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특위 제소 200건 중 의원직 제명 전무…솜방망이 처벌·제 식구 감싸기 논란 되풀이
#여야 3당 ‘성비위’ 연루
여야 3당 모두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성비위 의혹에 연루됐다. 더불어민주당은 과거 지방자치단체장들의 성추문으로 역풍을 맞았다는 점에서 치명상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5월 17일 보좌관 성추행 의혹으로 제명된 3선 박완주 의원(충남 천안을)에 대한 징계안을 국회 윤리특별위원회(윤리특위)에 제출했다. 의원총회에서 박 의원 제명안이 만장일치로 의결된 지 하루 만이다. 박 의원은 운동권 출신 86그룹(80년대 학번·60년대생)에 안희정계로 분류된다.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와 정책위의장 등 당 요직을 두루 거쳤다. 박 의원과 관련된 징계 안건이 상정되면 국회 윤리심사자문위원회가 심사 절차를 밟게 된다.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계속되는 성비위 의혹에 민주당 지도부는 ‘무관용 원칙’을 내걸었다. 박지현 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은 5월 17일 “최강욱 의원 건을 비롯, 지금 당내에 접수돼 있는 건을 처음부터 끝까지 처리를 해야 한다”며 성비위 근절에 강한 의지를 전했다. 최근 민주당은 최강욱 의원의 성희롱성 발언 의혹, 김원이 의원의 성폭력 피해 보좌진 2차 가해 의혹 등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성비위 의혹이 불거진 건 국민의힘, 정의당도 모두 마찬가지다. 5월 16일 성폭행 은폐 의혹이 터진 정의당은 강민진 전 청년정의당 대표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며 진실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강 전 대표가 지난해 11월과 올해 당원으로부터 두 차례 성폭력을 당했다는 사실을 폭로했고, 당은 이에 “사실이 아니다”라고 전면 부인했다. 이동영 정의당 수석대변인은 “지방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국민과 당원 여러분께 불미스러운 일로 심려를 끼쳐 대단히 송구스럽다”며 고개를 숙였다.
국민의힘에서는 이준석 대표 성상납 의혹 진상규명이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지난해 12월 한 보수 유튜브 방송은 2013년 8월 이 대표가 박근혜 정부의 비대위원일 당시 성접대를 받았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당 중앙윤리위원회는 4월 21일 이 대표에 대해 ‘성상납 증거인멸교사 의혹 관련해 품위유지 위반’으로 징계 절차에 들어갔다. 징계 여부에 대한 결론은 6·1 지방선거 이후로 미뤄졌다.
권성동 원내대표도 성희롱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지난해 12월 10일 권 원내대표가 강릉 한 식당에서 다른 좌석에 앉아있는 부부의 부인에게 성희롱성 발언을 했다는 신고가 접수되면서 경찰이 출동했으나 고소 등의 후속 조치 없이 종결됐다.
#되풀이되는 성비위 잔혹사
민주당은 계속되는 성비위 스캔들의 ‘악순환을 못 끊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 2018년 유력 대권주자였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는 수행비서 성폭행 의혹에 휩싸였다. 그는 이듬해 9월 대법원에서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으로 3년 6월형을 확정 받고 수감 중이다. 안 전 지사는 아내 민주원 씨와 2021년 9월 옥중 이혼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0년 4월에는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여직원 강제추행 사건이 터졌다. 오 전 시장은 스스로 이를 인정하고 사퇴했다. 지난 2월 항소심에서 징역 3년을 확정 받고 복역 중이다. 오 전 시장 사건이 알려진 지 불과 3개월 후인 2020년 7월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비서 성추행 의혹이 불거졌다. 박 전 시장은 사건이 알려진 당일 극단적 선택을 했다. 법원은 2021년 1월 박 전 시장 성추행을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했고,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박 전 시장 성희롱을 인정했다.
정의당도 성비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정의당은 2021년 1월 25일 김종철 전 대표가 당시 대표 신분으로 동료 의원을 성추행한 사실이 밝혀졌다. 여성 인권을 강조해왔던 진보정당이라는 점에서 후폭풍이 거셌다. 김 전 대표는 이런 사실이 밝혀진 당일 전격 사퇴했다. 당시 정의당은 4월 재보궐 선거 무공천을 발표하며 재발 방지를 약속했지만, 불과 1년 4개월 만에 다시 성비위 사건에 연루됐다.
