의 경기에서 추신수 선수 타석 때 유독 이런저런 대화를 많이 하는 것 같더라. 부산고 선후배라 그런지 포수와 타자의 친밀감이 느껴졌다.
“어제(11일) 신수 형이 친 타구가 신수 형 발등을 맞고 떨어졌다. 분명 세게 맞았고, 통증이 크게 느껴졌을 것 같아 “형님 시간 좀 더 드릴까요?”라고 말씀드렸더니 괜찮다고 하셔서 “역시 상남자시네요”라고 대답했다. 신수 형이 나한테는 말을 걸지 말라고 하신다. 얼굴도 쳐다보지 말라고. 내가 쳐다보면 자꾸 말리는 것 같다면서 말이다. 신수 형이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를 오가던 시절 겨울만 되면 부산고에서 훈련을 하셨다. 당시 내가 3년 내내 신수 형의 훈련복을 도맡아 빨래해드렸다. 3학년 주장일 때도 신수 형 빨래는 내 담당이었다. 그걸 잘 알고 계신 터라 이후 많은 도움을 주셨다. 메이저리그에서 뛰던 선수가 한국에서 같이 야구하는 상황이 지금도 신기하다. 신수 형이 타석에 들어서면 기분 좋은 냄새가 난다. 지난 시즌에는 그 냄새가 좋아서 바로 승부 들어가려다 일부러 승부를 길게 가져간 적도 있었다. 미국에서 뛴 선수의 고퀄리티 냄새라고나 할까. 하여튼 신수 형만의 향기가 있다.”
―흥미로운 건 추신수 선수와 동갑내기인 오승환 선수와 배터리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승환 형과는 2017년 WBC대회에 처음으로 대표팀에 승선해 호흡을 맞춰본 적이 있었다. 그때도 승환 형의 공을 받는 게 신기할 정도였는데 지금은 한솥밥을 먹고 있으니 사람은 정말 오래 살고 볼 일인 것 같다. 아직은 승환 형과 많은 공을 주고받진 못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좋은 호흡을 보일 거라고 자신한다.”
―포수 김태군이 보는 백전노장 오승환은 어떤 마무리 투수인가.
“마운드에서의 자세, 책임감이 여느 투수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다른 팀에서 봤던 것보다 훨씬 강한 면모를 나타낸다. 특히 마무리 투수라는 포지션에 대한 책임감이 상당하다. 무엇보다 승환 형이 마운드에서 풍기는 기운이 엄청나다.”
―선수 생활하면서 두 차례 팀을 옮겼다. LG 입단했다가 2012년 11월에 NC 유니폼을 입었고, 이번에 삼성으로 이적했다. 삼성으로 팀을 옮길 때 솔직히 어떤 감정이 들었나.
“트레이드 소식을 듣고 처음에는 담담했다. 새로운 팀에서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보자고 다짐한 뒤 구단에 인사하러 라이온즈파크를 찾았는데 대표님, 단장님, 운영팀에서 모두 나를 위해 마중을 나오셨다. 그 모습이 정말 감동적이었다. 내가 이런 대우를 받아도 되는 선수인가 싶을 정도로 몸 둘 바를 몰랐다. 나를 인정해주고 대우해준다는 느낌이 드니까 삼성 유니폼이 정말 소중해지더라. 주전이든 백업이든 뭐가 중요하겠나. 앞으로 야구를 재미있게 하면 되는 것 아닌가. 그 마음으로 삼성에 합류했다.”
―스프링캠프에서 선수들을 처음 만났을 때의 분위기는 어떠했나.
“형들이 정말 잘 챙겨주셨다. (강)민호 형, (오)승환 형, (우)규민 형, (오)재일 형, (이)원석 형 등등 여러 형들이 오랫동안 알고 지냈던 선후배처럼 따뜻하게 안아주셨다. 같이 연습하면서 2년 동안 잠들어 있던 열정이 되살아났다. 배터리 코치님도 모든 걸 나한테 맞춰주셨다. 1000게임 이상 출전한 포수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일은 아니라면서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말씀하시더라. 민호 형한테는 형이 안 좋을 때도 돕고, 형이 잘할 때는 더 잘할 수 있도록 뒷받침이 되겠다고 약속 드렸다. 민호 형도 서로 믿고 잘해보자고 덕담을 건네주셨다. 오랜만에 좋은 팀 분위기 속에서 야구에만 집중하고 있다. 그게 지금 성적으로 나타나는 것 같다.”
김태군은 야구 인생의 스승으로 부산고 시절 인연을 맺은 고 조성옥 감독과 NC에서 만난 김경문 전 감독을 꼽는다. 특히 김경문 전 감독은 포수 김태군에게 날개를 달아준 지도자다.
―2012년 11월 15일 신생팀 NC 다이노스의 특별지명을 받고 팀을 옮긴 후 김경문 감독과 따로 인사를 했다고 하던데 그게 언제였나.
