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9년 3월 20일 김우중 전 대우 회장이 대우그룹 출범 42주년 기념행사에서 참석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
이를 놓고 일각에선 김 전 회장이 현 정권 막후에서 일정 역할, 특히 ‘이상득-박영준’ 라인이 주도한 자원외교에 도움을 준 대가로 사면을 받을 것이란 얘기가 돌고 있어 관심을 끈다. 최근 사업성 미흡과 특혜설 등으로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는 자원외교(<일요신문> 1014호 참고)의 논란이 김우중 전 회장의 사면설과 맞물리면서 증폭되고 있는 것이다.
1999년 대우그룹 해체 후 두문불출하던 김우중 전 회장은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조심스럽게 복귀를 모색했다. 베트남에 머물던 김 전 회장은 2009년 3월 서울에서 개최된 대우그룹 창립 42주년 기념식에 참석, 주변 인사들에게 이러한 뜻을 내비쳤던 것으로 전해진다. 김 전 회장이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그룹이 해체된 지 10년 만이었다.
당시 행사장에서 기자와 만났던 대우그룹 전직 임원은 “(김 전 회장이) 부축을 받긴 했지만 건강은 상당히 좋아 보였다. 뭔가를 준비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셨다”며 김 전 회장의 활동 재개가 임박했음을 전하기도 했다. 김 전 회장은 올해 1월 중국 선양에서 열린 대우조선해양과 르린그룹 간 경제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 체결식에도 참여해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중국 정·재계에 막강한 인맥을 구축하고 있는 김 전 회장이 계약 과정에 관여했을 가능성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현 정부에서 김 전 회장이 명예회복에 나선 것은 이명박 대통령이 내세운 ‘비즈니스 프렌들리’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청와대 정무 관계자는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김 전 회장이 주창한 세계 경영은 재평가받아야 한다는 게 이 대통령의 평소 생각이다. 특히 김 전 회장이 쌓아 놓은 인맥은 우리 기업과 정부가 해외 사업을 하는 데 큰 자산이 될 것이라고 수차례 말했다”고 귀띔했다. 재계 일각에선 이 대통령이 현대 시절부터 김 전 회장과 친분이 있었다는 점을 거론하며 사면 가능성을 높게 점치기도 했다.
김 전 회장 역시 이러한 정부 기류에 적극적인 ‘리액션’을 취하면서 ‘컴백’을 노렸다. 그 대외창구는 지난 2009년 10월 설립된 ‘대우세계경영연구회(연구회)’가 맡았다. 연구회는 ‘20만 글로벌 리더 양성’ ‘해외취업 알선’ 등과 같은 사업을 추진하면서 김 전 회장을 알리는 데 주력했다. 연구회에 소속된 인사 P 씨는 “(김 전 회장이) ‘실패한 경영인’이라는 오명을 벗기는 게 최우선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김 전 회장은 지난 2007년 12월 31일 대우그룹 부도사태와 관련해 ‘특별사면’을 받은 바 있지만 재미사업가 조풍언 씨가 연루된 해외 비자금 문제와 17조 원가량의 추징금이 여전히 그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상황이다. 김 전 회장 측이 바라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부분에 대한 복권이다.
P 씨는 “대우 부도는 상징적인 측면이 있어서 사면이 됐다 해도 김 전 회장의 복귀엔 실질적인 도움이 안 된다. 추징금이나 검찰 수사 등 현실적인 여건이 풀려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역시 김 전 회장 사면을 두 차례(2009년 12월, 2010년 8월) 건의하면서 이 점을 강조했다고 한다. 그러나 청와대는 신중히 검토한 끝에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청와대 정무 관계자는 “국민 정서상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결론을 내렸다. 분위기가 더 무르익어야 할 것”이라면서 “김 전 회장이 (추징금에 있어서) 어느 정도 성의를 보여야 한다며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았다”고 털어놨다.
그렇다면 여권 핵심부가 또 다시 ‘김우중 사면’ 카드를 꺼내든 이유는 무엇일까. 이재광 정치 컨설턴트는 “내년엔 총선과 대선이 있다. 지지율 하락을 우려한 한나라당 반대가 심할 것이 분명하다. 김 전 회장의 경영 노하우 등을 되살리길 원하는 이 대통령으로선 올해가 적기라고 판단한 것 같다”고 주장했다.
여권 복수 관계자들에 따르면 김 전 회장 사면은 우선 전경련이 ‘연말 특사’를 요청하면 청와대가 이를 접수한 뒤 수락하는 형식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전경련 관계자도 “김 전 회장을 사면시켜줘야 한다는 입장은 이미 정리된 것이다. 다시 한 번 요청할 계획”이라면서 “올해를 넘기면 힘들다는 것을 정부도 알고 있을 것이다. 이번엔 되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연말에 단행될 것으로 알려진 사면의 리스트는 정치·사회적 인사를 최대한 배제하고 종교와 재계 위주로 작성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논의되고 있다는 전언이다. 김 전 회장 사면으로 불거질 수 있는 부정적 여론을 최소화할 수 있는 ‘명분’을 확보하기 위해서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정치권과 재계에선 김 전 회장 사면을 재검토하는 배경으로 ‘자원외교’를 거론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김 전 회장이 이명박 정부가 사활을 걸고 추진했던 해외 자원개발을 막후에서 지원해준 보상 차원에서 사면을 받을 것이란 말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상득 의원과 함께 자원외교를 주도했던 박영준 전 차관이 김 전 회장 밑에서 일을 배운 ‘대우맨’ 출신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관측은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박 전 차관은 대학 졸업 후 ‘대우HMS(현 한국델파이)’에 입사했고, 그 뒤 대우그룹 기획조정실에서 근무하다 이상득 의원 보좌관으로 정치권에 뛰어들었다. 박 전 차관은 얼마 전 출간한 저서 <당신이 미스터 아프리카입니까?>에서 “김 전 회장으로부터 글로벌마인드와 도전정신을 익힐 수 있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또한 현 정권에서 가장 잘나가는 자원 개발업체로 꼽히는 대우인터내셔널은 옛 대우계열사이기도 하다. 비록 지금은 포스코로 주인이 바뀌었지만 김 전 회장이 대우인터내셔널의 해외 사업에 간접적인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 전 회장이 현 정권 자원외교에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그룹 경영자 시절 쌓아놓은 두터운 인맥 때문이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며 전 세계를 누볐던 김 전 회장은 특히 동유럽, 아프리카, 중국, 동남아 등의 고위 인사들과 친분을 쌓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모두 이명박 정부가 자원 개발권 획득에 공을 들였던 곳이다.
