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 남주가 ‘야수’로 돌아왔다” 전작 ‘장첸’ 이상의 빌런 강해상으로 날선 존재감
“예전에 (마)동석이 형이 그러더라고요. ‘야, 장첸하고 강해상하고 같이 나오는 거 찍어보자’(웃음). 그런데 제 생각엔 장첸이 강해상을 이길 것 같은데요, 강해상은 이번 작품에서 너무 심하게 맞았잖아요(웃음). 싸움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겨서 이제 앞으로는 안 싸울 것 같아요. 사실 전 장첸을 극복해야 한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촬영하다 보면 그냥 지금 ‘범죄도시2’ 찍기 바쁘지 부담이나 극복에 대한 욕심이 들 새가 없거든요(웃음). 그래서 전혀 부담 같은 건 없었고, 그냥 마냥 즐겁고 재미있게 촬영했습니다.”
5월 18일 개봉 직후부터 흥행 순항 중인 ‘범죄도시2’에서 손석구는 베트남 일대를 휘어잡고 동포들을 대상으로 악랄한 범죄를 저지르는 악역 강해상을 연기했다. 제 수중에 있는 돈 말고는 아무 것도 믿지 않고 분노의 끓는점이 상당히 낮은, 흡사 늘 불이 붙어 있는 폭탄의 심지 같은 인물이다. 전작의 장첸도 만만치 않은 악역이었지만 이번 ‘범죄도시2’에서의 강해상은 정말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나운 맹수 같은 모습으로 마석도(마동석 분)에게 맞선다. 관객들은 그런 강해상을 두고 “장첸보다 더한 놈이 나타났다”며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강해상은 굉장히 화가 많은 인물이에요. 그가 어떤 과거를 가졌을지 감독님과도 많이 이야기하고 그랬는데 그렇게 찾은 키워드가 ‘울분’이었거든요. 어떻게 보면 피해 의식도 강하고, 별것도 아닌 것에도 트리거가 확 올라오면 눈이 돌아버리는 그런 캐릭터로 설정했죠. 이성적으로 상황을 판단해서 ‘내가 이러면 안 되지’ 하는 게 아니라 순간의 감정에 일단 몸부터 움직이는 인물로 설정한 뒤에 달린 거예요.”
강해상으로 분한 손석구는 10kg가량을 찌우고, 이전에는 경험해 보지 못한 거칠고 지저분한 행색으로 파격적인 변신을 강행했다. 베트남 햇볕에 제멋대로 탄 피부와 마음대로 자라난 수염, 대충 손 가는 대로 깎은 듯한 머리와 얼기설기 몸을 메운 타투까지 온몸으로 빌런임을 광고하는 강해상은 장첸보다 더 악랄하고, 더 폭력적인 존재로 마석도 이상의 무게감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강해상의 외적인 콘셉트에는 손석구가 직접 덧붙인 의견도 있었다고 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의상실장님께 주황색 옷을 입고 싶다고 했어요(웃음). 왠지 강해상에게 주황색을 주고 싶더라고요. 그렇게 강해상이 한국에서 입는 옷을 제작해주셨는데 그게 너무 마음에 들어서 뿌듯했어요. 아마 제가 제일 크게 중점을 둔 것 중 하나가 강해상에게 주황색을 대입시켰던 것일 거예요. 길거리에서 사람을 잔인하게 칼로 찌르는 상황을 내가 목격하고 다른 누군가에게 설명할 때 ‘어떤 주황색 점퍼를 입은 미친놈이 그랬대’ 하면 기억에 굉장히 깊이 각인될 것 같거든요(웃음). 그래서 무채색이 아닌 주황색을 입고 싶었어요.”
강해상이 인상적인 빌런으로 다가오는 데엔 그의 적은 대사 양도 한몫했다. 전작의 장첸이 수다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강해상은 최소한의 대사로 상황을 설명한다. 쉽게 뚜껑이 열리는 다혈질 악역으로서의 면모와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과묵함 역시 손석구의 손을 거쳐 만들어진 것이라고 했다.
“기존 시나리오상의 강해상은, 맞는 표현일진 모르겠지만 좀 ‘양’(양아치)스러웠어요. 욕도 좀 많이 하는 캐릭터였는데 제가 감독님께 욕은 좀 안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어요. 만일 욕을 하게 된다면 나랑 대척점에 있는 형사들한테가 아니라 (관계없는) 시민들한테, 그래서 그 신을 따로 하나 만들게 됐죠. 제가 도로에서 순경을 찌르는데 공포에 휩싸인 시민들을 향해 제가 유일하게 욕을 하는 장면이 있어요. 그런 한 번의 충격적인 장면을 넣자, 그리고 그 외에는 말수를 줄이고 충동적인 모습으로 나갈 수 있도록. 무게를 좀 실은 셈이죠.”
그렇게 완벽한 악역을 만들어냈지만, 괴물보다 더 괴물 같은 형사 마석도 역의 마동석과 첫 액션 호흡을 맞출 때는 손석구 역시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마동석은 앞선 사전 인터뷰에서 손석구를 향해 “새로운 액션 배우의 탄생을 기대하셔도 될 것”이라며 한껏 치켜세워줬었다. 마동석과 정면으로 붙는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액션배우로서의 소양을 하나 갖춘 것이나 다름없는데 그걸 한 작품에서 두 번이나 해냈으니 치켜들 엄지손가락이 모자랄 정도다. 액션의 화려함보단 진짜 있을 법한, 리얼함 그 자체에 중점을 뒀다는 손석구는 마동석과의 액션 호흡에 대해 “촬영하는 순간조차도 신기했다”고 회상했다.
“같이 액션하면서 동석이 형 몸을 만져봤거든요. 놀랐어요, 철판 들어있는 줄 알고(웃음). 몸이 너무 딱딱한 거예요. 운동을 워낙 많이 하셔서 그런 거겠지만 제가 그때 그랬어요, ‘농담이 아니라 진짜 배에 뭐 집어넣은 거 아니에요?’(웃음). 팔도 그렇고 무슨 쇠를 만지는 것 같더라고요. 액션 신을 촬영하고 있는 그 순간조차도 ‘신기하다. 사람 몸이 어떻게 이렇게 딱딱하지?’라면서 연기했어요(웃음).”
이번 '범죄도시2'도 그의 필모그래피 속에서 꽤나 무게감 있는 작품으로 남을 것으로 기대되는 한편, 같은 시기 정반대의 장르에서도 손석구에겐 호평이 쏟아지고 있다. JTBC '나의 해방일지' 속 그가 연기한 구 씨는 작품 안팎에서 "손석구의 인생 캐릭터가 나왔다"는 찬사를 받고 있다. 강해상과는 백팔십도 다른, 로맨스 드라마 속 어두우면서도 여린 캐릭터로 그가 가진 복잡한 속내를 담백하게 털어내며 손석구 역시 이 작품으로 인해 자신을 둘러싼 많은 것이 바뀌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인간으로서도, 배우로서도 솔직한 자신을 보여주고 싶다는 그는 어떤 작품에서든 ‘나’스럽게 남고 싶다고도 덧붙였다.
“저는 솔직한 연기가 좋아요. 그렇게 솔직한 연기를 하려면 내가 누군지 알아야 하고, 또 웬만하면 들뜨지 않아야 하죠. 들뜨면 자꾸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려고 하니까요. 그냥 저는 ‘나’스러운 게 제일 좋은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러려면 제 자신이 잘 변화해야 되겠죠. 나이를 잘 먹어야 그런 ‘항상’스러움 속에서 자연스러운 변화가 올 테니까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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