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 월가 시위대가 지난 14일 뉴욕 주코티 공원 야영장에서 잠을 자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
이른 아침 뉴욕 ‘주코티 공원’ 인근의 도로변. 한쪽 구석에는 쓰레기들이 산더미처럼 쌓인 채 악취를 풍기고 있었고, 그 옆에는 담요를 덮고 누워 잠자고 있는 젊은이들이 보였다. 그리고 이들 사이로 출근길을 재촉하는 정장 차림의 직장인들이 태연하게 지나고 있었다.
요즘 뉴욕 월가의 풍경이다. 한 달 넘게 ‘반월가 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시위대들이 월가 인근에 위치한 ‘주코티 공원’을 베이스캠프로 삼아 활동하고 있는 까닭이다. 이들은 낮뿐만 아니라 밤에도 시위를 벌이고 있으며, 이들 가운데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은 채 노숙을 하는 사람들도 점차 늘고 있는 추세다. 이처럼 거리에서 먹고 자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위생 상태가 엉망이 된 것은 당연한 일. ‘주코티 공원’과 도로는 곧 쓰레기로 넘쳐났고, 제때 씻지 못하는 사람들 때문에 악취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때문에 주변에서 하수구 냄새가 난다며 불평하는 사람들도 많으며, 심지어 한번은 어떤 남성이 경찰차에 대고 대변을 보는 일까지 벌어졌다.
뉴저지에서 온 목수인 패트릭 로우(48)는 “처음 5일간은 전혀 샤워를 못했다. 매우 불편했다”고 말했다. 로우처럼 멀리서 온 사람들의 경우에는 시위 현장에서 만난 낯선 사람들의 도움을 받곤 한다. 가령 근처에 사는 사람들로부터 아파트 욕실을 사용할 수 있도록 호의를 제공 받는 식이다.
하루가 다르게 쌓여 가는 쓰레기 역시 골칫거리다. 이 때문에 결국 얼마 전에는 뉴욕시 당국과 시위대 간에 마찰이 빚어지기도 했다. 지난 14일 뉴욕시는 공원 주변이 너무 불결해졌다며 대규모 청소 작업을 실시할 계획이니 공원을 비워 달라는 통보를 시위대 측에 전했다. 공원 소유업체인 ‘브룩스필드 오피스 프로퍼티스’ 측 역시 “위생 문제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하지만 시위대는 이런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들은 “청소는 단지 구실에 지나지 않고, 진짜 목적은 우리를 공원에서 내쫓으려는 것”이라며 반발했다. 이들의 반발과 더불어 시민들의 항의 전화로 결국 청소 작업은 무산됐으며, 시위대는 공원을 점거한 채 시위를 계속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시위대 측이 위생 상태를 전혀 무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심각성을 인식한 시위대는 현재 자발적으로 청소를 하면서 가능한 공원을 청결하게 유지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단지 수백 명이 모인 곳의 쓰레기를 완벽하게 깨끗이 치운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 뿐이다.
이밖에 대두되고 있는 다른 문제로는 시위에 참가한 일부 젊은이들의 방탕한 행동이 있다. 시위를 놀고 마시는 파티나 카니발쯤으로 여기고 합류한 일부 젊은이들이 밤새 술을 마시거나 마리화나를 피우면서 문란한 행위를 일삼고 있는 것이다.
실제 시위 현장에는 반나체로 이불을 덮고 뒹구는 커플이 있는가 하면, 60년대 히피 문화를 부활시키려는 듯 거리에서 버젓이 프리섹스를 즐기거나 과도한 애정행각을 벌이는 남녀도 종종 눈에 띄고 있다. 시위 현장의 쓰레기 더미 사이로 콘돔 박스가 심심치 않게 보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시위에 참가한 안드레(40)라는 남성은 “애무를 하거나 섹스를 하는 젊은 사람들을 종종 봤다. 별로 보기 안 좋았다”며 눈살을 찌푸렸다.
이에 어떤 사람들은 시위 현장이 마치 60년대 저항문화이자 히피문화였던 ‘우드스톡 페스티벌’ 분위기와 흡사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말하자면 이들은 ‘우드스톡 워너비’일 뿐 진지하게 시위에 참여하고 있는 경우 는 많지 않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일부에서는 스스로 (소득 하위계층) 99%라고 외치며 시위하는 청년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러 가지 모순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즉, 시위에 참가한 모든 젊은이들을 과연 99%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는 것이다.
가령 일부러 허름한 차림으로 거리에 나왔지만 허리에는 명품 벨트를, 손목에는 고가의 시계를 차거나 300달러(약 34만 원) 이상 하는 청바지를 입고 있는 청년들의 모습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한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등 값비싼 전자 기기들을 몸에 지니고 하루 종일 음악을 듣거나 오락을 하는 모습을 보면 ‘과연 이들이 경제적 불균형을 외칠 자격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고도 말한다.
