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단, 미사일공세 집중되는 우크라 르미우 인근 프셰미실 캠프방문
-텐트 등 임시 거처 설치…폴란드정부 입국심사 거쳐 일자리도 알선
-이스라엘, 유럽연합 등 각 나라 NGO 봉사 활발…중국·한국은 안보여
[일요신문] 그린닥터스는 우크라이나 난민 의료지원 사흘째 우크라이나 서쪽 도시 르비우와 인접해 있는 폴란드 프셰미실 난민캠프를 찾았다. 이곳은 피란민들이 가장 많은 곳인데도, 서방국가의 우크라이나 지원무기가 들어온다는 이유로 러시군의 미사일공격이 집중되는 위험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프셰미실 난민캠프는 우크라이나와의 국경지역에 인접해 있어 난민들이 가장 많다. 러시아 침공 초기엔 하루 20만 명이 이상이 몰려와 5천여 명까지 수용 가능한 캠프가 인산인해를 이뤘다고 한다. 지금은 하루 2만여 명 선의 난민들이 들어와 폴란드 정부의 입국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프셰미실 캠프에서 사흘 정도 머물면서 심사를 거친 난민들은 자신이 원하는 유럽지역 국가들로 이동하고 있다. 폴란드 내에 거주하려는 경우 정부에서 임시 주민번호를 부여해 일자리까지 알선해줄 정도로 폴란드정부는 우크라이나 난민들에게 호의적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폴란드 국경은 넘은 우크라이나 난민 숫자는 330만여 명이라고 한다.
폴란드와 우크라이나는 언어, 문화에서 슬라브족에 속해 있지만, 중세와 근대에 이르러 폴란드가 우크라이나를 강압적으로 지배했던 과거 때문에 역사적으로는 사이가 좋지 않은 편이었다. 2004년 폴란드가 우크라이나의 오렌지 혁명을 지지하면서, 반러 성향인 두 나라는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서로 협력하고 있다.
폴란드는 우크라이나의 EU 및 나토 가입을 지지하고 있을 정도로 우호적이었고,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양국이 공동의 적 러시아에 대항해 많은 도움을 주고받으며 실질적 동맹관계로 바뀌었다.
그린닥터스가 찾아간 난민캠프는 전쟁 직전엔 테스코라는 대형 유통매장이 들어서 있었다. 임시 출입국사무실 주변으로 차량과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전쟁 초기와는 달리 폴란드로 입국하려는 난민들보다는 우크라이나로 돌아가려는 사람들과 차량들이 훨씬 더 많았다. 우크라이나로 들어가는 도로에는 마치 우리나라 명절 귀성차량들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있었다.
러시아의 침공 직후 우크라이나 남자들은 죄다 전선에 투입되거나 오랜 삶터를 지키기 위해 고향에 남아 있고, 아이들과 노인, 여자들만 피란길에 올랐다가 아직도 러시아와 싸우고 있는 아버지나 아들들이 보고 싶고 그들의 안위가 걱정돼서 귀국길에 오른다고 한다.
그들에게 그린닥터스 대원들이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슬라바 우크라이니!(우크라이나에 영광을!)”라고 하면, 우크라이나 난민들은 미소 띤 얼굴로 “훼로얌 슬라바!(영웅들에게 영광을!)”라고 답례한다.
프셰미실 난민캠프에는 이스라엘을 비롯해 일본, 유럽 국가들의 NGO단체 자원봉사자들이 소속 국기를 내걸고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돕고 있었다. 최근 들어 우크라이나로 되돌아가는 난민들이 많아서인지 음식물 등 물자를 풍족하게 제공되고 있었다. 이스라엘과 영국 등의 NGO 소속 의사들이 진료대를 설치해 놓고 난민들을 상대로 무료 진료를 하고 있었다.