“그해 11월 18일이었다. 당시 8개 구단에서 ‘보호 선수 20인 외 특별지명’으로 뽑힌 선수가 모두 8명이었다. 두산 고창성, 한화 송신영, 롯데 이승호, 넥센 이태양, SK 모창민, KIA 조영훈, 삼성 김종호 선배, 그리고 나였는데 그 8명의 선수들과 FA로 오신 이호준과 이현곤 선배가 함께 자리했다. 김경문 감독님이 내게 소주를 따라주시면서 '태군아, 앞으로 네가 야구하고 싶은 대로 해. 절대 눈치 보지 말고'라고 말씀해주시는 게 아닌가. 당시 내 나이가 24세였는데 감독님의 그 말씀이 가슴에 확 박히는 기분이 들었다. 두산 감독일 때부터 나를 지켜보셨고, 내가 경찰야구단에 있을 때 NC가 퓨처스리그에 진입하면서 우리랑 경기를 가졌고, 운 좋게 3연전을 치르는 동안 내가 좋은 성적을 냈다. 그걸 다 직접 보신 터라 감독님이 나에 대해 갖는 기대가 크셨다. 덕분에 NC에서 정말 신나게 야구를 했다.”
―그 흐름이 2015년 포수로는 역대 처음으로 전 경기인 144경기 출전으로 이어진 건가.
“2014년 준플레이오프 진출을 이루고 마무리 캠프를 가졌는데 캠프 명단에 내 이름이 없었다. 당시 만 24세의 선수가 마무리 캠프에 참가하지 않는다는 게 말이 안됐다. 그런데 감독님이 나를 따로 부르시더니 선배 눈치 보지 말고 웨이트트레이닝에 집중해서 다음 시즌에 전 경기 출전에 도전해보자고 말씀하시는 게 아닌가. 감독님의 격려 덕분에 11월은 회복 훈련을 했고 12월, 1월에는 웨이트트레이닝을, 2월 스프링캠프에서도 개별 훈련을 통해 몸을 만들 수 있었다.”
―아무리 몸을 잘 만들었다고 해도 포수가 전 경기에 출전한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다. 시즌 중에 크고 작은 부상이 있을 수도 있는 것이고.
“선발 출전은 139경기였고, 교체로 5경기에 들어갔다. 몸이 아플 때는 진통제를 먹고 뛰었고, 부상으로 통증을 느끼면서도 경기 출전을 강행했다. 그때 NC의 팀 분위기가 정말 좋았다. 선배들은 젊은 선수들이 야구장 나가서 놀 수 있게끔 편한 환경을 조성해주셨다. 때론 어린 선수들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면 따로 불러 야단치기도 하고, 팀워크를 위해 회식도 해주면서 진한 동료애를 느낄 수 있게 만들었다. 2014년에는 이종욱, 손시헌 코치가 합류하면서 투수, 야수 가릴 것 없이 한데 어우러지며 좋은 분위기를 이어갈 수 있었다. 좋은 선배가 있어야 가능성 있는 후배들이 성장한다. 그런 선배가 없으면 어린 선수들은 방향을 잡기 어렵다. 당시 NC는 선수들의 호흡이 정말 좋았다.”
김태군은 NC에서 양의지를 만난 게 포수로선 행운이었다고 말한다. 일부에선 FA를 통해 양의지가 NC 유니폼을 입게 됐고, 그로 인해 주전 자리를 내준 김태군이 힘든 시간을 보냈을 거라는 시선도 있었지만 김태군은 양의지를 통해 배운 게 정말 많았다며 눈을 반짝거린다.
“(양)의지 형이 NC와 계약 후 나한테 문자를 보내셨다. 미안하게 됐다면서. 프로에선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팀으로 가는 게 옳은 선택이다. 의지 형이 나한테 미안해 할 일이 전혀 아니었다. 운 좋게 KBO리그의 최고 포수로 꼽히는 양의지, 강민호 선배와 한 팀에서 보냈고, 보내고 있는 중이다. 두 선배들을 보며 내가 얼마나 부족함이 많은 선수인지, 얼마나 더 많은 걸 배워야 하는지를 깨달았다.”
5월 4일 대구 NC전에서 김태군은 8회말 4-5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대타로 나가 1타점 2루타를 때려내며 5-5 동점을 만들었다. 이날 삼성은 8회 6점을 더해 11-5 대승을 거뒀다. 그는 대타로 타석에 들어섰을 때 삼성 팬들이 자신을 향해 보낸 함성과 응원의 박수를 잊지 못한다.
“그런 환호는 정말 오랜만에 들어봤다. 타석에 들어서는데 전율이 느껴질 정도였다. 고생 많이 했는데 참고 잘 버티다보니 이렇게 웃는 날이 오는 것 같다. 앞으로 미친 듯이 야구장에서 열심히 놀고 싶다.”
대구=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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