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처음 아프리카 외부로 퍼져…이전과 다른 ‘사람과 사람’ 전염 양상 문제
원숭이두창 바이러스는 1958년 덴마크 연구소의 원숭이에게서 처음 발견됐는데 사람 몸에 나는 천연두와 비슷한 증상을 보여 ‘원숭이두창’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인간에게서 처음 발견된 건 1970년 콩고민주공화국의 9개월 영아 사례다. 이후로는 콩고, 카메룬, 나이지리아, 가봉 등 중앙 및 서아프리카 지역의 풍토병으로 자리 잡았다.
바이러스성 질환인 원숭이두창에 걸리면 발열, 두통, 근육통, 임파선염, 피로감 등 증상과 함께 온몸에 수두와 비슷한 수포성 발진이 퍼진다. 전염성과 중증도가 낮아 통상 몇 주일 안에 회복하지만 변종에 따라 치사율은 1~10%까지 올라가기도 한다. 장시간의 직접적 접촉이나 호흡기를 통해 전파되며 성 접촉으로 인한 전파 가능성도 있다. 전용 치료제는 따로 없고 항바이러스제를 사용한다.
아프리카 풍토병으로만 알려졌던 원숭이두창이 다시 주목을 받은 건 최근 이 바이러스가 전 세계적으로 급속하게 번지고 있어서다. 세계보건기구(WHO)와 스위스, 이스라엘 등이 밝힌 원숭이두창 감염의심 사례 확인 국가는 24일 기준 총 18개국으로 총 171건의 신고가 들어왔다. 전파 속도도 매우 빠르다. 13일부터 24일 약 열흘 동안 3개 대륙, 18개 국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는데 벨기에, 영국, 프랑스, 영국,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를 지나 캐나다와 미국, 호주까지 퍼진 상태라 국내 유입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는 상태다.
#예견된 확산…심상치 않았던 감염 지표
취재 결과, 일부 학자들은 이미 원숭이두창의 점진적 확산과 추가 재발을 염려한 것으로 확인됐다. 네덜란드와 스위스, 미국 등 여러 국적의 학자들이 올 2월 공동으로 발표한 논문 ‘원숭이두창의 역학변화와 잠재적 위협에 대한 체계적 문헌 고찰(The changing epidemiology of human monkeypox-A potential threat? A systematic review)’에 따르면 원숭이두창은 2000년대 초반부터 서서히 아프리카를 지나 미국과 유럽으로 번지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내에서의 발병률 증가도 상당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고 밝혔다.
일부 언론에서는 원숭이두창이 아프리카 밖으로 확산된 적이 없다고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연구에 따르면 원숭이두창 바이러스의 아프리카 외 첫 발현지는 2003년 미국이다. 2003년 가나에서 설치류의 일종인 프레리도그를 미국에 애완용으로 수출하는 과정에서 원숭이두창에 감염된 동물이 포함돼 바이러스가 대륙을 건너갔다. 동물에서 동물로 퍼진 바이러스는 동물에서 인간으로 옮겨갔고 그 해 미국에서만 총 37명의 확진자가 발생했다.
이후로도 아프리카 외 지역에서의 감염자는 계속 있었다. 2018년부터 2021년까지는 나이지리아를 여행하고 돌아간 여행객들이 각각 이스라엘, 영국, 싱가포르, 미국에서 감염 진단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영국에서는 감염자 가족에게 바이러스가 전파되거나 병원 종사자에게 감염이 되는 등의 지역 전파 사례가 확인되기도 했다.
연구진은 아프리카 내에서의 발병률 증가 추세에 대해서도 주목했다. 2001~2013년 콩고민주공화국의 원숭이두창 발병률 증가 수준이 꾸준히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2013년(2.82)의 발병률은 2001년(0.64)보다 4배 넘게 상승한 수치였다. 중앙아프리카의 경우 2015년 1만 명당 2명으로 계산된 전체 발병률이 2016년 1만 명당 50명 수준으로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재유행의 원인으로는 인간의 면역력 약화와 바이러스의 유전적 진화를 꼽았다. 1979년 WHO가 천연두 근절을 공식화한 이후 더 이상의 백신 접종이 없었고 실제로 백신접종을 하지 않은 연령대가 원숭이두창 감염 비율이 높았다는 것이다. 여기에 해당 바이러스의 유전적 진화 가능성을 제시하기도 했으나 WHO 측은 아직까지 바이러스 자체의 변이 증거는 없다는 입장이다.
AFP통신에 따르면 로저먼드 루이스 WHO 천연두 비상팀장은 5월 23일 “유럽 전역과 북미 등 발병 국가들에서의 사태도 진정될 수 있다”며 “바이러스 자체에 변이를 일으켰다는 증거는 아직 없다. 더 넓은 범위의 원숭이두창 그룹에 속한 바이러스는 변이하지 않고 상당히 안정적이다. 첫 번째 게놈 서열을 분석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례적인 감염의 연결고리 찾아야
감염 경로가 사람 간 전파로 급격히 변화했다는 점도 과제다. 2019년까지 원숭이두창 바이러스 감염 경로는 아프리카 지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동물에서 사람으로의 전파로 확인되거나 의심됐다. 그런데 최근 사태의 경우 감염자 상당수가 사람 간 접촉을 통해 확산된 것으로 보이는데, 더 심각한 부분은 이들 사이의 연관성을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일각에서는 이 연결 고리를 마스크 해제 조치 이후 유럽에서 열린 대규모 축제가 아니냐는 가능성을 제시하기도 했다. 행사 참여자들이 감염된 상태로 자국에 돌아가 전파자 역할을 했고 결과적으로 단기간에 넓은 지역 감염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확산 초기 일부 학자 사이에서만 돌던 이 가설은 5월 23일 데이비드 헤이만 WHO 고문이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최근 스페인과 벨기에에서 개최된 두 차례의 파티를 언급하며 “성적 접촉이 전이를 증폭한 것 같다”고 설명하면서 더욱 힘을 받는 모양새다.
그러나 데이비드 헤이만 발언이 동성애 혐오와 왜곡보도로 이어질 수 있다는 비판에 WHO 측은 “성관계를 통한 전이 가능성이 있을 뿐, 성병은 아니”라며 “누구나 밀접 접촉을 통해 감염될 수 있다”고 부연했다.
다행히 국내 감염 사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우려의 목소리는 계속 나오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로 해외여행 및 유입이 증가해 노출 가능성이 높아진 까닭이다. 게다가 원숭이두창의 잠복기는 3주로 감염 사실을 눈치채지 못 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다만 코로나19처럼 팬데믹으로 발전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원숭이두창의 경우 기존의 천연두 백신으로 85% 이상 예방이 가능하고 진단검사법과 시약 개발도 이미 완료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3502만 명 분의 백신을 비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코로나19와 비교하면 전염력도 낮은 편이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사람에게 유행하는 천연두의 감염재생산지수는 3~6 정도로 코로나에 준하는 전파력을 갖고 있지만 원숭이두창은 그 정도의 전파력을 갖고 있지 않다”며 “국소적으로 유행이 되는 ‘에피데믹’ 상황 정도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우리와 교류가 많은 영국, 미국, 스페인을 중심으로 발생하니까 국내에서 일부 사례가 들어올 수 있다”며 “최근 코로나 안정 상황이 되면서 유럽과 미국 여행객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에 대한 주의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질병청 관계자는 24일 “최근 해외여행객이 증가해 원숭이두창의 국내 유입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면서 “유입을 막기 위해 검역을 강화했으며 외국에서 발생하는 사례를 주의 깊게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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