국민의힘 전신인 보수정당들도 성비위로 거센 비판을 받았다. 새누리당은 과거 ‘성누리당’으로 불린 오명의 역사도 있다. 박근혜 정부 1호 인사였던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이 대표적 사례다. 윤 전 대변인은 2013년 5월 박 전 대통령 방미 기간에 주미 한국대사관 인턴으로 일하던 20대 여성을 성추행한 혐의를 받았다. 피해 여성은 경찰 조사에서 윤 전 대변인이 “허락 없이 엉덩이를 만졌다(Grab)”라고 진술했다. 청와대는 곧바로 윤 전 대변인을 경질했다. 하지만 미국 내 공소시효 만료로 처벌을 피했다. 윤 전 대변인은 21대 총선 대구 동구을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이외에도 박희태 전 국회의장, 김무성 전 대표, 최연희 전 의원, 박계동 전 의원도 성비위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2014년 9월 박희태 전 국회의장은 강원도 원주의 한 골프장에서 캐디의 가슴을 만져 구설에 올랐다. 박 전 의장은 “내가 딸만 둘이다. 딸만 보면 에쁘다, 귀엽다고 하는 게 내 버릇”이라는 황당한 해명을 내놓기도 했다. 박 전 의장은 이 사건으로 징역 5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박 전 의장은 2017년 1월 당이 비대위 체제에 돌입한 후 제명됐다. 사건 발생 3년 만이다.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는 2014년 강원도 홍천에서 기자들과의 저녁 자리에서 술에 취해 한 여성 기자 허벅지를 손으로 짚고, 다른 여성 기자에겐 자신의 무릎에 앉으라고 요구해 물의를 빚었다. 이후 해당 기자가 사과를 요구하자 김 전 대표는 구두로 사과를 전했다. 사건이 보도되자, 김 전 대표는 “만취해 기억이 안 난다”고 해명했다. 김 전 대표 성추행에 대한 당의 별다른 조치는 없었다.
최연희 전 한나라당 의원은 2006년 술자리에서 여기자 가슴을 만지는 등 강제추행을 저질렀다. “술에 취해 음식점 주인으로 착각했다”는 해명에 국민적 공분은 더해졌다. 사건 직후 최 전 의원은 탈당했고, 당 윤리위는 징계 논의 중단을 발표했다. 국회 윤리특위는 최 전 의원에 대해 징계가 아닌 ‘국회의원 윤리강령 및 윤리실천규범’ 위반 의결에 그쳤다. 최 전 의원은 2008년 18대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됐고, 2009년 초 복당 논의가 있었으나 반대 여론으로 무산됐다.
2006년엔 박계동 전 한나라당 의원의 술집 여종업원 성추행 동영상이 인터넷을 통해 유포되면서 정치권이 발칵 뒤집혔다. 영상에서는 박 전 의원이 여종업원의 옷섶을 헤치고 가슴에 손을 넣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당 윤리위원회는 박 전 의원에게 '경고' 처분을 내렸다. 박 전 의원은 2008년 국회 사무총장직에 올랐다.
#재발 방지 약속, 그런데 왜 반복될까
정치권은 성비위 스캔들이 벌어질 때마다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여성 인권운동가 출신 민주당 한 의원은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보여주기 식일 뿐이었다. 성비위 사건이 묻힌 게 한둘인가. 솔직하게 근본적인 해결 방안이 없었다”며 “당이 진심으로 반성해야 한다”고 전했다.
민주당은 성비위 사건이 터질 때마다 태스크포스(TF)와 신고·상담센터 설치를 주요 대책으로 제시해왔다. 2018년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력이 있을 당시에는 젠더폭력TF와 젠더폭력신고 상담센터를 설치하며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2020년 4월 오거돈 전 부산시장 성폭력 사건 당시에는 젠더폭력근절대책 TF가 꾸려지기도 했다.