실제 영국의 <데일리메일>이 시위 현장에서 취재한 바에 따르면 거리에 나온 청년들 가운데는 ‘엄친아’나 ‘엄친딸’들도 상당수 있었다. 이들은 상위 1%에 해당하는 특권을 누리면서 자란 자녀들로서 맨해튼의 ‘바드 칼리지’나 ‘파슨스 디자인 스쿨’ 등 학비만 20만 달러(약 2억 2600만 원)가 드는 사립대학을 다니고 있었다. 한 여대생은 뉴욕의 A급 명사들이 거주하는 인근의 고급 아파트인 ‘트라이베카’에 거주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남친과 함께 시위에 참가해서 노숙을 하고 있다며 당당하게 말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들이 시위대 옆에서 누워 노숙하는 이유는 뭘까. 이에 대해 <데일리메일>과 <뉴욕포스트> 등은 단순히 재미를 느끼거나 마약을 하면서 파티 분위기를 즐기기 위해서라고 비꼬았다.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 시장 역시 “머지않아 시위대들이 자발적으로 흩어질 것이라고 믿는다”라며 “대다수는 따뜻한 날씨 덕에 노숙을 하고 있다. 하지만 추워지면 견디지 못하고 철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밖에도 마리화나를 피우거나 약물을 복용하거나 또는 과음을 해서 시위 분위기를 흐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하루는 23세의 한 청년이 술과 감기약을 섞어 마셨다가 호흡 곤란을 일으켜 병원으로 긴급 후송되기도 했다. 그는 시위가 시작되기 오래 전부터 이미 노숙 생활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시위대에 끼어든 노숙자들이 늘고 있는 것도 문제이긴 마찬가지다. 매일 공짜 음식과 공짜 의복이 제공된다는 소문에 여기저기서 몰려오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주로 텐트를 치고 노숙하는 시위대 틈에 끼어서 매일 제공되는 피자, 샌드위치, 과일, 따뜻한 수프 등을 먹으면서 허기를 달래고 있으며, 공짜 스웨터와 바지, 신발, 심지어 속옷까지 받으면서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시위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번 시위는 결코 어떤 고귀한 의미를 담고 있지 않다. 그저 성난 소수의 집단이 저지르고 있는 장난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가령 공원에서 노숙하는 시위대는 500명가량이지만 매일 출근하는 뉴욕 시민들의 수는 이보다 훨씬 많은 370만 명이라는 것이다. 또한 시위에 참가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반유대주의자, 노숙자, 반정부주의자, 철부지 대학생이라고 비난하면서 “이들이 모두 스스로 99%의 미국인을 대변한다고 하지만 이는 거짓”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이런 비난에도 불구하고 시위는 날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는 상태. 부정적인 면보다 긍정적인 면을 보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은 이번 시위가 소수 특권층에 대한 날카로운 경고가 되길 바란다며 적극 지지하고 있다.
또한 이번 시위를 계기로 지금껏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굴었던 금융자본주의와 세계화, 양극화, 소득불균형 등에 대한 경종을 울림과 동시에 빚더미에 앉은 중산층과 서민들에게 희망을 안겨주길 바라는 사람들도 많다. 이런 까닭에 시위대 본부에는 전국에서 보내온 기부금이 속속 답지되고 있으며, ‘주코티 공원’의 모금함에는 매일 8000달러(약 900만 원)의 성금이 모이고 있다. 지금까지 전달 받은 성금만 무려 40만 달러(약 4억 5000만 원)라는 소문도 들리고 있다. 또한 담요, 베개, 침낭 등도 무상으로 기증 받고 있는가 하면, 인근 식당에서는 치킨, 파스타, 브리또 등 따뜻한 음식을 제공하면서 시위대들에게 힘을 보태고 있다.
개인 사정으로 시위에 참가할 수 없는 후원자들은 주말마다 자원봉사를 하거나 혹은 금융업과 관련된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조언을 하는 등 나름의 방식으로 시위에 참가하고 있기도 하다.
현재 시위는 시애틀, 미네아폴리스, 애틀랜타 등 미국 내 25개 도시로 확산된 상태. 처음 700명으로 시작했던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빠른 속도로 퍼진 셈이다. 그리고 이런 울림은 비단 미국 내에만 그치진 않았다. 멀리 대서양을 건너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등 주요 유럽 도시를 비롯해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등 아시아까지 빠른 속도로 확산됐다.
시위는 대부분 피켓을 들고 평화적인 거리 행진을 벌이는 식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시위대는 가능한 경찰과 마찰을 빚지 않도록 노력하면서 각별히 주의하고 있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