한국광물자원공사의 한 관계자는 “2008년 여름 김 전 회장이 한국기업의 아프리카 해외투자 건을 도와준 적이 있었다. 김 전 회장의 부탁을 받은 그쪽에서 먼저 요청한 것이었다”면서 “이밖에 국내 업체가 맺은 자원개발 MOU 중 일부를 김 전 회장이 도와줬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라고 귀띔했다. 이어 그는 “다른 것을 다 떠나서 자원외교만 놓고 봤을 때 김 전 회장 영향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건 맞다”고 덧붙였다. 또한 김 전 회장은 지난해 12월 있었던 한국-베트남 간 자원·에너지 협력과 국내기업의 베트남 희토류광산 개발참여를 성사시킨 ‘숨은 조력자’라고도 전해지고 있다.
자원외교와는 별개이지만 김 전 회장은 지난해 7월 발생한 ‘리비아 사태(국가정보원 직원이 리비아 현지에서 군사정보를 수집하려다 추방당한 사건)’ 때도 정부 측에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상득 의원이 대통령 특사로 파견돼 해결에 나선 바 있는데, 이 과정에서 김 전 회장이 깊숙이 관여했다는 것이다. 그만큼 현 정부가 김 전 회장의 해외 인맥을 높게 사고 있다는 방증이다.
특히 ‘이상득-박영준’ 라인이 ‘올인’하다시피 한 자원외교가 최근 ‘속 빈 강정’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받으며 최대 위기를 맞고 있어 김 전 회장의 ‘역할’은 더욱 강조될 전망이다. 이명박 정부의 ‘아킬레스 건’이라는 표현까지 나올 만큼 자원외교 성과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여권 핵심부가 김 전 회장에게 ‘SOS’를 보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바로 현 정권이 부정적 여론을 무릅쓰고 김 전 회장을 사면시키려는 ‘진짜’ 속내를 엿볼 수도 있다.
이재광 정치컨설턴트는 “경제 살리기 명목이든, 자원외교 지원이든 김 전 회장 사면이 이뤄질 경우 그 역풍이 엄청날 것이다. 막대한 추징금을 납부하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해외 비자금 은닉 의혹까지 받고 있는 김 전 회장을 사면하는 것에 대해 심사숙고해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원조는 김우중
이명박 대통령의 올해 숙원과제는 ‘남북정상회담’이다(<일요신문> 1012호). 이를 위해 정부는 강경 일변도의 대북정책을 ‘유연하게’ 바꾸고 북과의 접촉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남·북·러시아를 연결하는 이른바 ‘가스관 프로젝트’의 성사 여부가 얼어붙은 남북 관계를 풀 변수로 떠올랐다.
다음 달 열릴 한-러 정상회담에서도 가스관 프로젝트는 핵심 의제로 다뤄질 전망이다. 이에 대해 박근혜 전 대표는 “가스관은 한번 깔면 쉽게 끊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한반도 평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정부가 추진 중인 가스관 프로젝트는 북한 지역을 통과하는 가스관을 건설, 2015년부터 연간 750만 톤의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들여오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이러한 계획은 사실 참여정부에서도 시도된 바 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난 2004년 9월 러시아를 방문해 당시 푸틴 대통령과 가스협력 협정에 합의했다. 여기엔 사할린에서 생산되는 천연가스를 북한을 경유해 남측에 공급하는 방안이 들어가 있다. 당시 가스공사가 직접 나서는 등 의욕을 보였지만 성과는 신통치 않았고 정권이 교체되면서 결국 무산됐다.
그런데 북한을 통해 러시아산 가스를 들여오자는 아이디어의 ‘원조’는 따로 있었다. 대우세계경영연구회의 한 관계자는 “김 전 회장은 남·북·러시아 이외에 일본까지 참여하는 대규모 가스관을 깔아야 한다고 밝혔다. 참여정부와 현 정권에서 논의되는 가스관 프로젝트는 여기에서 비롯된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전 회장은 1992년 당시 김일성 북한 주석을 만난 자리에서 “가스관 통과 수수료를 받으면 외화를 벌 수 있다”며 북측을 설득했고, 그해 7월에는 옐친 러시아 대통령까지 만나 긍정적인 답변을 얻어냈다고 한다.
그러나 김 전 회장의 원대한 포부는 1994년 1차 북핵 위기로 중도에 멈췄고, 그룹이 부도를 맞으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앞서의 대우세계경영연구회 관계자는 “몇 십 년을 내다 본 김 전 회장 안목이 지금 빛을 보고 있는 것 아니겠느냐. 중국과 러시아 인맥이 두터운 김 전 회장이 가스관 프로젝트 성공에 도움을 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