2020년 7월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문이 터지자 민주당은 △가해자 무관용 원칙 △선출직 성평등교육 연 1회 의무화 △윤리감찰단 및 온라인 신고센터 설치 대응책을 제시했다. 이후에는 주요 당직자를 대상으로 성인지 교육도 강화하겠다는 방침도 알렸다. 하지만 최근 일련의 사건에서 알 수 있듯 성비위 사건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국회의 ‘제 식구 감싸기’가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국회 윤리특위에 징계 안건이 상정되면 윤리심사자문위원회가 심사 절차를 밟게 된다. 경고를 비롯, 사과, 출석정지, 제명 등의 징계 절차가 본회의에서 최종 통과되는데, 동료 의원을 제명하는 게 사실상 쉽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 윤리특위에 제소된 200건이 넘는 징계안 중 통과된 경우는 강용석·심학봉 전 의원 2명뿐인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는 대부분 국회 임기가 종료되면서 폐기됐다. 징계 절차를 밟은 2건마저도 ‘의원직 제명’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강 전 의원은 2010년 저녁 술자리에서 아나운서를 지망하는 한 여학생에게 “다 줄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래도 아나운서 할 수 있겠느냐”라고 발언해 파문을 일으켰다. 하지만 강 전 의원에 대한 의원직 제명안이 재적의원 3분의 2의 찬성을 받지 못해 부결됐고, ‘30일 출석정지’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다. ‘보험 설계사 성폭행’ 혐의를 받았던 심 전 의원은 징계안 본회의 표결에 앞서 스스로 사퇴했다.
이 때문에 자정 효과를 위해서는 외부인사가 국회 윤리특위를 맡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태수 정의당 대변인은 통화에서 “국회 차원에서 국회의원에 대한 징계를 내릴 수 있는 게 현재로선 윤리특위뿐이다. 그마저도 솜방망이 처벌을 한다”고 했다. 이어 그는 “국회윤리특위를 외부인사로 구성해 솜방망이 처벌·자기 식구 감싸기 논란을 종식시켜야 한다”고 대답했다.
2차 가해를 방치하는 분위기 역시 문제라는 의견도 나왔다. 2020년 박원순 전 시장 성폭력 사건 이후 피해자를 ‘피해 호소인’으로 표기하자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와 남인순·진선미·고민정 등 민주당 여성 의원들이 앞장섰다. 박 전 시장 피해자 측은 피해호소인 표현을 처음 제안한 것으로 알려진 남인순 의원에 대해 당 차원의 징계를 요청했으나 당은 응답하지 않았다.
고민정 의원은 지난해 4월 재보궐 선거 당시 서울시장 후보로 나선 박영선 캠프 대변인으로 발탁됐지만, 당 안팎 반발로 사퇴했다. 박원순 전 시장 피해자 지원단체가 2차 가해자로 지목했던 최민희 남양주시장 후보, 변성완 부산시장 후보, 양승조 현 충남지사는 이번 지방선거에 출마한 상태다.
최강욱 민주당 의원 성희롱 발언 의혹 이후에도 당내 2차 가해는 계속됐다. 민주당 여성보좌관들은 5월 4일 낸 입장문에서 “최 의원은 며칠 전 저지른 심각한 성희롱 비위행위를 무마하기 위해 말장난으로 응대하며 제보자들을 모욕하고 있다”며 “제보자 색출 등의 2차 가해가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
최 의원은 5월 4일 “의도한 바는 아니었을지라도 저의 발언으로 정신적인 고통을 입으신 우리 당 보좌진님들께 사과드린다”고 했다. 다만 성적인 행위를 연상시키는 발언이 아닌 ‘짤짤이’라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었다. 앞서 민주당 여성 의원은 통화에서 “2차 가해를 방치하고 넘어가는 분위기가 계속된다면, 당의 성비위는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치권의 남성 중심적인 문화가 계속되는 성비위의 원인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장태수 대변인은 “남성과 여성, 의원과 보좌진 등 상대적으로 힘 있는 사람이 업무상 지휘를 악용해 범죄 후 은폐, 협박, 회유할 수 있는 폭력적인 위계구조”라고 꼬집었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남성 국회의원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데다, 이들이 당이나 지역을 장악하고 있다. 정치 문화나 정치구조가 성비위를 계속해서 양산하게 되는 구조”라며 “정치권 내 여성할당제가 여성들의 정치 진출에 기하는 바가 있다는 학계 내 연구결과가 있다. 여성할당제 도입과 함께 여성친화적인 의제 등으로 조직 구조가 바뀌어야 남녀 권력 격차가 해소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설상미 기자 sangmi@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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