특히 이스라엘 봉사단이 적극적이었다. 이스라엘 국민들에게 폴란드는 평생 지울 수 없는 역사의 아픔이 스며있는 곳이다. 2차 세계대전 때 히틀러에 의해 자행된 유대인 가스독살 현장인 아우슈비츠수용소가 폴란드에 있기 때문에 쉽지 않을 걸음인데도 그들은 프셰미실 난민캠프에서 정성껏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돕고 있었다.
폴란드 프셰미실 난민캠프에는 유독 러시아, 중국, 대한민국 국기만 보이지 않았다. 러시아는 이번 전쟁을 일으킨 책임이 있으므로 당연히 캠프 내에서는 반러 정서가 강하게 배여 있었다. 그린닥터스 의료지원단의 통역을 맡은 고려인은 한국인이었지만, 국적이 러시아로 돼 있대서 캠프출입을 거부당하기도 했다. 러시아와의 전통적인 외교관계를 고려했음인지 중국 국기를 단 NGO도 보이지 않은 점도 충분히 이해됐다.
다만 태극기가 눈에 띄지 않은 게 무척 아쉬웠다. 지난 3월 한국의 한 대학병원에서 우크라이나 난민을 돕기 위해 폴란드에 입국하려다 되돌아왔다는 뉴스를 봤지만, 의료 등의 지원이 절실한 우크라이나 전쟁난민들을 돕는 현장에 정작 한국전쟁 때 국제사회의 도움으로 자유를 지켜냈던 대한민국이 빠져 있다. 20년 넘게 의료봉사 활동을 해온 그린닥터스로서는 더 빨리 난민들을 찾아가지 못한 점에 자괴감마저 들었다.
그린닥터스도 시장 통에서 좌판을 깔 듯 즉석에서 진료대를 갖춰서 안과, 외과 등 진료활동을 벌였다. 의사들이 진료하는 동안 다른 봉사단원들은 미리 마련해간 응급의료키트를 난민들에게 나눠줬다.
부산은행과 KH그룹, 국민은행, 온병원그룹 등의 후원금으로 마련한 응급의료 키트에는 타이레놀 등 진통해열제, 소화제, 파스, 압박붕대 등 웬만한 가정상비약들이 다 들어 비상시 난민들이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다. 군것질을 좋아하는 아이들에게는 준비해간 과자봉지를 쥐어주자 천진난만하게 즐거워한다. 그들의 맑고 밝은 얼굴에서 어서 빨리 전쟁 트라우마가 걷히기를 기원했다.
러시아군의 미사일 공포 속에 접근한 폴란드 프셰미실 난민캠프 방문으로 그린닥터스는 다시 한 번 우크라이나 난민들에게 동병상련을 느끼고, 그 공포와 비참함에 속울음을 삼켜야 했다. 대한민국도 일제 식민지배와 한국전쟁이라는 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 특히 한국ㅂ전쟁 때 중국, 러시아군과 맞서 싸웠다는 점에서 오늘의 우크라이나가 더욱 오버랩 됐다.
복잡한 국제사회에서 외교의 역할이 점점 증대한다지만, 인도주의문제를 놓고 지나치게 외교적 계산을 하는 게 올바른 일일까. 한때 전쟁의 폐허 속에서 국제사회의 도움으로 세계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대한민국이 이제는 인도주의 문제만큼은 정부 차원에서 적극 나서야 할 때이다. 그린닥터스 같은 의료봉사단체가 ‘청진기를 든 외교관’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게 하는 것도 다른 한편으로는 국익에 도움 되는 일 아닌가.
우크라이나 난민 지원에 우리 정부가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나서주기를 기대하면서, 어둠이 어스름 내린 저녁 시간에 그린닥터스 의료지원단은 눈물을 머금으며 프셰미실을 빠져나와 바르샤바로 향했다. 길 옆 노란 유채 밭이 서러울 만큼 아름다웠다.
폴란드 바르샤바 현지에서 정근 그린닥터스재단 이사장
정리=김기봉 부산/경남 기자 ilyo33@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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